週末안영회 2023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지인이 페북에 올린 글입니다. 최근에 그와 만나 대화를 나눈 탓인지 관심이 가는 화두라 가볍게 생각을 적어 봅니다.
그의 페북 댓글을 보면 '만나서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입니다. 저 역시 동의합니다. 마침 친한 동생과 어제 나눈 대화에서 연관된 발언을 한 일이 있네요. 저는 컨설턴트로 오래 일한 탓에 업무상의 대화에는 능숙한 편입니다.
작년에 동료들의 업무상 대화를 멘토링하는 과정에서 그린 <성공적 대화를 돕는 그림>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는 공통의 목표가 있을 때 가능한 대화법입니다. 프로젝트나 일이 지향하는 목표만 분명하면 맥락 설정을 할 수 있죠. 저에게는 도리어 가까운 사람과의 소소한 대화는 훨씬 어렵게 느껴집니다.
두 번 읽은 <당신이 옳다> 독후감은 제가 노력하는 과정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를 익숙한 방식으로 표명한 기록입니다. 구글링 해서 제 기록을 찾아 제목만 훑어보아도 와닿는 문구가 많습니다.
업무상 대화와 달리 일상의 대화가 어려운 이유는 ‘공감’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어제 동생이 안부차 했던 말했던 내용이 공감에 기반한 대화가 어려운 이유를 연상시켰습니다. 그는 낮에 동료들과 커피숍에 갔는데, 원두를 묻는 일이 귀찮아했더니 동료들이 이해를 못 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는 원두 선택이 생수 제품 중에 뭘 고를 것인지와 같은 무가치한 선택인데, 동료들은 그렇게 말해도 그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들이 많이 있는 듯합니다. 피해자(?)로 겪은 기억이 먼저 떠오르지만, 가해자(?)로 저지른 행위도 꽤 될 텐데 기억조차 못하네요.
최봉영 선생님의 글과 가르침을 접한 덕분에 말속에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래 최봉영 선생님 그림처럼 말을 욕망을 드러내는 표상입니다.
그런데, 위 그림은 범주를 비교하기 위해 하나의 평면에 각종 개념들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지만, 다른 관점으로 말과 생각을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속에 담긴 생각은 애초부터 내 생각이었는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형성된 생각인지 불분명합니다. 실제로 요즘 언론은 국민을 속이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듯도 보이고, 실제로 다수가 속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화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화두를 던진 질문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커다란 시행착오를 깨달은 후에 손에 잡힌 인생 책이 있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야>죠. 이 책을 다년간 반복해서 곱씹어 읽으면서 저는 매 순간 내가 풀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물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앞서 제기한 질문 역시 나의 욕망과 '지금'이라는 시공간과 연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질문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의 질문이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지금 꼭 알아야 할까? 이를 무시하면 상대방은 어떻게 느낄까?
상대가 원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혹은 단지 생각만 하고 싶은 것일까?)
상대가 진정 그것을 원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상대가 원하는 것과 나의 관계는 무엇인가? (단지 지지해 달라는 것일까?)
1. 계획은 개나 주자
8. 나의 경력관리와 직업사
11. <강력의 탄생> 그리고 개인 차원의 창조적 파괴
12. 이젠 어른이 돼야 해,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