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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Mar 18. 2018

제주여행이 준 선물, 한 평생이란 시각

2018 나 홀로 제주 여행 15

김만덕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중섭미술관에선 이중섭을 만나 가슴 뭉클했었는데 여기서도 김만덕을 직접 만나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김만덕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의 사람이고 이중섭은 50년 전의 사람이지만, 기념관과 미술관을 둘러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들 또한 나와 전혀 다르지 않은 팔팔 끓는 가슴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걸 알겠더라. 이래서 맹자는 “옛 시를 읊고 옛 글을 읽었는데도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한다면, 그건 말도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옛 사람이 살던 때를 말할 수 있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옛 사람을 벗 삼는다(尙友)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나 보다. 그들을 통해 나도 그들과 벗이 되었으니 말이다.           



▲ 이번에 제주에 와서 이  두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동문시장에 왔으면 봉해장국에서 요기를 하자  

   

김포공항 비행기표는 1시 15분에 출발한다. 지금은 10시 30분이니 점심을 먹고 자전거를 반납하고 공항에 가더라도 매우 넉넉하다. 그래서 어제 동문시장으로 저녁거리를 사러 가는 길에 본 음식점으로 점심을 먹으로 가기로 했다. 어제 갈 땐 어둠이 깔려 있어 음식점 이름을 잘 볼 순 없었지만 넓은 주차장에 사람들이 왁자지껄 얘기하는 모습이 보여 ‘이곳이야말로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진정한 맛집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김만덕기념관에서 채 10분도 되지 않아 도착했는데, 좀 이른 점심 시간대임에도 이미 여러 명이 있더라. 역시나 어제 생각한 대로 현지인의 맛집임이 확실하다^^ 이름하야 ‘봉 해장국’ 집이다. 봉황새 봉이나 용은 동양사회에서 상상 속에 존재하는 매우 신비한 동물로 ‘엄청나다’, ‘대단하다’라는 뜻을 표현하고자 할 때 쓴다. 음식점 이름의 디자인에도 봉자가 한자와 한글이 함께 디자인된 걸 보면, 주인의 음식에 대해 자부하는 마음을 충분히 알 수가 있다(다 먹고 나서 알아보니 음식점 이름을 따서 지은 걸 알게 됐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데엔 그만한 맛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음은 마찬가지다). 들어가선 기본인 해장국 말고 양해장국을 주문했다. 국물은 맑았지만 푹 고았는지 깊은 맛이 난다. 그리고 일반 해장국은 선지와 고기가 들어가 있고 음식점에 따라 맑은 국물이나 빨간 국물이 나눠지는데 반해, 여긴 일반 해장국은 빨간 국물로, 양해장국은 맑은 국물로 나눠진다. 해장국 안에 양과 당면, 그리고 고기가 듬뿍 들어가 있었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식사이니 그 순간을 음미하듯 천천히 먹었다. 



▲ 어제 이곳을 갔을 땐 칠흑같은 어둠이 있던 곳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현지인 맛집이려니  했던 거다.



표선에서 해장국을 먹을 때도 그랬지만, 이 음식점도 특이하게 굴과 무를 빨갛게 무친 밑반찬을 내준다. 굴의 바다향과 함께 잘 버무려진 무의 알싸한 맛, 그리고 고춧가루의 매운맛이 하모니를 이룬 이 밑반찬을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해장국집에 올 이유가 충분하다. 해장국은 고소하고 맛있지만, 자주 먹으면 약간 느끼해진다. 이때 굴무침을 먹으면 언제 느끼했나 싶게 청량한 맛이 입 안을 감돌아, 다시 해장국의 고소한 맛이 그리워진다. 이렇게 두 음식의 궁합이 잘 맞으니, 체인점 해장국집을 갈 게 아니라 이걸 맛볼 수 있는 이 해장국집에 가야만 한다.                 



