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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r 21. 2024

파래는 파랗고, 풀은 푸르다

한국말의 주기율표

<한국말 말차림법> 204쪽에서 '파래와 파랗지'를 보면서 잊어버렸던 <한국말의 주기율표> 연재를 재개합니다. 먼저 책에서 인용한 포기말[1]부터 보겠습니다.

한국사람은 '파래'에서 볼 수 있는 빛깔을 바탕으로 "파래는 파랗지."라고 말한다.


파래가 파랗다고?

파래를 자주 먹지 않는 탓에 그럴듯하다고 여길 수는 있지만 경험으로 완벽하게 수긍이 가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은 함께 <말차림법 묻따풀>을 했던 호성 님의 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어릴 때 '파란 불'로 배웠습니다. 두 아들은 초록 불로 배우더군요. 이무진의 인기곡 '신호등'에도 푸른색이라고 썼네요. 작사가의 연배가 드러나는 듯합니다.


넘실대는 파란 바다…겨울의 맛 파래 수확

한편, 구글링을 하다가 <넘실대는 파란 바다…겨울의 맛 파래 수확>이라는 기사를 만났는데, 어쩌면 파래가 파랗다의 씨말로 정착할 즈음의 정서가 아직도 남아 흐르는 것이 아닌가 싶은 표현이 있었습니다.

북평면 와룡마을 바닷길에 파란 파래가 너울거린다. 큰 대야를 허리에 동여매고 바닷길을 따라 할머니가 파래를 맨다. 씁쓰름하면서도 입안이 개운한 파래는 아는 사람은 꼭 찾는 겨울의 맛이다.
출처 : 해남우리신문(http://www.hnwoori.com)

더불어 다음 포기말은 <오리진>에서 배웠던 지리와 인간의 문화와 풍습의 상관관계로 인해 강력한 근거로 작용합니다.

한국사람이 "파래는 파랗지."라고 말하는 것은 일찍부터 바닷가에 터를 잡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노루와 노랗다

최봉영 선생님 글에 따르면 '노루와 노랗다'도 비슷한 관계의 쌍입니다.

둘째로, 사람들은 어떤 것에서 비롯하는 빛깔을 감으로 삼아서, 서로 뜻을 기대고 있는 이름말과 풀이말을 만들어 쓴다. 예컨대 눈에 보이는 빛깔에 바탕을 둔 ‘파래’와 ‘파랗다’, ‘노루’와 ‘노랗다’와 같은 것이다.   


사전에서 찾아본 파래와 파랗다

낱말의 바탕을 살피기 위해 사전도 찾아봅니다.

식용할 수 있는 참홑파래 따위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일상적으로'라는 말에서 불쾌한 의심이 듭니다. 정혜선 선생님의 강조하는 일상을 보는 시선은 아닐 듯하다는 생각이 스칩니다.[2]


파랗다의 뜻도 차아봅니다.

「1」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새싹과 같이 밝고 선명하게 푸르다.

'파래가 파랗다'는 말은 현대인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는데, 사전에도 유사하게 새싹을 이용해 파랗다를 풀고 있습니다. 얼굴이나 입술 색에 투영하여 쓰는 말도 풀이가 있습니다.

「2」 춥거나 겁에 질려 얼굴이나 입술 따위가 푸르께하다.

보통 '파랗게 질렸다'는 맺음말 형태로 쓰는 말이죠.


파란빛과 만나는 푸른빛

찾다 보니 파란색은 다른 씨말과 조합할 때 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는 듯합니다. 먼저 앞서 살펴본 파랗다의 세 번째 갈래 풀이를 봅니다.

「3」 (비유적으로) 언짢거나 성이 나서 냉랭하거나 사나운 기색이 있다.

예문으로 '주인아주머니의 파랗게 성을 내고 있는 얼굴'이란 매듭말이 나옵니다. 반면, '파란불'이 될 때는 반대의 의미입니다.

「2」 어떤 일이 앞으로 잘되어 나갈 것을 보여 주는 징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청신호.

파란빛을 찾다가 그 풀이 속에서 '푸른빛'을 만납니다.

맑은 가을 하늘과 같이 밝고 선명한 푸른빛.


풀과 푸르지

푸르다는 파랗다보다 풀이가 더 많습니다. 첫 번째 풀이는 하늘과 같은 색상과 풀의 색상을 합한 듯합니다.

「1」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

하지만, 다른 풀이에서는 '풀'의 성질을 빌어 뜻을 나타낸 듯도 해서 '파래와 파랗지'처럼 '풀과 푸르지'도 성립할 듯했습니다. 찾아보니 두 개의 기사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를 옮겨 봅니다.

‘푸르다’는 바로 ‘풀’에서 온 말이다. 즉 하늘·바다·풀 등등 색깔이 비슷한 사물들 중에서 풀을 대표선수로 삼아서 나머지 모든 사물들의 색깔을 표현한 것이다.

또 어떤 칼럼에서는 파랗다와 푸르다의 경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파랗다’의 풀이에서는 ‘맑은 가을 하늘’까지만 맞다. 바다도 ‘깊은 바다’는 아니고 얕은 바다라야 ‘파랗다’라고 할 수 있다. 깊은 바다라면 ‘새파랗다’ 아니면 ‘시퍼렇다’라고 해야 한다.

‘푸르다’의 풀이에서는 ‘풀의 빛깔과 같이’만 맞다. 그래서 ‘파랗다’의 풀이에 ‘새싹과 같이’는 ‘푸르다’ 쪽으로 옮겨 써야 하고, 마찬가지로 ‘푸르다’의 풀이에 쓰인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는 ‘파랗다’ 쪽에서만 써야 마땅한 것이다.


주석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예전에 윤구병 선생님 책에서 본 '학문하는 사람들의 말버릇'이란 표현이 생각납니다. 찾아보니 <사무치기 어려운 말버릇과 말로 사람을 가늠하기>에서 비슷한 느낌을 담은 다발말[3]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어떤 사람은 뜻을 잘 알 수 없는 말을 써서, 일부러 말을 어렵게 만든다. 그들은 강대국에서 가져온 말이나 전문가들이 쓰는 말을 가져다가, 듣는 사람들이 기를 펴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들은 말을 듣는 사람들을 무식한 사람으로 몰고 가서, 바닥에 엎드리도록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글 자체에 그런 의식이 담겨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생각이 스친 것이 사실일 뿐, 제 인지 편향일 수도 있겠죠.

[3]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구절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4]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어구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매듭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한국말의 주기율표 연재

1. 한국말에서 ‘말’과 ‘말다’에 대한 묻따풀

2. 말은 말에다가 말아서 말해라

3. 한국말에서 무엇이 어떤 뜻을 갖는 차림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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