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3 - 한국말에서 이것과 저것과 그것
최봉영 선생님이 페북에 쓰신 글 <한국말에서 이것과 저것과 그것>과 도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따져 묻는 글입니다.
다음을 읽고 '이것'은 시공간을 임자와 근거리에서 공유할 때의 대상을 지칭하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한국말에서 <이것>은 내가 이때-이곳에 바로 ‘요것’으로 마주하고 있는 무엇을 <이것>으로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한편,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요것'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데 선생님은 그런 뜻으로 쓰시지 않은 듯합니다.
‘이것’을 낮잡아 이르거나 귀엽게 이르는 말.
저것은 이것과 대응시켜 일종의 대칭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국말에서 <저것>은 내가 이때-저곳에 바로 ‘조것’으로 마주하고 있는 무엇을 <저것>으로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아래 문장은 그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일을 차분히 개념화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때-이곳이나 이때-저곳에 무엇으로 드러나 있는 <이것>이나 <저것>으로 마주함으로써, 무엇을 어떻게 느껴서 어떤 것으로 알아보는 일로 나아간다.
공교롭게 방금 전에 김상욱 교수님의 양자 역학 관련 유튜브 강의를 들은 탓에 관측 결과로 '이것' 혹은 '저것'을 식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과 '저것'이 사라진 상태에 대한 체험이 없어서 체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입니다.
<이것>과 <저것>은 임자가 무엇을 어떻게 느껴서 어떤 것으로 알아보는 일의 출발점을 이룬다. 임자는 <이것>과 <저것>이 사라지면 머리가 멍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사람들이 ‘멍 때린다’라고 말하는 것은 머리가 <이것>과 <저것>이 사라진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마침 최근에 들은 월말김어준에서 시도하는 몽골 탐사[1] 설명 내용 중에 몽골에는 인공물로 가득 찬 도시와 달리 텅 빈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내용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도시에서만 살아온 저는 항상 인공물로 꽉 찬 세상만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마음 안에 자리한'이라는 표현이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임자가 <이것>이나 <저것>을 어떻게 느껴서 어떤 것으로 알아보는 것은 마음의 밖에 자리한 <이것>이나 <저것>을 마음의 안에 자리한 <그것>으로 헤아려서, <이것>이나 <저것>을 <그것>으로 알아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이것은/저것은 빛깔이 붉다”라는 말은 마음의 밖에 자리한 <이것>이나 <저것>을 마음의 안에 자리한 <그것>으로 풀어서 “이것/저것 = 빛깔이 붉은 것”으로 알아봄으로써 “이것은/저것은 빛깔이 붉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경험으로 기억 안에 자리한 가상의 대상과 눈에 보이는 대상이 임자의 삶의 순간에서 느낌을 만들고 기억을 갱신하는 일로 이해됩니다.
'마음 안에 들어 있는 온갖 알음알이'라는 말은 표현의 정교함 탓에 아름답다는 느낌마저 줍니다
한국말에서 <그것>은 마음의 안에 들어 있는 온갖 알음알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들은 마음의 안에 들어 있는 갖가지 <그것들>을 바탕으로 저마다 마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하나의 마음의 세계를 갖고 있다. 마음가짐은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마음의 세계를 살피고 돌보고 가꾸는 일을 말한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저마다 마음의 세계를 만든다는 말을 도식화한 그림이 최봉영 선생님의 아래 그림이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 배우는 글에 '욕망'에 대한 개념은 직접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아쉬운 사실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알음알이'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동의하기 어려운 풀이만 존재합니다.
약삭빠른 수단. ≒알이알이.
마치 '알음알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음해하는 듯한 불쾌한 기분마저 듭니다.
마음의 세계에 자리하고 있는 <그것>은 몇 개의 갈래가 있다고 합니다.
처음의 양갈래는 시간에 따른 이분법 적용인 듯합니다.
첫째로 사람들이 이때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무엇을 가리킬 때, 일컫는 <그것>이다. 이러한 <그것>은 다시 두 개로 나뉘는데, 하나는 내가 눈으로 마주하는 이때-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무엇을 가리킬 때, 일컫는 <그것>이다. 이런 <그것>은 내가 남과 함께 하고 있을 때, 내가 이때-그곳에 바로 '고것'으로 자리하고 있는 무엇을 남에게 <그것>이라고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이를테면 “아저씨, 나는 <그것>이 좋아요.”, “아저씨, 나에게 <그것>을 쥐요.”, “아저씨, 나는 <그것>을 사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것>이다. 나는 이때 나와 남이 함께 눈으로 마주하고 있는 무엇을 가리킬 때, 나의 쪽에서는 멀고, 남의 쪽에서는 가깝다고 여기는 무엇을 남에게 <그것>으로 일컫는다. 다른 하나는 내가 이때에 눈으로 마주할 수 없는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무엇을 가리킬 때, 일컫는 <그것>이다. 이를테면 “지금 <그것>은 여기에 없다. “, “지금 <그것>은 그곳에 있을 게다.”, “지금 나는 <그것>을 볼 수 없다.”라고 말하는 <그것>이다. 사람들은 눈으로 마주할 수 없는 이때-그곳에 자리한 모든 것을 그냥 <그것>이라고 일컫는다. 그것들은 모두 머릿속에서 그럴 것으로 여기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기억에 따른 잣대 적용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에 따라 향수나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래 시제는 매우 다른 느낌을 줍니다.
둘째로 사람들이 그때-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무엇을 가리킬 때, 일컫는 <그것>이다. 이러한 <그것>은 다시 두 개로 나뉘는데, 하나는 내가 이미 지나간 그때에 이곳이나 저곳이나 그곳에 있었던 무엇을 가리킬 때, 일컫는 <그것>이다. 이를테면 “그때 이곳에 <그것>이 있었다.”, “그때 저곳에 <그것>이 있었다.”, “그때 그곳에 <그것>이 있었다.”라고 말하는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앞으로 다가올 그때에 이곳이나 저곳이나 그곳에 있게 될 무엇을 가리킬 때, 일컫는 <그것>이다. 이를테면 “그때 이곳에 <그것>이 있을 것이다.”, “그때 저곳에 <그것>이 있을 것이다.”, “그때 그곳에 <그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것>이다. 사람들은 이미 지나간 그때에 있었거나 앞으로 다가올 그때에 있게 될 모든 것을 그냥 <그것>이라고 일컫는다. 그것들은 모두 머릿속에서 그럴 것으로 여기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꿈꾸길 좋아하는 저로서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대번에 떠오릅니다.
[1] 꼭 가고 싶었는데, 선발에서 떨어져서 못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