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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dy Jan 08. 2021

<여기, 사람의 말이 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 <여기, 사람의 말이 있다> (구정은, 이지선, 후마니타스)  




2020년 11월 딸기님(https://brunch.co.kr/@ttalgi21)과 함께 펴낸 이 책의 에필로그에 책을 기획하고 쓴 이유를 담아 두었다.


에필로그 


왜 어떤 말들은 잘 들리고, 어떤 말들은 잘 들리지 않을까. 이유는 자명하다. 말을 하는 사람이 세상을 좌지우지할 권력이 있고, 이해관계에 영향을 줄 경제력이 있으며, 그 자체로 아이콘인 유명인이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세상에는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작은 목소리나마 들리게 하려고 그들은 몸부림쳐 왔다. 어떤 가톨릭 사제는 징병 서류에 불을 질렀고, 몰디브의 총리는 수중 내각 회의를 열었고, 10대 환경 운동가는 매주 등교 거부를 하며, 남미의 원주민들은 시위를 벌였다. 

우리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여성, 이주민, 원주민, 성 소수자 등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그럴 기회를 잡기 쉽지 않은 사람들과 평화, 민주주의, 자유, 평등, 공생 등 당연시되지만 지켜지지 않는 가치들을 말하고 싶었다. 그 방식으로 국제 이슈를 택했다. 진실과 아픔, 투쟁과 설득, 때로는 거짓과 선동을 담은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놓쳐 온 세계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동시에 그것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주목해 보고싶었다.

되도록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들’에 집중했다. 말하고 싶은 이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듯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연설이나 법정 진술, 성명, 인터뷰 등 그들이 던진 말을 따라 가면서 그에 얽힌 역사적인 사실과 현재를 엮는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려 노력했다. 

1부는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들이다. 평화가 사라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지, 얼마나 야만적인 일들이 일어나는지,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누가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를 들어보고 싶었다. 2부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라져 가는 원주민과 소수민족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볼 수 있을 것이다. 3부에서는 시대와 국가, 분야를 초월해 민주주의를 고민했다. 여성 참정권을 쟁취하면서,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면서 터져 나온 목소리들이 사회에 남긴 울림을 되짚었다. 4부는 인종, 빈부, 성별, 국적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로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했다. 마지막 5부에서는 지구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를 공유하고자 했다.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지구의 미래에 대해 한 번쯤 떠올릴 기회가 되길 바란다.


글을 쓸수록 우리는 알게 됐다. 이 책에 담지 못한 수많은 목소리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속상하기도 했다. 화면과 지면, 인터넷을 채우고 넘치는 여러 소식 사이에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는 끼어들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다고 절망하진 않는다. 듣는 이가 없어도 계속 말해 온 이들의 용기에서, 타협하지 않는 강인함에서, 물러서지 않는 끈질김에서 앞으로도 계속이어질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중국 작가 위화가 쓴 에세이의 한국어판 제목이다. 위화에게 마오쩌둥만을 연상케했던 ‘인민’이라는 단어가, 톈안먼 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고 다른 의미로 변화했듯 가장 빠른 빛마저도 사람의 목소리를 당해 내진 못한다. 아직 들리지 않은 사람의 말을 앞으로도 계속 기록해 갈 이유는 충분하다.


이 책에 담긴 메시지는 그래서 저자들의 것이라기보다는 원래 말을 했던, 행동했던 사람들의 것이고 저자들은 마이크를 들이댄 것뿐이다. 저자들은 국제 뉴스를 주제로 택했고, 연설문, 법정 진술, 성명, 인터뷰 등등 각종 자료를 모으는 방법을 택했다. 읽는 내내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가 바탕이 되지만, 메시지가 나오게 된 시대 상황이나 주요 사건 등 세계사적 배경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전쟁에 지쳤고, 도망 다니는 것에 지쳤고, 밀가루를 구걸하러 다니는 것에 지쳤고, 아이들이 간강 당하는 것에 지쳤습니다. 내일 우리 아이들은 물을 겁니다. '엄마, 그 위기 때 엄마는 뭘 했어요?'라고.
p.14  


라이베이라에서 '평화를 위한 라이베리아 여성 대중행동'을 주도한 리마 보위의 메시지는 라이베리아 내전 상황과 함께 전달된다.




나는 테러리즘 편이다.
테러가 사람들을 독재자의 폭정에서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인간의 잔인함에서 인간을 구해 주고
레몬과 올리브, 레바논 남쪽의 새들과
골란고원의 웃음을 돌려줄 수 있다면.
p.14


아랍의 망명시인 니자르 카바니의 시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아랍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아랍의 시는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눈물"이라는 문구가 이러한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매건 마클이 2015년 유엔 여성기구 콘퍼런스에서 한 연설을 보면 열한 살의 매건 마클이 '미국 전역의 여성들이 기름진 냄비와 팬과 싸우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식기 세척기 광고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여러 여성 지도자와 제조업체에 편지를 써 결국 그 광고의 카피가 '미국 전역의 사람들이 기름진 냄비와 팬과 싸우고 있습니다'라고 바뀌었다는 에피소드(p.151)도 책에 담겨 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하버드대 로스쿨에 다니던 시절 밤늦게 도서관을 찾았더니 여성이라는 이유로 들어갈 수 없다고 가로막혔던 이야기(p.193), 총격 사건을 벌여 수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의 가해자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간성"(p.265)이라고 말한 노르웨이 총리의 발언(해당 챕터는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에 대한 이야기다)등도 찾아볼 수 있다.


스페인 학자이자 사회 비평가인 호세 안토니오 하우레기와 아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가 쓴 <동물들의 인간심판> 들어 있는 장면도 있다. 동물들이 자신들을 실험하고, 모욕하고, 멸종에 이르게 한 죄로 인간을 재판에 회부했다. 결론은? 인간에게 '악몽'을 심어 잔인하고, 건방지고, 자만했던 행동들을 재생하도록 하여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는 것이 판결의 내용이다. 자신의 잘못을 직면하는 것이 재판의 결론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진다. 집행유예의 전제는 '인간의 반성'이다. (p.310~311)




이제 기후변화의 위협은 실질적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 더 자주 발생하는 강도 높은 자연재해, 전례 없는 기온 등은 예외라기보다는 일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몰디브를 포함한 섬나라들이 이런 충격에 따라 가장 먼저 황폐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만이 아닙니다.  
p. 342


기후변화의 위기를 일찌감치 호소한 몰디브의 고위 관료의 발언이다. 우리 지구의 미래는 어떠할까?

몰디브의 호소는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지금 집이 불타고 있다'는 그레타 툰베리의 호소를 한 번쯤 되짚어 보면 어떨까.


무수히 많은 말들이 들리지 않고 흩어졌음에 아파하면서도, 그래도 목소리를 내준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수많은 들리지 않은 목소리들을 써 내려가야 할 이유가 우리에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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