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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May 04. 2017

이제 나도 좀 변해볼까?

2010년 초평에서 고추 심기 2

청주엔 9시 20분에 도착했다. 이장님의 아들이 터미널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더라. 일 년 만에 보는 데도 한 눈에 알아봤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바로 초평저수지 근처에 있는 이장님 댁으로 향했다.                



▲ 작년엔 걸어서 청주를 통과했었는데 올핸 버스를 타고 다시 청주에 왔다.




청주터미널에서 초평저수지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작년에 도보여행으로 걸어본 경험이 있으니, 청주터미널부터 초평저수지까지는 꽤 거리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추를 심으러 가야겠다고 결정하고 난 뒤부턴 ‘과연 어떻게 그곳까지 갈 것인가?’하는 부분이 걱정이 되더라. 그래서 어제 저녁에 이장님과 통화를 할 때 “청주터미널에서 내려서 초평저수지까지 가는 교통편 좀 알려주세요”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장님도 마땅한 교통편이 없는지 “증평에 가는 버스를 타고, 다시 진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 부근에서 내리면 되요”라고 알려주시더라. 그 말을 듣고 솔직히 깜짝 놀랐다. 청주에서 바로 진천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 줄만 알았는데 없다고 했기 때문이고,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침 일찍 서두른다고 해도 두 번이나 갈아타고 가다 보면, 거의 오후가 되어서야 도착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상황이면 일도 태반이 끝났을 텐데 과연 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면서 회의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 그냥 막고 품듯이 쉽게 풀면서 가면 된다. 여차하면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배차 시간표를 확인했고 터미널에서 초평까지 택시비가 얼마나 드는지(21.800원 정도 든다더라 ㅡㅡ;;)도 확인했다. 그리고 코레일에 들어가 청주에서 증평으로 가는 기차편이 있는지도 확인해봤는데 아쉽게도 없더라. 아무리 여러 방법을 고민해 봐도 이른 아침에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은 보이질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던 그때, 이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큰 아들이 청주에 있으니 올 때 연락해서 같이 오라고 한다. 그 전화 후에 곧바로 큰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고, “내일 청주터미널에 도착하기 전에 연락을 미리 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온갖 시름과 걱정이 나를 감싸고 있었는데, 그게 한 순간에 씻어 내려간 것이다. 역시 궁하면 통한다고 마음이 있으면 못할 게 없는 것도 맞다. 이렇게 잘 해결되어 정말 다행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터미널에서 큰 아들을 바로 만날 수 있었고, 초평까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청주에서 저수지까지는 5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더라.                



▲ 2시간 30분 가량을 끙끙거리며 올 뻔했는데, 그래도 큰 아들이 마중을 나와준 덕에 편히 올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세계가 있다 

    

큰 아들의 자동차는 남달랐다. 터미널에서 출입문으로 나오니 큰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자동차 소리가 너무 커서 멀찍이 세워두고 왔거든요. 그러니 좀 걸어가셔야 되요.”라고 말하더라. 그때 뭔가 일반적인 자동차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됐고 은근히 기대가 됐다. 

그런데 막상 눈에 보이는 자동차는 매우 평범했다. 그냥 거리에서 둘러 다니고 있는 자동차와 크게 다르지 않는 외관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막상 차에 타고 시동을 켰는데, 순간적으로 자동차가 폭발하는 줄만 알았다. 엔진의 굉음이 터짐과 동시에 자동차가 앞을 향해 전속력으로 튀어나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 차를 타려는 사람들은 마음을 단디 먹고 타야만 한다. 

그렇다, 큰 아들은 자동차 전문가답게 엔진을 바꾸고 배기량을 키웠던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출퇴근하는 용도를 넘어서, 아예 자동차 경주까지 나가기도 한단다. 이것이야말로 여태껏 나의 세상에선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세상의 이야기다. 그러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레이싱’을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다. 400M의 직선코스를 자동차로 주파하는 경주를 한다는 거다. 그걸 주파하는데 십 몇 초밖에 안 걸린다고 했을 때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이 경주엔 자동차를 어떻게 컨트롤하느냐 하는 코너링에 대한 기술보다는 엔진을 어떻게 최적화시켜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느냐 하는 엔진 컨트롤에 대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고의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엔진을 직접 다룰 수 있어야 하고, 변속기를 제때 바꿀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경기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가장 빨리 400m를 주파하는 방법과 들어오는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 가장 근접하게 들어오는 방법이다. 과연 그렇게 빨리 달릴 땐 어떤 기분이 드는 걸까?



▲ 400미터를 경주하는 걸, '드래그 레이싱'이라고 한단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얘기다.



