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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Dec 17. 2022

세상사에서 그 자신으로 초점을 맞추고

<당신이 옳다>를 읽고 배운 내용 실천하기 5

존재의 과녁에 도달할 때까지 상대를 놓지 마라

책 132쪽 소제목을 보고, 아내와 함께 할 내용을 상상해보니 어렵게 느껴졌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애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이었다.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다 보니 서툰 공감 능력 탓에 아이들의 개입이 큰 방해가 될 듯하다.

나는 첫 질문부터 "역사는 됐고, 너는?"이라고 내 질문의 최종 목표를 분명히 했다. 과녁을 분명히 정하고 말한 거다.

일단, 둘만 있는 시공간을 만들어서라도 해보자고 각오해본다. 실천 후에 다시 이 문장을 다시 돌아볼 일이 있기를 기대하자.

공감적 대화의 과녁은 언제나 '존재 자체'다.

놀랍게도 아래 문장은 우리 부부를 대상으로 쓴 글처럼 느껴진다. 최근의 내가 느낀 좌절에 대해 저자가 '절대 놓지 않아야 한다'라고 강조한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방향과 길을 잃은 상대의 말이 과녁에 분명히 도달할 때까지 손을 꼭 잡고 상대의 손목을 절대 놓지 않아야 한다. 언제까지? 상대의 존재 자체를 만날 때까지. <중략> 공감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러니, 그저 생각에 머물지 않고 삶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게 해 보자.


사람 마음은 논쟁과 설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첫 줄은 내가 이제야 조금 감을 잡는 일이다. 2012년 경에 멘토였던 대기업 상무님의 경청 장면에서 충격받았던 '나의 경청 불능'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 때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즉 '당신'에 주목한 말이다.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수용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의미다. 자기 존재에 대해 이런 시선과 터치를 받으면 사람은 멈칫한다.

일을 함에 있어서 결과부터 따지는 조급함이 일을 그르친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경청이나 공감에 있어서는 이를 전혀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나의 한계다.


다행스러운 점은 어제 올린 <미래에서 현재로 역행하며 비전 세우기> 편에서 '머리와 가슴으로 동조할 수 있게 시간을 주기'로 표현한 경영 일상에서 배웠다는 점이다. 몸은 하나이니 가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자기 마음을 어떻게 말할지 모를 때

내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 상당수가 이러고 있는 듯하다.

어디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꺼내야 할지 분간이 힘들어서 무작정 누르고 사는 게 상책이라 여긴다.

나는 그저 공감을 위한 거울이 되어주면 그만이다.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이 이야기를 과녁에 맞게 바꿔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더 수월하다. 듣는 사람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세상사 이야기에서 '그 자신'의 얘기로 돌려주면 된다. 그러면 낯설어도 자기를 만나며 마음이 움직이다. '아, 내가 그랬구나, 그런 마음이었구나, 그래서 내가 반복적으로 그랬던 거구나' 알아진다.

실천 지침으로 삼기에 적당한 크기(?)이다. 그리고, 아내가 아니라도 적절한 대화 상대가 떠오른다. 도전해보자.


지난 <당신이 옳다>를 읽고 배운 내용 실천하기 연재

1. 가족의 존재에 관심을 두는 행동하기

2. 우울과 무력감은 삶 그 자체일 뿐, 병이 아니다

3. 존재 증명을 위해 몸부림치는 그의 고통에 공감하기

4.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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