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윤동주 시에는 자아성찰이 몇 행부터 나오나요?
"선생님, 윤동주의 자화상에서 자아성찰은 몇 행부터 나오나요?"
"선생님, 성찰이라는 것은 나쁜 짓을 한 사람한테만 사용하는 표현이 아닌가요? 윤동주 시는 성찰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성찰은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잘못을 반성할 때 쓰는 거니까요."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문제가 틀렸다고 여기면 그냥 시험이 끝나고 교무실로 막 달려온다. 왜 그게 답이 되었는지 깨달음이 선행되기보다는 자신이 틀린 것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 자신은 100문제를 풀었고 그만큼 열심히 공부했는데 어떻게 틀릴 수 있을까에 대한 분노이다. 그 분노가 선생님들을 향한다.
그 말에 선생님은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