▲ 해장국이 나왔다. 맛있는데 특히 굴과 무를 무친 음식은 궁합이 최고라, 다음에도 꼭 찾고 싶은  곳이다.




환한 햇살이 여행의 마무리를 축하해주다

     

자전거를 반납하러 대여점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로 되어 있다. 천천히 오르고 있으니 하늘이 맑게 개며 해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더라. 제주에 도착했던 날에 그 환한 제주의 햇살을 봤었고, 우도에 들어갔을 때도 잠시 본 이후 이렇게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으니 살맛이 저절로 났다. 그뿐인가, 햇살이 비침과 동시에 저 멀리엔 한라산까지 완벽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여기가 바로 제주’라고 환영해주는 것만 같더라. 그걸 보며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제주가 자전거 여행을 잘 마친 나에게 주는 선물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저 멀리 한라산도 한 눈에 보인 날씨였다. 나의 여행을 축하하며 보여주는 제주의 환하게 개인 날씨.



1월에 하는 자전거 여행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추위도 추위지만, 전혀 방한대책을 갖추지 않고 기분 따라 자전거 여행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 좋게도 기온은 영상 4도를 유지하며 얇은 장갑마저도 답답하게 느껴지게 할 정도로 포근했다. 

오히려 추위보단 바람이 자전거 여행을 힘들게 만드는 복병이었다. 어제와 그젠 하늘까지 잔뜩 흐리고 바람도 심하게 불어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자전거가 굼벵이 기어가듯 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와 같은 경험을 2015년에도 했었다. 그땐 달성군에서 서울까지 6박 7일간 자전거 여행을 단재 아이들과 했었는데, 여주를 지날 때 엄청나게 바람이 불어재껴 우리의 갈 길을 막았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인터뷰를 했을 때 민석이는 “거의 목적지(올림픽 공원)까지 다 와서 좀 편안히 달릴 수 있으려나 기대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맞바람이 불어 엄청 힘들더라구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뭐니 뭐니 해도 자전거 여행의 가장 큰 적은 역시나 비와 바람이라는 자연조건이라 할 수 있다.                



▲ 여주에서 서울로  달려가는 길. 날씨는 맑았지만 바람이 정말 말로 할 수 없게 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전주 

    

자전거점에 자전거를 반납하니 공항까지 태워다 주신다. 역시나 방학 기간 중 주말답게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씨가 말했던 것처럼 70~80년대엔 신혼여행지의 대명사였지만, 지금은 그저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하긴 나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제주에 온 것이니, 제주는 이제 더 이상 머나 먼 유배지의 땅은 아니다. 나만큼 이들도 이곳저곳 다니며 2018년을 활기차게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했겠지. 



▲ 사람이 가득 찬 공항. 제주에 왔지만 집에 가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런 북새통을 이룬다.



비행기는 공항을 벗어나 활주로에 진입하기 전 단계에서 멈췄다. 이곳은 하나의 활주로를 이착륙하는 모든 비행기가 사용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 지체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여행을 마친 다음 주엔 제주에 엄청난 폭설이 내렸는데 그로 인해 공항은 활주로가 폐쇄되며, 활주로가 하나뿐인 제주공항의 한계를 지적하는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1월 첫째 주에 제주로 온 것은 천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12분 정도 지체한 후에 드디어 활주로에 올라섰고 전속력으로 달려 제주의 하늘로 날아올랐다. 



▲ 비행기는 힘겹게 떠올라 서울로 향했다. 이렇게 오랜만에 온 제주에서 나는 간다.



비행기는 정확히 광주-전주-공주-천안을 거쳐 가는 항로로 날아가더라. 내 자리의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너무도 익숙한 호수의 전경과 산의 풍광, 그리고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건 옥정호였고 모악산이었으며, 전주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고향의 전경은 처음에 봤을 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시점이기에 낯설었지만, 그래도 자세히 보고 있으니 너무도 낯익은 모습이 얼핏 보여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워지더라.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저 도시 곳곳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괜히 그리워지고, 괜히 보고 싶어지고, 괜히 마음이 요동을 친다. 



