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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8. 2016

구오월묘지엔 따스함이 있다 ①

32주년 5.18 전야제 참여기 3

이야기를 듣고 구묘역으로 향했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 오월묘역을 거닐고 있으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 시간 우리가 살 수 있다는 축복에 대해, 그리고 저물어가는 자연의 경이를 맛볼 수 있다는 행복에 대해 말이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결코 우연하게 주워진 게 아님을 알기 때문에, 그 순간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해설사를 따라 구묘지로 향해 간다.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오월묘지에서 10분 정도를 걸으면 구오월묘지에 갈 수 있다. 가는 길에 본 오월항쟁 당시의 <전남매일신문> 기자의 글은 최초의 언론노조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 위해’라는 문구에서 연상시키며 마음을 흔들었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구묘역으로 가는 길엔 글을 새겨논 돌들이 세워져 있다.



광주항쟁이 일어나던 그 날, 모든 언론은 침묵했다. 심지어 방송에선 광주에 폭도들이 들끓고 있다고 허위보도까지 했다. 이에 <전남매일신문>은 객관적인 상황을 담은 내용을 신문에 실었으나 신군부는 언론 검열을 하여 모든 내용을 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6월 2일자 1면에 신군부의 검열 흔적이 있다. -자료 5.18 기념재단



이런 현실에서 기자는 무력감을 느끼고 절필 선언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은 정론직필의 언론이 그나마 있다는 데에 희망을 느낀다고 하면, 감상적이라고 하려나. 이런 상황을 보며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1818~1883)가 말한‘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은유가 아닌 직유임을 알았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전남매일 신문기자 일동 1980.5.20>    



그들이 있었기에 5.18은 희망으로 이야기 될 수 있으리라.



 

안타까운 죽음그럼에도 묻히지도 못하는 현실

     

해설사는 구묘역에 와서 이곳이야말로 5.18 당시의 묘지였음을 알려줬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내가 2000년에 왔던 곳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시간은 흘렀지만 모든 것은 그대로인양 친근했다. 

해설사는 이곳에 시체를 매장하던 상황을 이야기해줬는데, 엄청 극적이었다. 전두환은 이곳이 성지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러려면 시체가 한 곳에 모이는 것을 막아야 했다. 전두환은 아마도 천주교 성지들을 둘러보며 위기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곳에 군인을 배치해놨다고 한다. 사람 그림자라도 보이면 제지하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단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광주 사람들도 매장을 하려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낮엔 들킬 수밖에 없으니, 야심한 밤에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산에서 대기하다가 내려와 잽싸게 매장하고 달아났다고 한다. 

억울하게 죽어서도, 편안하게 묻히지 못하는 그들의 영은 한동안 구천을 떠돌았을지도 모른다. 참, 억울하고 참, 매정한 세상이다. 그렇다면 32년이 지난 지금은 저 세상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을까? 정말 그럴지도 비관적이다.               



구묘역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역사에 치여 사는 개인그들을 비판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광주의 이야기를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자마자 회유 작전에 들어갔다고 한다. 천만 원을 줄 테니, 다른 곳에 이장하라고 회유하였단다. 그 당시에 천만 원이란 돈은 엄청난 돈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광주민중항쟁 당시 돌아가신 분들은 대부분이 소시민이었다. 당연히 그런 회유를 뿌리치기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단하게도 몇 사람만 이장했을 뿐 대부분은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현재의 삶을 반성하게 되었다. 주위의 친구들에게 심심치 않게 “취업만 시켜준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자조적인 말을 듣는다.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이 때에, 우린 정말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진 않을까. 



구묘지를 따라가다 보니, 이들의 통곡이 들리는 듯 하다.



그러나 올곧게 산다 해서,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난하긴 쉽지 않다. 막상 살기도 막막할 지경인데, 어떤 이상을 추구한다는 건 사치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초록 물고기』라는 영화의 막동이는 자신이 재개발지역에 사는 소시민이면서도 빽이나 학벌도 없다는 한계 때문에, 재개발지역민을 쫓아내는 용역깡패가 되고 말았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막동이의 그런 모습만을 탓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 사회를 디자인한 사람들, 그런 사회를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 그리고 그런 나약한 사람을 도구로 이용하려는 권력층에 대한 비판 없이, 역사에 치여 사는 한 개인만을 탓하는 건 역사적 구조를 은폐하려는 소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초록물고기>의 막동이. 이 장면은 가슴 먹먹했고, 차 전면 유리에 얼굴을 부딪힐 땐 전율이 일었다.





목차     


1. 광주와 인연 맺다                                   

오월항쟁 없이 나를 사유하기 있기? 없기?

사람 찾아 떠난 광주에서 역사를 만나다

518번 버스를 타고 광주를 여행하다     


2. 오월묘지그 이야기 

같은 장소 속에 다른 느낌이 숨어 있다

오월묘지 상징탑에 의미 새기기

신이 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

사연이 묻힌 오월묘지

감수성, 소통의 기본 조건     


3. 구오월묘지에 묻힌 이야기-1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안타까운 죽음, 그럼에도 묻히지도 못하는 현실

역사에 치여 사는 개인, 그들을 비판할 수 있을까?


4. 구오월묘지에 묻힌 이야기-2

사연이 묻힌 구오월묘지

꾸며질 때, 과거는 사라진다

현재를 살려는 자, 이 비를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5. 공동의 경험, 32주년 5.18 

역사의 공간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사라지다

전야제, 들끓는 감정으로 공동 기억을 남기다

5.18의 정신, 그건 여전한 숙제다

역사의 장 속에 씁쓸한 현실

32주년 5.18 전야제 참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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