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장하면서 점점 더 넓은 세상과 만났다. 이전에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다가 아님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이 '아하! 모멘트(aha moment)'였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 안 된다고 쉽게 말하지만 우물 밖 세상을 모르는 개구리는 우물 밖이 마냥 호기심의 대상일 수만은 없다. 우물 바깥에 아가리를 쩍 벌리고 튀어나오는 개구리를 기다리고 있을 굶주린 뱀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우리의 아하 모멘트는 언제나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고 한 발 내딛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나와 다른 것을 마주할 때의 두려움, 낯섬, 불편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의 벽을 낮춰 다른 세상에 대한 수용력을 높이는 일. 이것이 어린이들이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일이며 어른이 자신의 세상에 갇히지 않는 일일 것이다.
4교시 때 선생님께서 <온 세상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어 주셨다. 선생님께서 "사람들은 머리 모양도 여러 가지야." 부분을 읽고 계실 때, 00 이가 "그럼 우리 같은 머리가 정상인가요?"라고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에게는 정상, 비정상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깨달았다. 나도 사람들에게 정상, 비정상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00 이의 질문 하나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목련이(가명)가 쓴 <모든 사람들에게는 정상 같은 사람이 없네?>라는 제목의 글이다. 세상 사람들이 생긴 모습과 삶의 형태가 달라도 슬픔, 기쁨, 사랑을 느끼는 마음은 똑같다는 주제의 책을 읽고 쓴 글이다. 목련이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무엇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내 주변의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공유하는 생활양식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삶. 우리는 그것을 '정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사회적인 인간이 정상적인 삶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무리에서 이탈될 수 있는 일이며, 이는 생존의 위협과 연관된 일이었을 터다. 자신이 속해 있는 무리와 다르게 생긴 종족들을 순진하게 환영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우리는 제국주의 역사에서 익히 확인한 바 있다. 더 나은 문명을 가진 종족들이 자신들보다 미개하다고 여겨지는 종족을 무력으로 억누를 수 있다는 발상은 문명이 가져다준 최대 재앙이었다.
알고 보면, 유전자 형질상 인간은 침팬지와 98%, 고양이와 90%, 생쥐와는 85%나 일치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바나나 유전자와도 60%나 유사하다니 매일 아침 식사로 먹는 바나나에게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라도 들어야 하나. 결혼 전, 먼저 결혼한 주변 선배들이 다 맞는 사람은 없으니 60% 정도만 맞으면 괜찮은 상대라고 했던 말도 떠오르고.내일부터는 바나나와 모닝 인사라도 나누고 식사해야 할까 보다.
알고 보면 침팬지나 고양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서 너와 나를 가르고 차별을 일삼는 인간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인간이 동물들과 구분되는 근본적인 차이는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이익을 따지지 않고도 다른 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니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만 관계를 맺는 사람, 사람 위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조용히 유전자 형질이 침팬지나 고양잇과에속하는건 아닌지 의심해 보자.
글을 다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목련이는 위의 글 뒤에 정상/비정상이 있다고 생각해 온 자신에 대한 반성을 이어갔다. 친구의 질문으로 자신이 가져온 그릇된 인식의 전환을 꾀하는 태도. 점점 내 세계를 고집하는 내게 주는 오늘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