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Jan 12. 2017

두려우니 그저 걷는다

2009년 국토종단 4 -  4월 20일(월)

점심은 11시 30분쯤 먹었다. 길 맞은편에 ‘사랑 기사식당’이 보였다. 기사식당은 기사님들만 들어가서 먹을 수 있는 곳인 줄만 알았기에, 원래 같으면 다른 곳을 찾았을 거다. 하지만 ‘어느 기사식당이나 반찬은 푸짐하고 맛있다’라고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라는 책에 쓰여 있어서, 익히 알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경험해보기로 했다.                



▲ 도보여행 첫날에 비를 맞으며 간다. 이것도 나름 의미 있는 축복 같은 거다.




여러분 기사식당에 식사하세요그것도 두 번 드세요 

    

막상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아늑했다. 길을 건너느라 신호를 기다리는 수고를 한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오천 원이란 가격도 괜찮았고 뷔페라는 사실도 만족스러웠다. 그렇다고 일반 뷔페집처럼 반찬의 가지 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먹을 만한 것들만 있었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빗속을 걷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해서인지 배가 무진장 고팠다. 그래서 이런저런 반찬을 마구 퍼서 뚝딱 먹어치웠다. 누가 봐도 며칠 굶은 듯한 느낌이 있을 테니, 먹었다기보다는 먹어치웠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을 두 그릇을 먹진 않는데, 여기서 한참 걸을 것을 생각하니 한 그릇으로 만족할 순 없었다. 그래서 번쩍 일어나 다시 접시 하나에 이것저것 반찬을 담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래저래 나는 불청객에 가깝다. 이미 우의와 배낭은 흠뻑 젖어 내 몸 주위로 물이 흥건했으니 말이다. 식당의 청결을 중시하는 분이라면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제일 꼴불견이고 분노유발자였을 것이다. 한 번 밥 먹는 거야 뭐라 할 순 없지만, 내가 머물고 간 자리엔 온갖 흔적이 남아있게 되니 말이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나에게 뭐라고 하거나 내쫓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신경 써주시고 챙겨주시기까지 했다. 그런 배려심이 어찌나 미안하던지 밥을 허겁지겁 먹고 짐을 정리한 후 물로 흥건해진 바닥을 닦아내려 하자, 그럴 필요 없다고 만류하시더라. 그 순간 밥을 먹어 배가 부른 것인지, 넉넉한 인심에 맘이 푸근해진 것인지 모를 따스함을 느꼈다.         



▲ 다음 로드뷰에서 여전히 볼 수 있는 기사식당. 지나가는 길이라면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비효율 속에 나를 찾다

     

오후 들어선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몸이 바람에 따라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릴 정도로 세게 불었다. 그런 극한 상황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박차고 나간다. 이건 해본 사람만 안다. 상쾌하면서도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이 깃든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아직 몸이 도보여행에 익숙해지지 않았기에 몸은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 풍경들을 감상하며 가던 오전과는 달리 조금씩 시선을 아래로 내려 깔고 걷게 되더라. 4차로의 잘 닦여진 길은 별다른 변화 없이 이어져, 혹여나 ‘쳇바퀴 도는 다람쥐’처럼 끝없는 길을 하염없이 걸어야 할 것만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대도 하지 말고 그저 한 걸음씩 내딛는 일뿐이다. 

도대체 난 왜 이 고생을 하는 걸까? 내가 무안으로 향하는 동안 200번 버스가 쉼 없이 목포와 무안을 왔다 갔다 했다. 내가 하루를 꼬박 걸어야 갈 수 있는 길을 버스는 한 시간도 안 되어 간다. 분명 난 효율과는 반대 벡터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비효율적인 여행을 보며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에 사는 사람들이 ‘미친 짓’이라고 하는 건 당연하다. 



▲ 목포에서 무안까지 쉼 없이 운행하던 200번 버스를 보고 있으면, 내가 뭐 하나 싶었다.



나 또한 여태껏 그런 생각으로 그런 행동만을 하며 살아왔다. 그 결과 이런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처럼 패배주의에 쩌들어, 나의 가치를 완전히 말살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임용도 맘대로 안 되고, 사람 관계 또한 맘대로 안 되어 좌절했다. 그렇기에 지금은 예전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을 하며, 반대로 행동하며 살려는 것이다.           



공부란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더 간단히 말하면,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야 비로소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호모쿵푸스』, 고미숙 저, 그린비출판사, 2007년, 40쪽 


         

바로 이 글을 읽으며 내 생각을 뒤집을 수 있었고, 이처럼 과감히 도보여행을 떠날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믿는다. 그저 이 순간에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나에게 큰 선물이며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공부라는 것을 말이다. 힘들지만 무언가에 쫓기듯 살지도 않을 것이고 어떤 대의를 위해 나를 희생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순간은 오로지 나에게 주는 선물이자, 큰 배움(大學)을 위한 시간이다.                 



▲ 아침은 1번 국도로 들어서기 전 터널에서 김밥과 육포로 간단히 먹었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힘이 될 것이다.




방값 흥정을 통해 활기를 찾다

     

무안에 3시 정도에 도착했다. 시간은 이르지만 묵을 곳을 찾아야 했다. 첫날 여행치고 비바람과 싸우며 온 터라 몸이 쑤셨다. 최대한 걷다가 변두리에 보이는 모텔에 들어갔더니 사 만원을 부른다(헐~ 나의 하루 최대 지출액이 사만원이라고 ㅡㅡ;;). 좀 더 깎을 각오였지만 완고했다. 그러면서 팁을 주길 여인숙에선 더 깎아주기도 한다는 거다. 

