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덕후의 탄생
번역 막바지 작업에 적당한 긴장감은 유지하고 있지만, 과도하게 쫄리는 대신에 몰입해서 번역(본업)과 지식 덕질(이완) 사이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난 글에 이어 또 한국어판 <Tidy First> 26장에 나오는 내용 다발말[1]이 말을 걸어서 멈추고, 풀기도 하고 곱씹기도 합니다.
먼저, 켄트 벡이 실체화와 학습 병행의 과정을 설명하는 다발말은 경험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먼저 현존하는 옵션 가격 공식 테스트를 코드로 구현했습니다(이 과정에서 부동소수점 숫자를 비교할 때, 엡실론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옵션에 대한 직관이 생겼고, 그 직관은 소프트웨어 설계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으로 흘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포기말[2]은 제가 주니어 컨설턴트 시절, 최고 난이도의 업무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찾아낸 방법과 같습니다. 당시 사수 역할을 했던 분이 그 모습을 보면, 종심타격(縱深打擊)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1) 그 과정에서 옵션에 대한 직관이 생겼고, (2) 그 직관은 소프트웨어 설계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으로 흘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6년 정도가 흐른 후에 금융과 회계가 섞인 프로젝트에서 바로 켄트 벡이 개발한 TDD와 상태도를 이용해서 난관에 처한 프로젝트에서 심장에 해당하는 기능의 핵심 로직을 직접 구현한 때에도 종심타격(縱深打擊)의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쓰였습니다.
아마 종심타격(縱深打擊)은 직관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어서 응용하기 좋습니다. 하지만, 종심타격 노하우를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다수의 팀원들을 도제식으로 키우던 컨설팅 회사에 다닐 때 몸으로 배웠습니다.
한편, 포기말에 (2) 번 부분은 <2024년에는 지식 덕후로 변신하는 중>에서 다룬 제 지식의 축적 과정에서 활용하는 행동 패턴과 거의 일치합니다.
그 직관은 소프트웨어 설계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으로 흘러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현실 문제를 풀면서 얻게 된 야생 학습 능력을 독서 전략으로도 바꾸어서 실천에 옮겼습니다.
<독서 방법도 발전시킬 수 있는가?>에서 '독서 전략에서 읽고 쓰기 전략으로'으로 라고 쓴 다발말이 바로 그것이죠. 사람들에게 설명하면 꽤나 생소하게 듣지만, 익히고 나서 보면 공부(工夫)[3]라는 한자어로 표현되는 바로 그 일입니다.
지식을 내 몸에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 혹은 시장에 그대로 적용하고 피드백을 받는 일의 연속이죠. 이때 제약이 되는 것은 이성적인 것이나 방법 자체가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입니다. 거의 대부분 그렇죠. 용기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고요. 그러한 탓에 <일단 공개적으로 시작하면 만나게 되는 것들>이란 글을 중요한 문제라 생각하고 글로 쓴 듯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지식에 중독되는 느낌도 있는데, 어쨌든 저는 시간 소비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즐기는 동시에 생산을 하고, 그 결과로 경제적 자유가 늘어 시간을 벌고 싶기 때문에 덕질을 가속화하려고 합니다.
[1]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왜 포기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배움의 순간: 공부란 무엇인가?>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