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덕후의 탄생
번역 막바지 작업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아서 뒤로 미루던 작업을 직면(直面)합니다. 번역 과정의 작업 단계를 페이지로 만들어 공유했는데, optionality라는 중의적인 말의 번역을 처리하는 일의 번호는 5.4.1입니다.
직전까지 번역 현황을 탐색하고 구글링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다가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아 브런치를 열었습니다. '지식 덕후' 습관은 저에게 고향 같은 안도감을 줍니다. 그래서, 브런치라는 토끼굴[1]로 잠시 들어와서 어떻게 길을 만들지 아이디어를 만들어서 나가려고 합니다.
잠시, 생산(번역) 현장을 벗어나서 토끼굴로 왔습니다. 눈앞에 구글 독스가 아닌 브런치가 보입니다. 토끼굴을 제가 만드는 메타버스의 공간으로 묘사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브런치 옆에 생산이 아닌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야겠죠. 번역하고 있는 다시 말해서, 제가 타이핑하는 글이 아닌 영어 원문으로 가서 'optionality'가 어디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탐색하는 길로 가 봅니다.
다행입니다. 16개가 나옵니다. 둘 다 글쓰기라 토끼굴의 느낌을 만들 장치를 만들기로 합니다. 생산자가 아니라 관광객 모드로, 헉... 축덕이 겪는 부작용으로 '관광객' 하니까 국대 감독으로 일할 때, 클린스만의 태도가 오버랩됩니다.
다시 원래로 돌아가서, 16개 문장을 찾아 그냥 옮겨 봅니다. 손가락을 움직이긴 하지만, 두뇌는 최소한으로 써서 관광객 모드를 구현(Realization) 해 봅니다. 더불어 나중에 고생을 덜 하게 위치를 괄호에 표기해 둡니다. 관광객이 사진을 찍을 때, (요즘은 자동으로) 남겨지는 메모 같은 것이죠.
Tidy First? also begins describing the theory behind software design: coupling, cohesion, discounted cash flows, and optionality. (Preface)
Theory doesn’t convince. No one is going to say, “Tidying is bullshit. Oh, wait, you’re creating optionality.(Part III. Theory)
In a word, optionality.
As I learned to enhance optionality, I saw chaos as an opportunity.
Even though we know that we have to invest in structure to maintain and expand optionality, we can’t really tell if we have.(이상 Chapter 23)
Economics: Time Value and Optionality
We’ll get to how software design interacts with money after we’ve looked at these two effects—the time value of money and optionality—in more detail.(Chapter 24)
Next we’ll look at the other source of software’s economic value: optionality. Fun times, because time value and option value often conflict.(Chapter 25)
There’s another, sometimes conflicting, source of value: optionality.
Thinking of software design in terms of optionality turned my thinking upside-down. (Chapter 26)
잠시나마 방대한 문서에서 제공하는 찾기 기능에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한편, 16개라고 했지만, 목차와 인덱스가 있어서 실제로는 10번 나타났습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새삼 검색 기능의 한계도 깨닫게 됩니다. 자, 이제 무엇을 할까요? 이렇게 묻는 것을 보니 진짜 관광객 모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클린스만의 '해줘 축구'처럼 '해줘'가 불가능합니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 의자를 뒤로 뺐더니 생각났습니다. 설마 이 행동이![3]
단순하게 제 번역 문서로 가서 뭐라고 했는지 찾아서 연결하는 것입니다. 학창 시절 수학시간에 함수[4]를 배울 때 정의역과 치역을 연결하던 바로 그 모습을 몸으로 실행하면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Realization이군요. 거기에 더하여 '함수형 인간' 토끼굴까지 더해지네요.
미래의 선택 기회: 3회
선택권: 2회
옵션성: 2회
옵션: 2회
선택의 여지
나도 모르게 관광객 모드에서 분석으로 전환되었고, 작업자도 바로 제 자신이다 보니 사정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의미 있는 분석 결과는 세 가지 정도였습니다.
저자가 금융 개념을 도입해서 선택을 바로 내리지 않고 시점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을 전달해야 한다
두 달에 걸쳐 번역하면서, 시점에 따라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다
용어 선정을 하고 각 장별로만 일관성을 맞췄다
암튼, 지금은 그 사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토끼굴에서 나올 시점이 되어 가는 듯합니다. 주어진 시간 내에 결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그간 경험으로 마음에 둔 표현이 있긴 했습니다. 더구나 믿음직한 지인이 제가 마음에 둔 선택지를 지정하고 있어서 굳어지는 듯도 했습니다.
자기 편향에 빠질 우려를 줄이기 위해 구글링으로 많은 쓰는 말인가 보았더니, 그렇네요.
섣불리 결정을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단어 자체를 두고 각종 번역 서비스가 어떤 단어를 제시하는지 보기로 합니다. 저 역시도 Optionality를 최대한 활용하는 중이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먼저, 과정에서 급격하게 친해진 제미나이에게 묻습니다. 제가 뽑은 후보를 1번에 올려 주네요. :)
부수적인 느낌이 강해졌지만, 그래도 DeepL-파파고-구글 번역 순으로 결과를 확인해 봅니다. 제미나이에게 묻고 난 상황에서는 결과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네요.
책에도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토끼굴에서 만든 규칙을 들고, 호기롭게 번역에 일관성을 부여하다가 다시 벽에 부딪히는 순간의 기록을 남깁니다. 번역 중인 책의 24장에서 다음 문장은 '번역 가능성'을 넣으면 모호해집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어떤 물건에 대한 선택권이 물건 자체보다 낫기 때문에 불확실성에 맞서는 선택권을 만듭니다.
직관적으로는 '선택권(選擇權)'이 마음에 들지만,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는 매우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어 주저하게 만듭니다.
『법률』 선택 채권에서, 여러 개의 변제물(辨濟物)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는 권리.
대안으로 '선택지(選擇肢)'도 있는데, 역시 편협한 정의만 존재합니다.
『교육』 미리 제시된 여러 개의 답 가운데에서 물음이나 지시에 따라 알맞은 답을 고르도록 하는 시험 형식.
소프트웨어 설계에 대한 한국말 지식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당장 결론을 내야 하는 번역 일에서 그런 현황을 따질 때는 아닙니다. 결국, 제 직관을 버리고, 저자인 Kent Beck이 금융 옵션 개념을 도입한 것을 따르기로 합니다.
선택 가능성을 구현한 구체적인 물건을 지칭해야 할 때는 '옵션'이라 하기로 합니다.
[1] 켄트 벡의 책 번역 과정에서 나온 말로, 제가 옮긴이 주석으로 넣은 다발말[2]을 인용합니다.
토끼굴에 빠진다는 표현은 루이스 캐럴 원작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유래한 영어 관용어 ‘Down the rabbit hole’를 번역한 것입니다. 무언가에 깊이 빠져들거나 이상한 곳으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농담인데, 이런 농담을 하면 코드가 안 맞는다는 의견을 최측근에게 들었습니다. 혹시라도 왜 농담인지 궁금하신 '지식 덕후' 입문자(?)가 있다면 <인과 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논리적 추론>을 보세요.
[4] 생소한 분들은 <다양한 함수의 정의와 표현>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