그래서 “왜 하필 어중간하게 400m를 달리는 거야?”라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잘 모르겠다고 말하더라. 아무래도 엔진에 가장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최고의 기량을 뽑아낼 수 있는 거리가 현재의 엔진기술로는 400m 정도쯤 되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역시나 사람은 각자가 처한 환경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르다 보니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아가고 그런 세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다. 나의 세계에선 절대로 마주칠 수 없을 것만 같던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들으며 흠뻑 빠져 들었다. 그건 나름대로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열정이기 때문이고 여태껏 내가 가장 못해봤던 몰입이란 경지이기 때문이다.                



▲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위해 만나고 나눠야 한다. 




불광불급의 삶의 자세

     

예전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미쳤다’고 짧게 한마디를 내뱉었었다. 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게 없이 말이다. 나와는 다르다는 생각 정도가 아니라,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고 못을 박은 것이고 그래서 무작정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가치로 남을 제단하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내 생각만으로 이야기할 경우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지며 그저 내 생각만을 강요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만을 강요할 거라면 차라리 남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최대한 나의 생각은 배제하고 판단하지 않으며 그 이야기에 심취해야만 한다. 

거기에 덧붙여 무언가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열정, 그 자체는 매우 멋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건 펄펄 뛰는 뜨거운 가슴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푹 빠져들지 못하면, 그 일의 최고 경지에 미치질 못한다(不狂不及)’라는 말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그 일 자체에 미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럴 때에야 자연스럽게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런 일이 자신의 전공과 연관이 있는 일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니 자동차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땐 내 마음에도 미동이 일었던 거다.           



▲ '미친 놈'이라 욕할지라도 미쳐본 사람만이 그 다음에도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



     

이제 나도 좀 변해볼까?

     

올핸 이장님 친구네 밭부터 고추를 심더라. 많은 분들이 이미 밭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계셨다. 난 쭈뼛쭈뼛 밭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한 번씩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데, 그 모습들이 어찌나 어색하게 느껴지던지. 

밭에 들어가선 내가 할 일을 찾아야 했다. 딱 보니 흙으로 고추모를 세우는 일에 일손이 딸려 보이더라. 그래서 그 일을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니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철민이네 형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고추를 심으러 나왔다. 그리고 어머니도 같이 심고 계시더라.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 이런저런 얘기를 함께 나누다 보니, 어색함은 금세 가시고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절로 들더라. 땅을 밟으며 자연 속에서 일할 수 있어서 좋고,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라고나 할까. 

“이제 나도 좀 변해볼까?” 영화 『전우치』에서 전우치가 요괴와 싸울 때 처음엔 실력발휘를 하지 않다가, ‘제대로 한 판 붙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뱉는 말이다. 그건 자신을 북돋는 말임과 동시에 상대방의 기를 꺾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그 말을 그대로 따라 “이제 나도 좀 심어볼까?”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맹렬히 심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말은 실상 전우치가 했던 말과 약간 다른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전우치는 도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려 이 말을 했던 것인데 반해, 난 ‘취업준비생’으로서의 나를 버리기 위해 이 말을 한 것이니 말이다. 그건 뭐랄까? 들뢰즈가 말했듯이 ‘~되기’를 선언하는 것이라 할까. 공부만 하던 사람이 육체노동을 하게 되면, ‘이런 일을 어찌 내가 하랴’는 관념 때문에 ‘깔짝깔짝’하고 만다. 대충하려는 마음은 없지만, 아무래도 몸에 익지 않았기에 아무래도 디테일한 부분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일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답답할 테고, 그걸 직접 하는 사람도 짜증만 날 테다. 거기엔 근본적으로 다른 신체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해서 ‘~되기’를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땐, 자신의 변신에 대해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학자가 되었으면 학자답게, 농부가 되었으면 농부답게 말이다. 어느 CF에서 ‘여자의 변신은 무죄예요’라고 했듯이, ‘상황에 맞는 변신은 무죄예요’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되기’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사회의 시선, 자신을 가둬두려는 ‘넌 원래 ~ 사람이야’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변화의 가능성을 활짝 열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이제 나도 좀 심어볼까’라는 말의 속 의미는 ‘이제 나도 농부가 되어볼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난 어설프게 농부 흉내만 내다가 왔을까? 아니면 진짜 농부가 되어 고추를 심다가 왔을까?



▲ '이제 나도 좀 변해볼까'에 빗댄 '이제 나도 좀 심어볼까'




목차     


1. 다시 고추를 심으러 가는 이유?

남부시장에서 보는 우리네 일상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 내가 가는 까닭

추억에 머문다는 것의 의미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이분법에 대해     


2. 이제 나도 좀 변해볼까?

청주터미널에서 초평저수지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세계가 있다

불광불급의 삶의 자세

이제 나도 좀 변해볼까?     


3. 초평저수지에 담긴 우리네 이야기

고급문화와 저급문화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노동 후엔 모든 음식이 천상의 음식이 된다

막내가 마을 구경을 시켜주다

초평저수지, 그곳에도 삶과 애환이 있다

초평저수지에 추억 하나 새기고 오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짐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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