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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Jan 29. 2023

삶의 방식으로서의 기독교

비종교인으로 읽은 <욕쟁이 예수> 5

이 글은 지난 글에 이어 <욕쟁이 예수> 중에서 '찍사 예수'와 '순결남 예수' 내용 중에서 밑줄 친 내용을 기준으로 메시지를 도출하고 생각을 덧붙인 글이다.


삶의 방식으로서의 기독교

사진 찍기에 별 흥미가 없는 나에게 '찍사 예수'에서 사진 찍기에 대한 내용이 아닌 다음 내용이 던져주는 메시지가 더 울림이 있었다.

'종교 행위로써의 기독교'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서의 기독교'가 옳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어릴 적에 교회를 다니고 불과 얼마 전에도 전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가톨릭 신자였지만, 비종교인을 자처하는 이유가 교회와 성당에는 주로 '종교 행위로써의 기독교'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저자는 사진에도 해박한데, '삶의 방식으로서의 사진'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굉장히 독창적이었다. 그래서 사진에 별 흥미가 없는 나도 여러 문장에 밑줄을 치며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자극적인 사진에는 아무래도 과장과 속임수가 담겨 있기 마련이고 이는 실제의 삶에서도 사실이다.

저자의 말대로 과시욕의 세상에서 내가 찍어 공유하는 사진들은 어떤 의미를, 아니 나는 어떤 욕망을 담아 표출한 것일까? 나는 주로 아이들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 외에는 사진을 자주 찍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훑어보면 '과장과 속임수'가 담겨 있을까? 아니면 무엇을 담으려고 했을까?


보는 방법Ways of Seeing

저자의 쉬운 풀이 탓에 '보는 방법Ways of Seeing'이라는 설명에 흥미가 생겨 저자가 인용한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결국 사진은 프레임에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되고, 선택의 문제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이나 가치관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도 소외의 문제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는 날카로운 지적이 나를 자극한다.

사진사 자신이 파인더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다시 한번 <신앙은 긴장을 살아내는 예술>편에 인용했던 배우 문소리 님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정치뿐 아니라 모든 사안에서 나는 완전히 객관적인 위치에 두고 평가만 하는 일은 자신을 현재에서 소외시키는 일이다. 그 대가로 얻는 것은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일종의 우상숭배이다. 자기기만행위가 일종의 우상 숭배 현상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는 묘한 연결이다.


사진의 필수 3요소

나는 이글에서 사진의 3요소를 처음 알았다.

사진에서 필수적인 3요소, 즉 '빛'에 대한 이해와 세상을 보는 '관점'과 피사체에 대한 '애정'에 해당한다.

사진에 대해 관심이 없는 내게는 너무나 완벽한 요약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감탄하게 되는 정의다. 내용은 같지만 평생 삶으로 실천하신 분의 문구도 인용되어 있다.

가난한 이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평생을 바친 최민식 선생님은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에서 "빛과 구도와 감정이 일치된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사진가의 중심 사상이며 그것은 삶을 창조적으로 실현시킨 것이다"라고 말한다.

기회가 닿으면 우선 '보는 방법Ways of Seeing'에 대해 더 탐구해 보자.


끊을 수 없는 음욕을 긍정하기

아래 글귀는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라 그리 놀랍지 않지만 목사인 저자가 이런 글을 썼다는 점은 경의로웠다.

성매매 산업 규모는 처음 제대로 집계된 2002년 24조 원으로 일차산업인 농수산업을 능가했다. 2015년도 조사에 의하면 30-37조 원으로 추정되며 세계 6위의 성매매 대국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한 기사에 의하면 길을 가는 젊은 여성 5-7명 중의 한 명이 성 노동에 종사한다고 한다.

내가 성경 구절 중에서 유일하게 몰입해서 읽은 내용은 다윗의 이야기를 다룬 사무엘이었다. 과연 내가 알던 성경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남자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이야기다. 나는 내 음욕에 대해서 긍정하려고 노력한다. 부정이나 억압이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긍정해야 다스리고 절제할 수도 있다.


비종교인으로 읽은 <욕쟁이 예수> 연재

1. 그들이 뭐라 하든 자신이 되어라

2. 분노의 속살을 어루만지라

3. 신앙은 긴장을 살아내는 예술

4. 내 경험 속에 내가 현존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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