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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빛 Aug 17. 2024

선생님, 저 점수 안 받고 안 할래요.

그래도 되잖아요.

“선생님, 저 점수 안 받아도 돼요. 그러니까 안 해도 되죠? 안 할래요. 저 0점 받아도 돼요. 안 한다니까요. 저 점수 필요 없다고요. 생각해 보고 한 줄이라도 써보라고요? 왜요? 싫어요. 귀찮다니까요. 점수 안 받으면 안 해도 되잖아요? 왜 해요? 안 할래요.”


9시 전에 등교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몫은 충분히 해냈다고 여기는 아이에게 수행평가로 시창작을 해야 한다는 나의 말이 무슨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점수가 필요 없는데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아이의 물음에 나는 시 창작의 가치와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을까? 아이는 왜 이렇게 많은 상처를 지니게 되었을까? 이십 년 지기 친구를 이해하기에도 어려운 내가, 함께 살고 있는 내 가족을 이해하기에도 때때로 벅찬 내가, 3월에 만난 30명의 아이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가당키나 한 일일까.



오늘도 작은 소란이 있었다. 담임으로 맡고 있는 우리 반 친구가 다른 교과 선생님의 지도에 불손하게 행동한 일이었다. 이런 일은 자주, 종종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한다.


"선생님, 저 졸업만 하면 되잖아요. 수업일수만 채우면 되잖아요? 저 그동안 학교 빠진 날이 며칠이에요? 기초학력이요? 아 뭐, 최소성취요? 그거 못하면 진짜 졸업 안 시키는 거 맞아요? 남아서 공부하라고요? 헐.. 그러면 그냥 학교 그만둘래요."



신규 연수 때 00 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와서 강의를 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품어주지 않으면 울타리가 사라진 아이들이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그러니 최악의 경우라도 선생님들이 그 아이들을 품어주라고. 그래서 아이가 수업을 듣기 싫다고 소동을 피워도, 학교 안팎에서 폭력을 일으켜도, 며칠씩 학교에 안 오다가 급식 때쯤 학교에 오더라도, 사복을 입은 채로 실내화를 질질 끌고 등교하더라도, 외부에서 이런저런 사건에 연루되어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여도, 여러 차례 도난 사건이 일어나도, 술냄새가 지독한 채로 교실 바닥에 누워 있어도, 현장 체험학습 날 문신을 한 팔을 한껏 드러내며 의기양양할 때도 우리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맞이한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때, 그분이, 그 말을 하셨는지 의문이 든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 훌륭한 교사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것을 못하면 나는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알면서도 방관한 교사가 되는 것인가? 그런 아이들 몇몇이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방해하고 교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더라도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우리는 따뜻하게 그 아이를 맞이하고 교육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무한 긍정의 가치관을 지녀야 할까? 학교에서 소화기를 재미 삼아 터뜨리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있는 화장지에 물을 묻혀 벽에 공처럼 던지면서 증거 있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에게 혼잣말이었다고 우기면서 자신은 욕을 할 수 있지만 선생님은 자기에게 인상이라도 쓰면 인권침해, 아동학대로 신고한다는 아이들에게, 자신에게는 수행평가 점수가 필요 없으니 안 한다고 하는 아이에게 학교는 언제나 열려있다.


그분을 다시 만나면 묻고 싶다. 한 사람의 선생님이 할 수 있는 범위의 폭과 깊이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말이다. 사랑과 관심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것은 분명 맞지만 학교라는 곳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을 수 있다.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오히려 폭력적인 사고가 아닐까? 그리고 그 이유를 학교의 문제로 돌리며 교사의 자질과 연관짓는 것도 너무 위험한 생각이다. 아이에게 결석만 하지 말고 점심이라도 먹으러 오라고 하는 것은 교육적일까 그것이 더 비교육적인 것은 아닌가 그 부분도 생각해 봐야 한다. 한 시간이라도 출석해서 유예되지 않도록 수업일수의 2/3를 채워 진급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에 대해서도 말이다. 졸업장 따려고 결석은 안하고 7교시에 나타나 수업을 듣고 가는 아이에게 그래도 잘왔다고 칭찬해줘야하는 것일까?


점수 안 받고 안 할래요.
아무 때나 등교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자꾸 이러시면 학교 안 다녀요.
점심때쯤 갈게요.
결석일수 며칠 남았죠?
최소성취 안 하면 진짜 진급 안 시키실 거 아니잖아요?
어차피 점수 필요 없어요.
어제 아르바이트해서 피곤해요.

선생님, OO엄마입니다. 제 말은 듣지 않아요. 선생님이 잘 말해주세요.
아직 학교에 안 갔다고요? 늦잠자나 봅니다.
그냥 졸업만이라도 시켜주세요.
혹시 학교에서 친구들이 저희 애한테 왕따 시키고 그래서 그러는 건 아니죠?
애가 왜 학교 가기 싫다고 하는지 선생님께서 뭐라 하신 건 아니죠?
공부는 더 뭐라 하지 마시고 졸업할 수 있게 선생님이 잘 다독이면서 말씀해 주세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뭐라 하지는 마시고 졸업만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결석일수 모자라지 않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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