▲  왼쪽 옥정호, 가운데 모악산과 전주의 모습, 오른쪽 전주 시내. 전주대의 스타센터가 한 눈에 보인다.



비행기는 조금의 오차도 없이 날아 김포엔 3시에 도착했고, 천호역엔 4시 30분쯤 도착했다. 이로써 3일 만에 다시 나의 집에 도착한 셈이고, 3박 4일 간의 무작정 떠난 제주여행은 끝난 셈이다.                


▲ 오랜만에 천호에  도착해서 집으로 가는 길에 한 컷. 오랜만에 집에 오고 나니 기분이 좋다.




한 평생이란 시각으로 여는 2018

     

2009년에 국토종단을 할 때 비가 오던 날 원통에서 진부령 고개를 넘어 고성읍으로 걸어가야 했었다. 목포에서부터 시작한 도보여행은 어느덧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를 거쳐 강원도에 들어섰고 강원도 경로 중 마지막 목적지인 고성이 코앞에 놓였다. 그런 상황들은 기뻤지만 비가 오는 날에 진부령을 넘어 고성까지 가야 한다는 건 부담이었다. 50km나 되는 길로 걸어선 12시간 정도나 걸리는 어마어마한 거리였으니 말이다. 더욱이 비까지 오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부리나케 걸어 저녁 7시가 되었을 땐 9Km만 남겨놓은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 이상은 무리였기에 어쩔 수 없이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1톤 트럭이 오는 걸 보고 무작정을 손을 들었는데 바로 세워주시더라. 솔직히 내가 이런 상황에서 운전자 입장이었다면, 비도 내리고 칠흑 같은 어둠도 깔려서 공포감이 밀려오는데 거기에 어두침침한 우비까지 입은 사람이 손까지 흔들고 있으니,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몰라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정말 감사하게도 나를 태워줬고 그 덕에 나는 고성까지 편안히 올 수 있었다. 


▲ 진부령으로 향해 가는 길. 비는 내렸지만 그럼에도 걷는다는 게 좋았다.



그때 그분과 잠시 얘기를 나누며 여행을 떠나 여기까지 온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니, 그분은 “한 평생이란 시각으로 인생을 보면 지금의 이런 여행도 좋은 추억이고 계기겠죠”라는 대답을 해주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고, 그렇게 너른 시각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그리고 그 진심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러웠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2009년 국토종단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들었던 그 말이야말로 당시 29살로 30대 삶을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하나의 모토가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고 정말 30대의 삶은 그렇게 산 삶이라 자부할 수 있다. 그 말마따나 너른 시각으로 인생을 보고, 긴 안목으로 삶을 대하려 노력했으니 말이다. 아마도 이번에 제주여행을 갑작스레 떠날 수 있었던 것도 그 말이 나의 심상 깊은 곳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리라. 



▲ 진부령을 내려왔다. 이미 6시가 넘은 시간. 이대로 갈 것인가? 히치하이킹을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도 ‘한 평생이란 시각으로 살아가기’가 화두인 건 마찬가지다. 그건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나에게, 단기적인 이익만을 생각하는 나에게, 필요성에 따라 사람 관계를 맺는 나에게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다시 새롭게 길을 갈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주는 시각이기 때문이고, 아직도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9년 이후로 9년을 살아오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고, 나 자신에게도 충실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져본다, ‘한 평생이란 시각’으로 2018년 내 삶을 잘 가꿔가겠다고. 그리고 모처럼 홀로 했던 이번 제주여행을 시작으로 지금 하는 일들, 그리고 만나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며 올 한 해를 살아가겠다고. 



▲ 제주는 '건넌 마을'이라는 뜻이다. 건넌 마을에 다시 와서 볼 수 있길 바란다. 제주는 나에겐 희망이고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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