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앵두 탐방기 3
재밌게도 이 공간엔 아직 간판이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간판은 세우지 않고 저런 간단한 입간판들로만 이 공간을 알릴 생각인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전혀 뜻밖이었다. 간판을 달고는 싶은데 지금은 용기가 나지 않고 부끄러운 나머지 못 달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 사실을 통해 공간을 열 수 있는 용기와 간판을 달 수 있는 용기 사이엔 어마무시한 간극이 존재한단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덩달아 간판이 달리던 날엔 더 격렬히 축하해줘야겠다는 생각도 스쳤다. 어찌 되었든 자신만의 붉은 장막을 당당히 넘어선 날이기 때문이다.
두 개로 세워진 입간판엔 아기자기한 앵두만의 생각들이 요소요소에 담겨 있다. 공간에 대한 소개를 길게 하기보다 해시태그를 활용하여 요약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몇몇의 해시태그를 조합하다보면 ‘하나의 흐름으로 조합되지 않는 이 해시태그들은 뭐지’라는 싸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 공간에 대해 더 궁금해진 나머지 귀신이라도 쓰인듯 문을 빼꼼히 열어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마 내 주변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면 저 입간판을 읽어보아도 이해가 안 된 나머지 문을 살짝 열어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여기 들어가도 되는 곳이예요?”라고 물어볼 듯하다.
그 옆엔 “매일 매일 그 날이 최고의 날이라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겨라.”라는 말이 당당한 필치로 쓰여 있다. 아마도 앵두가 저 말을 썼을 때 엄청나게 고민했을 법하다. ‘저 한 면에 어떤 임팩트 있는 말을 담을까?’, 그리고 어떤 말이 사람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갈까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 속엔 결국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담기게 마련이다.
최근에 임용 2차 면접을 준비하며 예전에 나왔던 문제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 한 번 나의 교육에 대한 생각을 묻는 듯한 질문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자신의 학급 급훈을 정하고 그 교육적 의의를 말하라’라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문제 자체는 매우 딱딱한 말로 서술되어 있지만, 이 말은 ‘넌 어떤 교육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난 줄곧 ‘나의 발걸음, 나의 속도로 걸어가자’고 생각해왔다. 이미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세상엔 온갖 강요와 비교, 그리고 일반적인 잣대들이 나를 수없이 할퀴고 간다. 그렇게 나의 개성은 철저히 짓밟히고 깡그리 무시되는 쪽으로, 그건 고쳐야 하는 쪽으로 강요되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나는 사라지고, 한국 사회가 원하는 학생 상만이 자리 잡게 된다. 난 그걸 좀 더 심한 말로 거세라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려면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발걸음으로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칭찬받을 일이어야 하고 교사와 학교는 그걸 맘껏 지지해주고 도와줄 수 있으면 된다.
앵두의 입간판에 쓰여 있던 저 말도 결국은 최고의 날이었던 이 날을 맘껏 누리며 자기대로 살라는 축복의 말이니 진부하긴 해도 마음에 확 와 닿더라.
안으로 들어왔다. 한 가운데엔 긴 테이블이 있고 여섯 개의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양 벽면은 녹색벽지가 발라져 매우 차분한 인상을 안겨준다. 왼쪽 벽면엔 세 번에 걸친 크루즈 여행을 하며 세계 곳곳에서 사 모은 나라별 엽서들이 장식되어 있고, 오른쪽 벽면엔 폴란드 친구가 보내줬다는 세계 지도와 시계들이 장식되어 있다. 이 두 가지 장식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곳 공간지기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느 정도는 유추할 수 있을 정도다. 앵두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어도 공간지기는 세계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을, 그리고 이곳에 있으면 전 세계적인 관점으로 자신의 시각을 넓힐 수 있을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안쪽엔 앵두 전용 작업장이 있다. 자신만의 공부방이라고도 할 수 있고 이곳에서 수많은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곳 장식장에서 한 번쯤 보고 싶었던 세계 곳곳에서 온 골무들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예전에 페이스북에 이 골무들을 모아 올린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실물로 직접 보면 어떨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만큼 각 나라에서 온 골무들이 이렇게 한 곳에 모아놓으니 꽤나 이색적으로 느껴졌었고, ‘왜 각 나라별로 이런 특색 있는 골무를 만들게 됐을까?’ 궁금해지기도 했었다. 그렇게 궁금하던 골무들을 다름 아닌 이곳에서 이렇게 딱 마주쳐 볼 수 있게 되니 기분이 색다르더라.
장식장 벽면에는 두 번의 크루즈여행 때의 경로가 표시되어 있다. 어찌 보면 크루즈 승객이 된다는 건 그 배의 이동경로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니는 여행가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만큼 너른 세계를 한 가득 보고서 느끼고서 돌아온 만큼 세상을 보는 스케일, 삶을 대하는 진정성에도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전부터 조기교육 열풍은 한참을 불어 좋다고 하는 건 좀 더 일찍 시작해야 한다는 믿음이 신앙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커서 자신이 진정 원하게 됐을 때 하는 경험이야말로 이전과는 현격하게 다른 체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비교해 봐도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했던 임용공부에 대한 나의 진정성보다 올 1년에 했던 임용공부에 대한 진정성이나 깊이가 훨씬 더 있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자신이 원할 때 맘가짐이 달라졌을 때 하면 그 경험은 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는 깊이로 다가오듯이, 앵두가 떠났던 크루즈 선원이란 체험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앵두는 마지막 크루즈를 탔을 땐 하루도 빠짐없이 여행기를 썼다고 하더라. 얼른 그 여행기가 세상에 떡하니 나와 여러 사람의 좋은 벗이 되길 희망해본다.
한참을 둘러보고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방명록을 보여주더라. 거기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남긴 글들이 향긋한 향기처럼 남겨져 있었다. ‘방명芳名’이란 한자어는 ‘향긋한 이름’이란 뜻이고, 그건 하나 하나의 존재를 긍정하는 뜻을 담고 있다. 뭇 생명들이 향긋한 이름을 지닌 존재들이라면, 그런 존재들이 모인 공간은 아름다운 공간일 수밖에 없다.
나에게도 방명록을 써달라고 말을 했기에 나도 이 순간의 기분을 담아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HE 앵두’라는 공간에 들어와 이것저것을 보다 보니 뭉클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공간을 열었고 그곳을 꾸몄으며 또 이곳에서 여러 인연들이 엮였다. 앵두는 그렇게 자신이 생각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현실에서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떠냐는 건 아무래도 괜찮다. 앵두의 입간판 글귀마냥 바로 이 순간이 최고의 순간일 테니 말이다. 올 초에 만났을 때 흔들리는 사람들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앵두는 앵두대로, 나는 나대로 흔들리는 가운데 자신의 꿈들을 펼쳐갔던 한 해였다는 걸 이곳에 와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감상들을 담아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문을 사랑하는 한문학도답게 마지막엔 쓰고 싶었던 얘기인 ‘움직여야 비방이든 명예든 얻게 된다動而得謗, 名亦隨之’라는 말을 썼다.
움직였기 때문에 무언가를 해봤기 때문에 거기에 어리는 감정들, 엮이는 인연들, 수많은 사건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져갈 ‘THE 앵두’라는 공간의 이야기가 몹시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