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영회 습작 Jan 22. 2024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말이 말을 걸어 글로 쓰는 이야기

이번에 말을 건 글은 교수님이신 페벗 님이 인용한 괴테의 말과 교수님이 인용하며 쓰신 말들입니다.

마치 애초에 제 마음에 있던 말 같았습니다. 그런데 모호한 느낌일 뿐이라 묻고 따져서 풀어 봅니다.


방향이라면 두 점이 필요하다

방향 하니까 머릿속에서 절로 떠오르는 개념들은 '북극성', '벡터' 따위였습니다. 가볍게 바드[1]에게

벡터(vector)는 크기와 방향을 모두 가지는 양을 말합니다. 기하학에서는 변위, 힘, 속도, 가속도와 같은 양을 벡터로 표현합니다. 물리학에서는 전하량, 자기장, 전기장과 같은 양을 벡터로 표현합니다. 선형대수학에서는 벡터 공간의 원소를 벡터라고 합니다.

결과를 읽으니까 머릿속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향에는 크기가 없잖아?
하지만, 방향이 있으려면 점은 두 개 필요하네


놀랍게도(어쩌면 당연하게도) 직전에 쓴 <야신이 거북이에게 배운 자신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법>의 내용을 다시 불러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아래 그림의 '되다' 때문이죠.

무언가 되려면 방향이 필요하다

무엇이 된다는 말은 '나아간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물리적인 이동은 '가다' 혹은 '오다'라고 하지 '되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되다' 뜻을 찾아보면 23개 정도의 뜻이 나옵니다. 그중에서 두 가지 뜻을 가져와서 따져 보겠습니다. 제가 위 그림을 소환할 때의 '되다' 뜻은 다음 포기말[2]에 가깝습니다.

「2」 【…으로】 다른 것으로 바뀌거나 변하다.

일은 우리가 사람으로 무언가가 되게 만듭니다. 그림의 바탕이 되는 주장은 애초에 최봉영 선생님의 주장이었습니다. <낱말의 뜻을 또렷하게 알아야 할까?>에서 인용한 다음 포기말을 그림으로 바꾼 것이죠.

사람들은 낱말의 뜻을 또렷하게 아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낱말의 뜻을 또렷하게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림에는 '~하는' 이나 '~할 수 있는'은 빠져 있습니다. 이는 <욕망: 감정, 느낌, 상태를 관찰해 말로 차려 보자>의 영역입니다. 사람에게 개별성을 부여하는 임자의 공간이죠. 하지만 임자로 살 것인지는 개인에 의존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자기 뜻에 따라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한편, '되다'의 다음 뜻을 보면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물리적 제약을 다루고 있습니다.

「3」 어떤 때나 시기, 상태에 이르다.

이번에는 야신 김성근 감독님의 말로 부연 설명을 대신합니다.

시간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오늘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현상적 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구분하기

여기서 박문호 박사님의 강렬한 멘트가 제 기억 속에서 나타나 말을 겁니다. 바로 <현상적 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구분하기>에 담은 그 경험이죠.

그런데, '되다'는 두 가지 세계 즉, 현상적 세계와 물리적 세계에 모두 통용되어 도리어 혼선을 일으키는 말임을 깨닫습니다.


암튼 여기서 말을 제대로 차려서 쓰려면 '되다'를 쓸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시공간의 제약에 의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임자로서 선택해서 어디론가 나아가는 것인지 말이죠. 전자는 나이를 먹고 언제가 죽게 될 삶을 사는 방향성에서 변화를 말합니다. 이때 방향성은 절대적입니다. 특별히 생각할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야?

생각이 필요한 부분, 다시 말해 괴테가 강조한 부분은 후자의 경우 '방향'입니다. 이는 얼마 전 박태웅 의장님 페북에서 본 글로 치환할 수도 있습니다.

동어 반복이지만 저의 인생책 제목으로 바꿔서 마음에 드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야?


두 달 전에 <사람됨의 줏대 : 주관(主觀)>을 쓰면서 자신의 문제 혹은 자신이 처한 문제를 정의하는 일이 '임자가 되기 위한 선행 조건'이라고 정의한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방향을 얻게 됩니다. 나아가는 길은 지난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호흡과 처한 상황에 따라 리듬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이 없다면 다시 말해 문제를 정의하지 못한다면 임자로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위한 삶을 살거나 생물학적인 삶에 그칠 수도 있죠.


주석

[1] 바드는 생성형 AI 서비스인 구글 Bard를 뜻하며, <배경 지식이 부족해도 AI 논문을 빠르게 읽는 법>을 쓴 이후에 급격하게 친해져서 습관처럼 쓰는 중입니다.

[2]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말이 말을 걸어 글로 쓰는 이야기 연재

1. 질문이 우선하고, 실행이 질문을 만든다

2. 스피노자 대신에 김성근 감독님

3. 야구라는 것으로 인생을 전하기

4. 야신이 말해 주는 자신만의 길

5. 새로운 운칠기삼(運七技三) 활용법

6. 인간에겐 한계가 없다는 걸 모르고 산다

7. 말이 말을 걸어 나의 차림을 돕는다

8. 우울증이란 진단명은 나의 개별성을 뭉갠다

9. 야신이 거북이에게 배운 자신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법

10. 속말하지 않고 드러내 기록하고 다듬는 일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