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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Oct 02. 2016

아이를 믿을 수 있는 힘

2015 여름 민들레 1박2일 모임 5

난독증이었던 사람이 글자로 작품을 만들고 책의 표지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는 어화둥님의 이야기는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교육이란 이름으로 섣불리 상황을 규정짓고 개인을 한계지어 즉각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기 전에 얼마만큼 지켜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 우리의 이야기는 한참이나 깊이 있게 진행되고 있다.




해답이 아닌 문제에 머물 수 있는 용기

     

이걸 동섭쌤은 ‘지적 폐활량’이라 표현한 적이 있다. ‘폐활량’은 흔히 산에 오르거나, 수영을 하거나 할 때 필요한 것이다. 그때 얼마나 숨을 참아야 하는 상황을 버텨낼 수 있느냐, 그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느냐가 바로 폐활량이 얼마나 되느냐를 판가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쓰는 폐활량이 아닌, 지적 폐활량이란 무엇일까?          



따라서 곤란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는 곧바로 결론을 내리지 말고, 문제가 자신 안에서 입체적으로 보일 때까지 계속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지성의 폐활량을 늘리는 방법이다. 눈앞에 있는 양자택일, 혹은 이항대립에 계속 스스로를 노출하는 것, 대립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기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바깥’으로 나가는 것, 그것이 사고의 원형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대립을 미리 없애려 하고 남들에게 맞춰가려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습관이 아닌가 싶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에 둘러싸여서 초초함과 불만과 위화감으로 숨이 막히면 그 사태를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기 쉬운 논리로 감싸버리려고 한다. 그리고 그 논리에 안주하려고 한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방치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기 쉬운 이야기에 곧바로 달려든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부터』, 오자와 마키코 저, 박 동섭 역, 다시봄, 2012년, p. 259     



▲ '문제에 머물라', '처방이 아닌 서술에 머물라'는 얘기는 충격이었다.


     

동섭쌤은 교사 대상의 특강을 자주 다니는데, 가는 곳마다 빠지지 않고 ‘강의 내용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걸 어떻게 교육에 적용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나온다고 한다. 교사는 교육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보니, 늘 ‘강연 내용을 교육 활동에 어떻게 체계화하며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수업을 하느냐?’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서술보단 처방에 관심 갖게 마련이고, 내용보단 해결책을 중시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동섭쌤은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고 한다. 특강을 하며 얘기한 내용들이야말로 처방이 아닌 서술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얼마나 문제 상황에 깊이 파고 들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문제’를 ‘문제’로서 계속 숙지하고 견뎌내는 지적폐활량이 중요하다”고 특강 내내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 동섭쌤과 우치다쌤은 지금까지 감히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주는 선생님들이다.

        


     

지적폐활량을 키우는 힘지켜봄 

    

동섭쌤이 말하는 ‘지적 폐활량’은 성급히 문제를 해결하려 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몇 가지 이론으로 얼버무려 이해하지 않겠다는 애씀이라 할 수 있다. 어화둥님이 어렸을 때 난독증으로 활자와 고투를 하던 시기에, 자신을 ‘난독증’이란 정형화된 틀로 규정짓지 않고 그 상황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넘겼던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려면 당연히 ‘지켜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솔직히 말하면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잘 안다. 지켜본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무관심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책임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켜보는 것과 무관심 사이에서 우린 방황할 수밖에 없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우리는 아이의 가능성과 타고난 바탕을 믿으며 응원해주며 지켜볼 수 있을까?               



▲ 단재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며 어떻게 이들을 믿고, 그 타고난 것들을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늘 고민이다.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고단한 싸움이다

     

여름방학 중에 영화팀 아이들과 청평까지 1박2일간 자전거 여행을 했었다. 그때 무언가 해결책을 제시해주거나 내가 나서서 해결해주는 건 오히려 ‘쉬운 선택’인데 반해, 믿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건 대단히 인내심을 요구하는 ‘어려운 선택’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 영화팀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하며 느낀 건, 내 인내심의 한계 같은 거였다.



자전거를 잘 타는 아이에 대해서 충분히 지켜보며 그림자 역할을 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해 순간순간 대열에서 이탈하고 “더 이상 못 가겠어요”라고 말하는 아이에 대해서 충분히 지켜보며 그림자 역할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여행 초반에 체력이 넘쳐날 때만 해도 오히려 여유롭게 그런 상황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좀 늦어도 되고, 힘들면 쉬어도 되지만 그래도 끝까지 달려보자”며 의기를 북돋워줄 수 있었지만, 여행이 중반에 접어들자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며 더 이상 그렇게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간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고, 내가 나서서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이때가 가장 힘들다. 그렇게 치밀어 오르는 ‘알려주고자(대신 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억눌러야 하고, ‘저렇게 해서 뭐가 되겠어’라는 불신을 걷어내야 하며,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짜증’을 감추어야 하니 말이다. 즉, 지켜본다는 것은 학생과 나 사이의 불협화음이기 이전에, 먼저 나서서 해결해주고 싶은 나의 마음을 억누르는 게 핵심이라 할 수 있다.                



▲ 지켜본다는 건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지켜보려 맘먹어도 현실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동섭쌤이 말한 ‘지적폐활량’이란 말을 이해했다 할지라도 상황에 부딪히면 매번 고민될 수밖에 없고, ‘내 생각이 옳은지?’ 도전받을 수밖에 없다. ‘난 널 믿기 때문에 지켜볼 거야. 그러면 넌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훨씬 잘 할 거니까’라고 믿는다 할지라도, 현실에선 끊임없이 외부의 평가와 타인의 시선, 나의 욕망에 휘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학생이 멈춰 “힘들어요”라고 외칠 때마다 흔들리는 마음과 불안한 눈동자를 감출 수가 없다. 



▲ 흔들리는 마음과 불안한 눈동자를 감출 수 없었기에, 썬그라스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마음을 알기 때문인지 풍경님은 이런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덧붙여줬다. 풍경님은 원래 ‘아이들은 놔둬도 잘 큰다’는 믿음으로 아이들을 키웠다고 한다. 풍경님은 중등학교 국어쌤인데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학원에 보내거나 조기교육을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엄마의 맘을 알기 때문인지 첫째 아이는 의지가 있어 학교에 잘 적응해서 괜찮았지만, 둘째 아이는 그런 기대와는 달리 잘 적응하지 못해 고민이 됐다는 것이다. 둘째 아이의 경우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었음에도 한글을 떼지 못했단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초등학교에서 한글을 기본부터 가르쳐준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대부분의 학교는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글을 떼지 않고 학교에 들어가면 당연히 배우는 과정 속에 주눅 들게 되고, 그 여파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게 된다. 

풍경님은 그런 상황이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놔둬도 잘 큰다’는 나름의 철학이 있음에도 둘째 아이는 붙들고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초등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자, 다잡은 마음이 현실에서 어떻게 어긋날 수 있는지 알려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현실에서 내 생각을 지켜내기란 정말로 힘든 일이다.



▲ 민들레 읽기 모임은 자기를 고백하게 한다. 자기를 말할 수 있던 풍경님의 마음에 박수를 보낸다. 사진은 2012년 출판사에서 있었던 읽기 모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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