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영회 습작 Jun 17. 2023

함께 존재하고 늘 희망을 품고 살기

週末안영회 2023

요즘 글을 읽는 습관이 바뀌었습니다. 지난 3년 정도의 시간 동안 글쓰기를 해온 것도 영향을 주었고, 책 습관도 초점을 갖도록 문지기를 구축해 왔으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그 양상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는 추적해 보지 않았는데, 이번 글은 종종 제 머릿속에서 얼어나는 일종의 패턴을 글로 바꾸는 경험이 될 듯합니다.


평소 다양한 글에서 받은 자극을 제가 관심 있는 특정 주제 중심으로 재해석해 보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평소보다 다수의 소스에서 눈에 띈 글을 보관만 해 두었다가 하나의 주제로 버무려 봅니다.


시작은 한 페벗님의 글을 둘로 나눠서 제 입장으로 해석을 해 보려고 합니다.

이 글에서는 인용한 세 문장 중에서 앞부분을 빼고 후반부의 두 문장을 먼저 다루고, 이후에 다른 글에서 앞선 문장은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품는 것이다

'희망을 품는 것'에 대해 제가 기억하는 최근의 자극(이미지나 문구)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피터 틸의 영상에서 가장 강렬한 느낌을 준 문구가 있었습니다. 피터 틸의 문구를 인용한 이전 글은 경영에 대한 글이었지만, 이번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소환했더니 '자유'를 말하는 듯합니다.[1]

피터 틸은 주로 사업가의 관점에서 논평을 하지만, 꼭 사업으로 한정하지 않으면 통념이나 사회 시스템에 굴하지 말고 미래를 계획하고 실행하라고 합니다. 이를 개인 삶의 차원에서 한 단어로 규정하면 '자유'를 강조한 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와 별개로 떠오른 페벗 김진호 님의 글이 있었습니다.

하나의 방식은 온전하며 연기되어 있고, 자기 맥락을 가진다. <중략> 기준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 기준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그것을 자유라고 표현한다.


만남과 선택의 의미

김진호 님에 따르면 자유란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인 듯도 합니다. 이해를 위해 김진호 님의 글을 조금 더 인용하겠습니다.

누구나 그의 선택과 방식은 연기 속에 있고,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온전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물리적인 실체가 조응하면 에너지의 변환이 일어나듯 만남은 모순을 일으킨다. 모순은 새로운 기준과 해답을 요구한다. 그것을 '미묘한 제3의 길'이라고 표현한다.

당신도 온전하고 나도 온전하지만, 우리가 함께하기 위해서는 그 조건에서 온전한 '미묘한 제3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길이라는 것은 방식을 말한다. 방식이라는 것은 사유와 행동의 어떤 패턴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복해서 읽어 보니 평소 일상의 고민에서 만든 두 개의 그림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성공적 대화를 돕는 그림>인데, 교집합이 '만남' 혹은 '모순'을 그린 듯하다는 생각입니다.

두 번째는 <만남은 기회이니 피하지 말고 집중하자>라는 제가 붙인 문구가 떠오릅니다. 전자가 양자 관계를 그림의 바탕으로 삼았다면, 이 그림은 온전히 나로 축적된 현상과 인지를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나기 전에 기준에 얽매이는 것을 자유를 잃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때 자유를 지키고 '미묘한 제3의 길'을 찾는 태도가 '희망'일 수 있고, 용기라 표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태도가 미래를 결정하는 방식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진짜로 미래를 우리가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연기 속에 있어도 자유로울 수 있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면 연기 속에 머문 나를 전보다 더 선명하게 인지하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는 태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을 제외한 나는 바로 생명 그 자체

앞선 글이 독자님들에게 제대로 설명이 되려면 연기를 설명해야 합니다. 아직 이를 자신 있게 제 말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페벗 김진호 님의 글을 인용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생각하고 사유하는 것은 '나라고 불리는 전체의 2%도 채 못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은 98%(정도)의 나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98%의 나는 바로 생명 그 자체였다.  생명은 내 의식과 상관없이 자연스러운 법칙에 의해 상호작용하며 살아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중략> '그 모든 것이 내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옳고 그름도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었고, 감정도 생각 속에서 처리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통찰하게 된 것이다.

위 글에서 생각을 제외한 나를 떠올릴 수 있다면, '내 의식과 상관없는 자연스러운 법칙'을 따라 산다는 사실을 생각(?) 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연기(緣起)라 부른다는 사실은 이전에 시골 농부님의 글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후에 최초에 인용한 문구를 다시 볼까요?

연기에 따르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존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은 우리가 구분되는 개체로서 갖는 성질인 '개성'과 동시에 우리가 갖는 '연기'의 결과물로 갖는 관계와 결합된 하나의 자기 맥락을 설명하는 듯합니다. 그 맥락 안에서 그대로 수동적으로 살 수도 있지만, 기준에 갇히지 않고 '열린' 삶을 살아가는 일을 '희망'을 품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페벗님을 이를 자유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겸손과 용기(희망)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우리는 연기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로도 읽히고 지나치게 생각에 갇혀 기준이 우물로 바뀌는 혹은 안정감이라는 공포 속에 갇혀 살지 말자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저에게 이를 반영한 개념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은 바로 우리가 전체의 일부란 사실을 깨닫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살면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 주었던 '좌절'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좌절이 저에게 겸손을 알려 준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럼에도'를 실천하는 용기입니다. 용기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원피스의 루피를 보고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담아뒀는데, 이 글을 쓰면서도 반추하게 됩니다.


주석

[1] 피터 틸의 <Zero To One>을 읽으면 그의 말의 맥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그냥 '자유' 혹은 '자유 의지'를 설파하는 듯한 느낌만 소재로 삼습니다.


지난 週末안영회 2023 연재

1. 계획은 개나 주자

2. 측정, 단위 그 이전에 기댓값

3. 바둑판 같이 존재하는 우주인가?

4. 내가 책을 고르고 거르는 방식

5. 도전하고 실패해도 편안하게 성장하기

6. OKR과 퍼스널 칸반 접목하기

7. 학습 피라미드와 코드 리뷰 피라미드 비교해 보기

8. 나의 경력관리와 직업사

9. 삶에서 문제 삼기와 함수의 활용

10. 기업 = 지속가능함 + 성장가능성

11. <강력의 탄생> 그리고 개인 차원의 창조적 파괴      

12. 이젠 어른이 돼야 해, 소년

13. 나의 바운더리를 튼튼하게 하는 이분법

14. 난 왜 람다 계산법이 생각나지?

15. 배움 혹은 이상과 내 삶 사이에서 균형 잡기

16. 만남은 기회이니 피하지 말고 집중하자

17. 정원관리는 공동체 리더의 필수 덕목

18. 성공했냐가 아니라, 목적이 뭐고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

19.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작가의 이전글 로드맵 전환 과정에서 모호함 다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