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동 단재학교 시대의 개막 2
단재학교는 2009년 11월에 강동구 둔촌동에 보금자리를 틀었다가 2014년 8월 13일에 송파구 송파동으로 이전했다. 5년 동안 둔촌동에서 단재학교는 기틀을 다졌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하나 둘 인원이 들어나 ‘교육공동체 단재’가 되었고, 학생-학부모-교사 삼주체가 100여명 안팎이 되는 학교로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이전하는 일은 여러모로 크고 작은 변화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둔촌동 학교는 오피스텔을 리모델링하여 들어선 학교였고, 송파동 학교는 이층으로 이어진 가정집에 들어선 학교였다. 아무리 오피스텔을 학교 분위기에 맞게 리모델링했더라도 딱딱한 사무공간의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러니 학교라기 보단 학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에 반해 송파동 학교는 대문에 들어설 땐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 같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막상 실내로 들어가고 나면 오히려 자유분방한 학교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니 교과위주의 교육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교육을 하는 공간으로서 더할 나위없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덧붙여 단층만 쓰던 학교가 일층과 이층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됐으니, 그에 따라 좀 더 다양한 수업들을 개설할 수 있게 됐다. 부엌이 있기에 요리수업도 할 수 있었고, 넓은 거실도 있기에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연극수업도 할 수 있었으며, 담장이 있기에 벽화도 그려 단재학교만의 정체성을 맘껏 드러낼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위치적인 장점까지 겸하게 됐다. 둔촌동 학교는 서울의 동쪽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어 조금만 더 가면 하남으로 빠지게 된다. 지하철 5호선은 강동역 이후부터 마천행과 상일행으로 나뉘는데 마천행을 타야만 둔촌역에 갈 수 있다. 그러니 한낮엔 12분마다 배차되어 있어 교통편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에 반해 송파동 학교는 관광지로 유명한 석촌호수 뒤편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의 요지인 잠실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단재학교 아이들은 송파구에 사는 아이들도 있지만, 어떤 학생은 신도림에서, 어떤 학생은 하남에서, 어떤 학생은 수원에서 등하교를 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오는 아이들에게 잠실에 학교가 있다는 점은 엄청난 장점일 수밖에 없다.
송파구로 이전하면서 단재학교는 훨씬 좋은 여건을 갖추게 됐다. 학교 위치의 변화만큼이나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저번 후기에서도 밝혔다시피 둔촌동 학교는 초임교사 건빵의 시행착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 사이에서 아이들과 나와의 갈등이 아로새겨진 곳이라 할 수 있다. 처음이었기에 어영부영했고, 제대로 된 상황판단보다는 열정만으로 밀어붙였으며,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 추구하고 싶었던 교육철학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니 사사건건 부딪히고 서로에게 원치 않는 상처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된 건, 사람이 먼저 있고 그런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과정 속에 교육철학이 있는 것이지, 교육철학이 이미 있고 그걸 사람이 맞춰야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찌 보면 모든 법칙이나 규칙들은 현실이 먼저 있고 그걸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과정 속에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는 것과 같다.
둔촌동 학교에서 3년을 보내며 그런 것들을 체험했고 깨달음까지 얻었으니, 송파동 학교에선 지금까지 고민했던 흔적들, 공부했던 철학들을 지우고 현장 속에서 새롭게 정립해야만 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아이들과는 3년을 함께 하며 눈빛만 마주쳐도 무얼 얘기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친해졌으며, 다른 교사들과도 편안하게 얘기할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더욱이 단재학교는 규율에 얽매여 있거나,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는 강압도 없다. 그러니 무언가를 새롭게 정립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고, 정서적인 여백도 충분히 허용됐다.
아마 그때부터 좀 더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 노력했고, 일반적인 교육적 상식과는 다른 시각을 지닌 동섭쌤과 우치다쌤과 같은 분들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기존에 해왔던 것들이 있고, 나만의 ‘쪼’가 있으니 그게 순식간에 바뀔 리는 만무했지만, 그럼에도 초임교사 시절보다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고, 아이들을 보는 시선도 ‘그래야만 한다’보다는 ‘그럴 수도 있다’는 것에 가깝게 변하며,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처럼 송파동 단재학교는 학교가 이전하며 환경이 변화한 것만큼이나 교사인 건빵에게도 변화가 가득했던 곳이라 추억할 수 있겠다. 이때 영화팀 아이들과는 남한강을 따라 양평에서 충주댐까지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달성군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교육의 새로운 정의를 몸소 실천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도 파릇파릇했던 초임교사에서 벗어나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6년차 교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단재학교는 또 한 번의 이전을 하게 된다. 송파동으로 옮긴 지 2년 반만에 15분 거리에 있는 석촌동으로 이전하게 됐다. 여전히 이층집이고 겉에서 볼 땐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부엌이 커서 함께 모여서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고, 학교 바로 옆에 일반 상가가 있기에 아이들이 실컷 떠들어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송파동 학교는 주거지역에 있었기에 아이들이 마당에서 떠들거나 조금만 뛰어다녀도 눈치가 보였던 것에 비하면 훨씬 환경적으로 좋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도 이전한 학교가 훨씬 맘에 들던지 누군가는 “학교가 안락해서 여기서 1박 2일 동안 숙박을 해도 좋겠는데요”라는 말을 했으며, 누군가는 “예전 학교에 비하면 좀 멀어지긴 했어도 학교 내부가 훨씬 깔끔해서 좋아요”라고 말을 했다.
아이들의 소감처럼 나 또한 석촌동 학교가 훨씬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건 어느덧 6년차 교사가 되면서 생긴 안정감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 이상으로 공간이 주는 평온함이 훨씬 크다고 해야 맞다. 여기서 5분 정도만 걸으면 바로 석촌동 고분군에 도착할 수 있다. 거긴 복잡한 도심 속에 한적한 공간이니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하며 공부를 하느라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리고 탄천 쪽으로 5분 정도 걸으면 탄천유수지가 나온다. 학교 운동장이 있는 기존 학교와 달리 단재학교는 운동장이 없기에 둔촌동 시절과 송파동 시절엔 올림픽공원을 운동장으로 썼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간을 우리 맘대로 쓰는 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탄천유수지는 농구장, 축구장, 야구장까지 모두 갖춰져 있고,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엔 사람들도 거의 없기 때문에 편하게 뛰어놀면 된다. 그러니 예전엔 하지 못했던 다양한 운동 종목을 모두 다 할 수 있게 됐다. 그뿐인가 탄천유수지 바로 옆엔 탄천 자전거 도로가 나있으니 훨씬 편하게 라이딩도 다닐 수 있다. 여러모로 석촌동 학교의 환경은 교육적으로도 훨씬 나은 환경인 셈이다.
이제 한 달 보름 정도가 지났다. 2017년의 새 학기를 새로운 공간에서 시작하게 됐고, 지금과 같으면서 다른 교육에 대한 고민도 시작하게 됐다. 석촌동 학교에서 만들어질 이야기들이 어떤 것일지, 그리고 나는 또 얼마나 좌충우돌을 하게 될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목차
막연하지만 그래도 시작하다
시작해보라,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는 지켜보라
둔촌동 단재학교에서 건빵이 되려 발버둥 치다
처음의 의미가 담겨 있던 둔촌동 단재학교
송파동 단재학교는 더 큰 날갯짓을 할 수 있던 곳
건빵, 송파동 학교에서 좀 더 다져지다
석촌동 단재학교에선 어떤 일들이 생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