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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Aug 25. 2024

생명의 위대함에 대하여...

지식 덕후의 탄생

페벗 이순석 님의 글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생명의 위대함은 '계산 가능하지 않는 것'을 '계산 가능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 끝없이 그 둘을 일치시켜 간다는 것이다. #工틈

하지만, 매력적으로 느낄 뿐 그 의미가 분명히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즉각적으로 페북에 댓글을 달았지만, 즉흥적 문답으로 말씀을 헤아리기에는 제가 배경지식이 부족하다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묻따풀을 할 수는 있기에 이를 시도하는 글입니다.


처음 해 보는 생명과 계산의 연결 시도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생명과 계산의 연결이었습니다. 달팽이가 계산을 할까요? 계산한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생각을 두 가지 방향으로 펼쳐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는 세계를 만든다>를 쓰며 배운 지식을 대입해 보는 일입니다. 생명은 행동을 하기 전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뇌가 예측 기계처럼 행동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예측 행위는 어쩌면 눈앞에 나타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의 기억을 꺼내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는 과정일 텐데, 이 과정에서 계산이 수행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는 환경 적응을 위해서 우리가 배운 내용을 반복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이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반복할 수 있게 하는 행위가 어쩐지 '계산'이란 표현과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위키피디아에서 Computable을 키워드로 검색을 했더니 Computability 페이지가 얼렸습니다.

Computability is the ability to solve a problem in an effective manner. It is a key topic of the field of computability theory within mathematical logic and the theory of computation within computer science. The computability of a problem is closely linked to the existence of an algorithm to solve the problem.

이 글에서는 첫 줄만 참조하겠습니다.

Computability is the ability to solve a problem in an effective manner.

어딘가 모르게 생명 현상은 환경 적응을 위해 끊임없이 Computability를 활용하는 듯합니다. 예측 기계로 돌아가는 뇌가 그렇게 하는 듯하고, <우리의 두뇌는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꿈을 꾼다>를 쓰며 배운 꿈의 기능도 Computability를 몸에 배양시키는 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연결해 보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뿌연 것을 제거하려는 생명의 노력

다행히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순석 님이 남기신 댓글 덕분이죠.

언제나 탈은폐에 있는 비극 속의 존재만이 저런 무모한 일에 도전할 것이기에......
형식의 일종인 body를 제거해 봅니다. ^^

탈은폐는 어감은 알듯도 하지만 생소한 말이라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이고, 위키피디아에서 Disclosure로 검색을 해도 마땅한 페이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제미나이 도움을 받아 아래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탈은폐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탐구했습니다.

다행스럽게 묻따풀을 위해 하이데거의 저서를 읽지는 않아도 될 듯합니다. 또다시 이순석 님이 남기신 댓글 덕분이죠.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은폐된 상태의 오묘한 존재가 아닌지요? '나'를 어떤 말로 표현해 낼 수 없듯이, 안 대표님 또한 그 어떠한 표현법으로도 표현을 다 못하는 은폐된 존재가 아니겠는지요? 그렇게 언제나 은폐된 존재는 '그 은폐'를 탈출할 때에만 드러날 수 있는 생명이 아니겠는지요? 그 생명은 그렇게 위태한지라 언제나 위태함을 벗어나려고 "꾀를 내어 바깥으로 던지는, 기투(ent-wurf)"의 존재가 아니겠나 싶습니다. 하이데거에게서 배운 것인데.... 많은 부분이 공감이 갑니다....... 최근에 와서는 '그 꾀'를 내는 방법이 참으로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모두 저 뿌연 것을 제거하려는 노력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와... (한참 가만히 감탄을 합니다.) 감탄을 이끈 포기말은 마지막 줄에 있습니다.

모두 저 뿌연 것을 제거하려는 노력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투(ent-wurf)라는 말도 전에 이순석 님 페북에서 처음 본 단어인지라 제미나이를 연 김에 한번 더 물어서 다음 정보를 건졌습니다.

기투라는 개념은 독일 관념론 철학, 특히 칸트의 철학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칸트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선험적인 개념들이 작용한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개념들이 마치 '던져진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즉, 기투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과정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는 개념입니다.

역시 분명히 이해는 안 되지만, 그런 현상을 경험해 본 듯도 합니다.


미지를 탐구(?)하는 삶의 공통 양식

그리고 바로 여기서 어제 올린 글에서도 인용한 빙산 이미지가 작동합니다. 최초에는 '빙산 의사소통'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같은 위상으로 느껴지는 문제가 삶의 많은 영역에서 발생하는 듯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마치 프로그래밍 영역에서 함수화 하지 못하는 부분을 함수화해 나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모습이나, 저 스스로도 '함수형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반복 실행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찾으려 했던 노력과 굉장히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지식 덕후의 탄생 연재

1. 2024년에는 지식 덕후로 변신하는 중

2. 교류로 갔다가 상호작용으로 돌아오기

3. 오늘의 1달러가 내일의 1달러보다 크다

4. 종심타격(縱深打擊)을 작게 잘라서 응용하기

5. 쓰고 있는 연재를 돌아보고 지도를 만들기

6. 이 사건이 창작자들과 자본가들의 갈등이었을까?

7. 시간과 시장이 알려 준 거래와 일상의 의미

8. 늘어나는 AI 고용주(?)와 생각의 자동화라는 부작용

9.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일 때, 옵션(선택권)을 인식하다

10. 이러다가 곧 구글 검색을 안 할 듯합니다

11. Value Object 이전에 Object란 사실

12. 생성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리다

13. <AI 미래>로 배운 집필, 소통의 이면, 작명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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