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같이 변덕스러운 날씨
지난번 어리목 드라이브를 했을 때도 폭우가 내리는 날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날씨이다. 그래도 남편이 옆에 있으니 무섭지 않다. 지난번처럼 내비게이션 잘 못 찍어 중문 방향으로 향하지 않도록 '어리목 매표소'라고 정확하게 입력한다.
차 내비게이션과 남편 핸드폰 지도로 보는 네이버 내비게이션이 차이가 꽤 난다. 남편이 알려주는 기대로 가니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킬로수가 점점 늘어 어느덧 24km가 된다. 남편 핸드폰은 어리목 매표소까지 10km 남았다고 한다. 운전하는 내내 이 사람 믿고 가도 되나 의심이 든다.
한라산 중간산 지대에 타운 하우스처럼 잘 관리된 마을이 나타난다. 앞에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더러 비키라고 크랙션을 살짝 누른다. 고양이가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인다. 로드킬 당한 녀석이다. 죽은 고양이라도 밟기 싫어서 차를 도로 가쪽으로 댄다. 동생에게 전화를 한다.
역시 동생도 길이 맞냐고 의심을 한다. 내 옆에 앉은 남편은 자기만 믿으라고 큰소리를 친다. 어쩔 수 없다. 길잡이 남편, 운전자 1, 운전자 2는 실질적인 리더인 남편의 지시대로 움직인다.
갈수록 가관이다. 남편이 안내해 주는 길은 인적도 없고 관리도 전혀 안된 꼬불꼬불 산길이다. 이 길 맞냐고 남편에게 몇 번이나 확인한다. 비는 내리고 산짐승이나 귀신이 나올 것 같이 음산하다. 산길 도로폭도 좁아 앞에서 누가 오면 차를 비켜주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대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보니 제대로 올라가고 있는 것 같긴 하다. 묵묵히 올라가다 보니 내비게이션과 네이버 지도가 합쳐진다. 제대로 가는 길이 맞다. 남편이 자기 말이 맞았다고 뿌듯해한다. 어리목까지 내비게이션 킬로수가 갑자기 반으로 줄어든다. 자동차 내비만 믿고 갔다가는 크게 낭패 볼 뻔했다.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이 어리목 매표소이다. 중문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긴장한다. 여기부터는 지난번과는 다른 새로운 길이다. 경사가 더 높아진다. 비가 잠시 소강상태라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린다. 비에 젖은 촉촉한 숲의 공기가 상쾌하다. 새소리, 매미 소리, 비 냄새, 나무 냄새.. 숲의 모든 것이 좋다.
차를 잠시 멈추고 내려서 사진을 찍고 싶다. 폭우가 쏟아진다. 다시 창문을 닫고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올라간다. 어리목 매표소 거의 다다를 무렵, 키 작은 나무 숲 동굴이 동화 속 숲 속 마을처럼 느껴진다.
올라갈 때는 뒤따라오는 차들 때문에 차를 멈출 수 없어 사진을 찍지 못했다. 주차장에서 내려오는 길에 정차 가능한 곳이 있어 내려서 얼른 사진 몇 장을 찍는다. 사진 몇 장에 득템 한 듯 세상 다 가진 기분이다.
드디어 도착했다. 비바람이 매우 거세다. 역시 오늘도 날을 잘 못 잡았다. 날씨만 맑았다면 한라산 숲길을 따라 올라가도 좋았을 것 같다. 갈길 못 정한 여자 마음처럼 날씨가 오락가락한다. 우산을 날릴 정도로 강한 비바람이 불었다가 갑자기 멈추고를 반복한다. 날씨 따라 움직인다. 비가 쏟아지면 차로 대피하고 비가 멈추면 나와서 연무 가득한 한라산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화장실도 다녀온다. 마치 눈치 보며 땅구멍을 들락거리는 들쥐 같다.
한라산 정상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숲의 공기와 무게가 다르다. 연무 가득한 한라산을 바라보니 신비롭다.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비옷 단단히 챙겨 입고 저 산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라산 표지석을 본다. 아이들과 사진을 남기고 싶지만 순식간에 거친 비바람으로 돌변하는 날씨라 아이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한다. 맑은 공기라도 마음껏 마시라고 비가 안 내리면 창문을 내리고 비가 쏟아지면 창문 닫기를 반복한다. 더 머무르고 싶다.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워서 그런지 배가 고프다. 숙소에 들어가기는 싫고 갈 곳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호테우해수욕장 근처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할지, 동문 시장 가서 주전부리 살지, 도립 미술관으로 갈지, 숙소로 들어갈지.. 변덕스러운 날씨가 꼭 내 마음 같다.
한라산 타고 내려오다가 한라 수목원 주차장에 차를 댔다. 비가 올 것 같아 수목원은 가기 싫다. 밥이나 먹자고 한다. 남편이 검색을 하더니 근처에 한정식집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화목원'에서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배부르게 먹었다. 정원이 잘 꾸며진 곳이다. 밥과 반찬은 더 맛있다. 맛있는 밥상을 제대로 받으니 밥이 더 맛있다. 점심을 대충 먹은 보람이 있다. 손흥민과 박새리 선수 사진까지 있는 것을 보니 유명한 맛집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