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호學의 시작
<제정신이라는 착각>의 프롤로그를 읽고 난 후에 1부를 건너뛰고 2부부터 읽었습니다. 예측 기계라는 제목이 끌렸기 때문입니다. '예측 기계'로 작동하는 뇌 현상을 설명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는데, 실제 내용도 그랬습니다. 2부는 3개 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먼저 5장 '우리는 세계를 만든다'만 먼저 읽었습니다.
가장 먼저 밑줄 친 포기말[1]입니다.
주관적으로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확신의 본질이다.
이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월말김어준>에서 들었던 박문호 박사님 2022년 12월호 강의 덕분인 듯합니다. 틀릴 수 있더라도 이런 확신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게 해 주었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확신이 아닌 믿음도 있습니다.
내가 뭔가 믿는다고 말할 때는 보통 그것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아는 것이 있고 모르는 것이 있다는 상태에 대한 인지를 말하는 듯합니다. 다음 내용을 보면 그 믿음이 변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서술합니다.
시간이 흘러 그 동료를 더 잘 알아가면서, 이런 불확실성은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그 동료가 나를 칭찬하는 말을 할뿐더러, 존중하는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동료를 알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행동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름 대로 안다고 여기겠죠. 자주 인용했던 그림이 떠오르는 동시에 '유기체가 서로의 상태를 인지하는 전형적인 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학문의 영역에도 잘못된 확신이 끊임없이 확인됩니다.
확신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는 것은 결코 인간관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학문의 역사에서는 확실히 믿었던 지식이 새로 등장한 인식 앞에서 폐기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유명한 예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야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뿐 당시에 학문적 확신에 도전하면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왜 그리도 우리의 확신이 옳다고 확실할까? <중략> 어떤 것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오롯이 하나의 뇌에서만 따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은 많은 뇌의 협업을 통해 생겨난다.
<현실과 조화를 이루는 환상 그리고 일됨을 떠올리기>에서 예를 들었던 종교와 이념적 신념이 대표적인 예가 될 듯합니다.
우리의 확신 중 많은 것은 묻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에게서 넘겨받은 것이다. 우리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어도 이런 확신을 굳게 믿는 데 문제가 없다.
당연스럽게 받아들여 온 말입니다. 반면에 반대급부로 최근 묻따풀 즉, 묻고 따지고 풀어 보는 일에서 겪는 배움을 떠올리게 됩니다. 묻따풀이 확신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는 없지만, 확신을 갖기 전에 확신을 가진 다른 대상과 연관 관계를 따져 묻게 되니 오류를 줄여줄 수는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확신 사이에서 충돌을 겪을 때도 있을 듯합니다.
아무튼 저자는 이에 대해 빠르게 결론을 내려 주어 좋습니다.
확신이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확신은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 집단의 소속감(그리고 다른 집단과의 차별화)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두 집단 사이에서 생사를 건 충돌, 예를 들어 전쟁이 일어날 때를 보면 강한 집단의 '확신'을 갖고 있을 때 생명과 번역이 확보되었을 것이란 생각을 역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 포기말을 보면서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확신은 뇌에서 어떻게 생겨나고, 개인에게 어떤 기능을 하며, 확신을 바꾸게 하는 일은 왜 그렇게 어려울까?
'뇌에서 생겨난다'는 전제가 명쾌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인에게 우리가 본다고 여기는 영상이 '뇌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더니 굉장히 놀라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 지인에게도 다음 내용을 보여 주고 싶네요.
우리는 진화 과정에서 생존과 번식 측면에서 행동을 최적화하는 두뇌로 무장하게 됐다. <중략> 생존은 확신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잘 보여줄 수 있는 주제다.
그리고 다음 내용은 또다시 저자의 탁월한 질문 던지는 솜씨를 보여줍니다.
단세포 상태에서 수억 년 동안 아주 성공적으로, 그다지 형태의 변화도 없이 생존해 온 원시적인 단세포생물도 수업이 많지 않은가. <중략> 상대적으로 단순한 상태로도 진화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데, 어째서 인간은 이리도 복잡한 생물체가 된 것일까?
이후 저자는 외계인을 동원하여 슬며시 '유연성'이라는 힌트를 제시합니다.[2]
외계인은 인간을 관찰하며 행동의 어마어마한 유연성을 발견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행동을 조절해 아주 불리한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 <중략>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기본 능력은 앞서서 행동할 줄 아는 능력이구나! 따라서 예측하고, 이런 예측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로구나!
5장의 내용은 유연성에서 '예측하는 능력'을 거쳐 2부로 저를 이끌었던 '예측 기계'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종종 예측하는 능력을 지능과 연결하지만, 사실 이런 예측 능력은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능력이다. <중략> 우리의 뇌는 곧 예측 기계인 것이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문장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인용한 내용을 읽으면서 최근에 읽은 '마음 챙김' 내용도 떠올랐지만, 주제와 무관하여 여기서 다루지 않습니다.
5. 우리 모두 미쳤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