그 때부터 여인숙을 찾으려 다시 왔던 길을 뒤돌아 무안 읍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여’자도 보이지 않더라. 이 동네엔 죄다 ‘모텔’만 있다. 경찰서에 들어가 다짜고짜 “여인숙 위치 좀 알려주세요?”라고 물어봤지만, 그 분들도 자세한 것은 모르던지 어문 소리만 탱탱하셨다. 어쩔 수 없다. 이럴 땐 막고 품는 식으로 이곳을 이 잡듯 마구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결국 못 찾아서 마지막 담판을 지으려(사 만원을 부를 경우 삼 만원까지 깎기) 터미널 근처의 모텔로 들어갔다. 카운터 창문을 열고 가격을 물어보니 딱 삼 만원을 부르시는 게 아닌가. 순간 놀랐다. 깎을 각오로 왔는데 처음부터 내가 생각했던 그 가격을 부른 거니 말이다. 내가 좀 멈칫했을 거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된다. 아직 더 깎을 기회는 있기 때문이다. 오천 원만 더 깎아달라고 말하며 도보여행 중이란 사실을 간곡하게 어필했다. 그 순간 나의 모습은 아주 불쌍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연기 아닌 연기를 하고 있었다. 과연 이게 먹힐 것인가? 아주머니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뭘 그걸 더 깎으려 하냐?’는 표정을 지으셨지만, 이내 그렇게 하자고 하시더라. 이로써 나의 발연기가 현장에선 조금 먹힌다는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기분 째진다. 역시 이런 식의 흥정도 나름 재미가 있다. 물건의 정가제 판매 이후 사람 사이에 말이 섞이고 감정이 섞이는 흥정하는 광경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분명히 정가를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게 편한 건 사실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에겐 한두 푼 때문에 물건 값을 깎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이전에 번거로운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 흥정이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돈을 주고 물건을 받는 거래만이 판을 치게 되면서 사람의 관계는 매우 피상적이며 사무적인 관계가 되어 버렸다. 

이런 환경 속에서만 당연한 듯 자라오다가, 오늘 흥정이란 것을 해보고 나름 성공을 하니 감회가 남다르더라. 그 순간 온 몸에 활기가 돌며, 언제 몸이 쑤셨냐는 듯이 괜찮아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게 바로 사람 관계에서 얻게 되는 힘 같은 게 아닐까 싶다.                



▲ 전주 남부시장의 새벽 장터모습. 사람 사는 향기가 가득 날린다.




역사는 반복된다한번은 비극으로다른 한번은 희극으로

     

방에 들어가서 짐을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빗속을 8시간 가까이 걸어왔으니 배낭 속도 다 젖었겠지’라는 걱정을 하며 짐을 하나하나 빼어 상태를 확인해봤더니 생각보다 양호하더라. 일기도, 지도도, 책도 멀쩡했다. 단지 편지지는 완전히 젖었고 경서를 외우려 적어 갔던 작은 노트도 조금 젖어 써놓은 글씨들이 번져 있었다. 

그래도 빗속을 여행한 것치고 양호한 편이었다. 우선 일기장과 지도가 멀쩡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은 좋았다. 우의는 욕실에 잘 널어놓았고 배낭과 신발엔 신문지를 잘 구겨서 여기저기에 넣어두었다. 습기를 제거하기엔 신문지가 가장 좋다는 걸 군대에서 배웠다. 이번 여행하는 동안 군대에서 그냥 무심코 했던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제대한 지 6년이 지난 지금 그런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땐 비극으로 지금은 희극으로ㅋ 어떤 철학자는 인생은 두 번 반복된다고 했다던데, 오늘이 정말로 그랬다. 여관방은 따뜻하니깐 내일이면 젖은 배낭과 신발이 ‘뽀송뽀송’ 잘 말라 있을 것이다^^               



▲ 국토종단을 하는 동안 나의 기록을 담긴 노트다. 그래도 이 노트가 젖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저 길이 있기에 걸을 뿐이다

     

첫 도보여행, 악천후까지 겹쳤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재밌고 신났다(물론 그 시간이 지나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평가겠지만). 덥지도 않았고 걸을수록 오히려 상쾌했다. 때론 옷이 젖어 몸은 무거워졌고 추위에 벌벌 떨기도 하며 왜 사서 고생을 하나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잠시 뿐이었다. 걷고 있노라면 말로 미처 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밑에서부터 끓어올라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여행 내내 후회와 기쁨 사이에서 묘한 줄다리기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바로 그런 양가감정이야말로 누구나 느끼는 감정인 것을. 그러니 두 가지 감정을 잘 간직하며 그 마음을 그대로 새겨 나갈 때, 이 여행은 생동감 넘치며 인간미 풀풀 나는 여행이 될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저 길이 있기에 한 걸음씩 걸어가면 된다. 한 걸음씩 그렇게. 


(김밥 1.000원, 다이제 1.000원, 점심 5.000원, 저녁 4.000원, 여관 25.000원  / 총합 36.000원)



▲ 두렵고 때론 후회도 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냥 걸어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빗속 도보여행의 낭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