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지난 글을 쓰면서 두 달이 지난 제 기록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두 가지를 제가 손때[1]를 묻히고도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기록은 이렇게 잊힌 기억을 보존해 준다는 점에서 컴퓨터로 치면 하드 디스크 역할을, 요즘 스마트폰으로 치면 클라우드 역할을 해 줍니다.
아무튼 그렇게 두 달간 잊힌 내용 중에 눈에 띈 첫 번째는 지난 글에서 인용했던 <한계를 없애는 방법을 실천해 보자> 입니다.
하지만, 그때와 달라진 점은 <한계를 없애는 방법을 실천해 보자>를 쓰며 비슷한 조언을 기록하며 생각했던 일이 있었네요. 전혀 다른 삶을 다룬 책이지만, 제 안에서는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링크를 눌러 인용한 글을 다시 보니 가장 눈에 띄는 구절은 '인생은 속력이 아니라 방향이니까'라는 다발말[2]이었습니다. 눈길을 끈 이유 역시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인용한 글에서 인용한 <인생은 속력이 아니라 방향이다>에서 던진 저의 속말이 떠올린 탓이었습니다.
방향에는 크기가 없잖아?
하지만, 방향이 있으려면 점은 두 개 필요하네
틀려도 좋지만, 질문을 던질 줄 아는 힘과 에너지를 힘이라는 작용으로 만드는 주체 그리고 시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머리에 들어온 탓이죠.
두 번째 이유는 지난 주말에 다 읽은 <수학이 건네는 위로>에서 거의 같은 포기말[3]을 만난 탓입니다. <수학이 건네는 위로> 23쪽에 나오는 포기말은 이렇습니다.
벡터의 핵심은 방향이다. 삶에서 힘은 크기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
정확히 같은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인생에서 힘은 크기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해당 장에서 인상 깊었던 다발말이 더 있습니다.
때로 우린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 마이너스 벡터에 얽매여 플러스 방향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가 오면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우리의 시선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타인의 잣대에 따른 말과 평가를 고스란히 자기화하여 상처를 입는 일이 많습니다. 2019년 <관계를 읽는 시간>에서 이를 잘 짚어 주어서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현상을 명료하게 깨달은 일이 있습니다.
그 깨달음이 저를 <당신이 옳다>로 이끈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옳다>는 (적어도 저에게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충조평판'에 길들여진 나를 멈추라고 말합니다. 이때 우리는 방향을 돌리를 힘을 키워야 합니다. 혹은 키우게 되거나요.
그리하여 <수학이 건네는 위로> 28쪽 나오는 다발말에 공감하게 합니다.
있는 힘껏 달려서 상대방을 불행하게 만들고 나만 행복해지는 것보다, 내 속도를 조금 늦춰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을 마다할 일이 뭐가 있을까?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며, 언젠가는 결승점에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다시 한번 <수학이 건네는 위로>의 아름다운 글들을 반복해서 읽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 있었습니다.
0으로 돌릴 수 있는 힘
이는 <관계를 읽는 시간>의 표현을 빌면, 자신의 바운더리를 인식하는 일입니다. 저에게 마이너스 평가를 내린 이의 평가를 제 것이 아니라 그 혹은 그녀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힘이죠. 이는 최봉영 선생님에게 배운 표현을 빌면 임자의 자세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순석 님의 댓글 표현을 빌면 '자신만의 컨테이너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일 수도 있겠네요.
긴 회상이었는데요. 이제 지난 글에서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내용을 언급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이는 신나서 그렸지만, 까맣게 잊고 있던 아래 그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나도 모르게 주말의 일에 투사하게 되었습니다.
<테니스 이너 게임>을 다시 읽은 지난 주말에는 책 내용이 큰 아이와 함께 놀면서 (축구) 리프팅을 하는 경험과 섞였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제가 무릎 위 부분과 오른발로 리프팅을 하면서 아이에게 요령을 보여 주고 아이가 시도하게 했던 때 느낀 점들입니다.
그에 대한 감상은 아직 글로 다룰 만큼 정리할 수 없을 듯합니다. 다만, 언젠가 <테니스 이너 게임> 내용과 더불어 야신의 책을 읽으면서 도출한 위의 그림을 이용해 제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생깁니다. 여기서는 3년 전에 아이와 함께 한 시간의 기록을 남겨 놓은 일이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한 차례의 즐거움과 새로운 시작을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 몇 가지를 얻습니다. 즐거움은 인용한 사진을 보면서 아이의 표정을 보고 느낀 기쁨입니다. 그와 더불어 잊었던 초심 중에서 다시 아이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또한, 일상의 다면성을 어떻게 단편으로 모두 따로 보지 않고 선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하나의 경험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1] <학습법과 창의성 모두 기억이 핵심이다>에서 인용한 박문호 박사님의 말, '내 감정의 손때를 묻히라는 겁니다'에서 유래합니다.
[2]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5. 일상은 단편이 아니라 선물처럼 주어지는 시간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