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영회 습작 Feb 28. 2024

교류로 갔다가 상호작용으로 돌아오기

지식 덕후의 탄생

지난 글에 이어 번역 막바지 작업 중에서 또 잠시 토끼굴[1]에 들어와서 쓰는 글입니다.


interaction을 교류로 번역하기

이번에도 시작은 박성철 님 의견에서 출발합니다.

애초에 초벌 번역에서 상호작용으로 했던 것은 임춘봉 님이 '교류가 입말로 적합하다'라고 주장해서 이를 채택했습니다. 지금 와서 번복하는 것을 보면 성급한 결정이었는데, 왜냐 하면 당시 근거를 찾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에라도 베타 리더 분들이 걸러 주어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암튼, 번복 결정을 할 때,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이번에도 제미나이에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의 호출 관계를 나타낼 때 쓰이는 interaction의 한국말 번역어로 적당한 표현은 무엇인가요?

'무난함'이란 뉘앙스가 제미나이 결과에서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으로 드러나는 듯합니다.


교류의 뜻은 무엇인가?

앞서 제가 교류(交流)를 택할 때, 당시 근거를 찾아보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방금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를 보니, 낯설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경험상, 표준국어대사전은 소프트웨어 분야의 풀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프로그래밍 서적 번역에서 절대적인 기준으로 쓸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보편적인 단어 쓰임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이를 찾아보고 유추하거나 해석한 후에, 제가 가정한 쓰임새를 키워드로 넣어 구글 검색을 해 보면 조금 더 정교하게 사람들의 한국말 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암튼 그래서 교류를 찾아보니 세 갈래의 풀이가 있습니다.  

「1」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이어 흐름. 또는 그런 줄기.

아마 제가 '교류'를 그대로 둔다면, 첫 번째 풀이의 응용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근원이 프로그램 특정 루틴이고, 물줄기가 호출 따위의 관계가 만드는 행위가 되겠죠.


교류는 긍정적인가 뉘앙스를 주나?

저도 댓글에 바로 동의를 했는데, 사전 풀이에서는 근거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구글링도 쉽지 않을 듯해서, 이번에도 제미나이에게 물었습니다.

교류는 한국말 문장에서 주로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나요?

결과를 읽어 보면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교류"는 기본적으로 양방향적인 상호작용을 의미하는 중립적인 단어입니다. 따라서 한국말 문장에서 긍정적인 의미뿐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중략> "교류"는 자체적으로 긍정/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단어가 아니라, 문맥과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중립적인 단어입니다. 따라서 "교류"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문장의 전체적인 내용과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리어 이보다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사실은 예문이 사전이나 제미나이 모두 문화 교류, 국제 교류, 학술 교류 따위에 쓰인다는 점입니다. 이들을 키워드로 구글링 해 보아도 짐작과 비슷한 페이지 건수가 나옵니다.


어떤 근거로 번역말을 고르는가?

토끼굴에서 분석을 하면 알게 된 내용은 제가 사실에 기초하기보다는 느낌에 의존하여 즉흥적 수용을 했다는 점입니다. '교류 = 긍정적'도 그랬지만, 애초에 교류를 받아들였을 때도 '상호작용'은 입말로 쓰이지 않아 글에만 나오는 사어일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동의하는 부분과 부정확한 부분이 섞여 있는 주장입니다.


일단, 당시 제가 높이 산 부분은 도전적 한국말 사용입니다. 임춘봉 님은 한동안 <우리말답게 번역하기>에 대해 자료를 만들어 기회가 되면 곳곳에서 발표를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 생각에서 듣기에 급전적이거나 도전적이라고 느끼는 제안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3]

교류의 경우는 이 참에 그렇게 노출이 되어도 좋겠다는 쓰임새 출시(?)의 생각도 잠시 갖고 시도한 것인데, 근거를 찾고 물러서기로 했습니다.


단어 하나로는 바뀌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단어의 밑바탕이 되는 다른 말들이 효용 가치를 더해 줄 텐데. 그런 것이 없다면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로 독자들의 시간이나 인지 부담을 줄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습니다.


사어, 터박이 말, 입말, 글말

마지막으로 임춘봉 님이 모호하게 말한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먼저 사어(死語)을 찾아봅니다.

『언어』 과거에는 쓰였으나 현재에는 쓰이지 아니하게 된 언어. 또는 그런 단어. 고대 그리스어, 고대 라틴어 따위가 있다. ≒죽은말, 죽은언어, 폐어.

교류가 사어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당시 임춘봉 님의 나타내려던 의미는 그 뜻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서 소통이 되었습니다. <한국말 말차림법> 책을 보면 '입말과 글말'이 있습니다. 찾아볼 필요도 없이 입으로 전하는 말과 글로 전하는 말을 뜻합니다.

'사어'라는 단어를 넣어 임춘봉 님이 강조하려던 내용은 입말로 쓰이지 않고, 글말에 그치면 결국 쓰지 않는 말이 된다는 의미라고 보았습니다. 다시 최봉영 선생님 표현을 빌면, '터박이 말'로 자리를 잡으려면 유통 빈도가 높고 기억할 확률도 높은 입말로 써야 할 듯합니다.


이 정도 정리하고, 다시 토끼굴을 나가 번역 작업(v5.4.3)을 마무리합니다.


역시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지난 글도 기준을 정한 후에 실제 반영하고 현실의 복잡함 혹은 Realization의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책 전체에서 7건의 '교류'는 통일하지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일부는 interact의 번역으로 '교류하는'으로 되어 있는데, '상호작용을 하는'으로 길게 늘이는 것이 전혀 이점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번역이 아닌 제가 쓴 글(부록)에서 꽤 많이 썼다는 사실입니다. 근거를 찾아보지 않고 '교류' 제안을 받아들인 데에는 제가 인지 못하지만, 이미 익숙하게 쓰고 있는 습성이 무의식에서 작용한 듯합니다.


주석

[1] 켄트 벡의 책 번역 과정에서 나온 말로, 제가 옮긴이 주석으로 넣은 다발말[2]을 인용합니다.

토끼굴에 빠진다는 표현은 루이스 캐럴 원작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유래한 영어 관용어 ‘Down the rabbit hole’를 번역한 것입니다. 무언가에 깊이 빠져들거나 이상한 곳으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교류 말고도 coupling/decoupling을 결합/이합 대칭으로 하자고 제안하셔서 반대한 일이 있다.


지난 지식 덕후의 탄생 연재

1. 2024년에는 지식 덕후로 변신하는 중

2. Optionality에서 선택 가능성으로 가는 길

작가의 이전글 Optionality에서 선택 가능성으로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