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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Oct 24. 2021

집도 절도 없는 건 아니고...

월세 백이요?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릴게요. 셰어하우스 정도라면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가 아직 서울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서울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은 없다.      


내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친구들이 멱살을 잡고 도와주어 겨우 졸업은 했다. 이력서는 10개 정도 쓰다 그것마저 지쳐서 그만두었다. 일주일에 3번 출근하는 알바 자리를 구해서 달에 100만 원 벌고 있다. 출근하는 날 아침에는 지옥철에서 내리며 욕을 시 부리고, 퇴근하는 저녁에는 열심히 살아온 내 27년의 결실이 이것뿐인가 싶어 눈물을 흘린다. 가족과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집에 들어오면 방에 틀어박혀 모두 출근할 때까지 나가지 않는다. 주말에는 정처 없이 여기저기를 떠돌다 모두가 잠들면 들어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본다. 그렇게 새벽 세시까지 멀뚱멀뚱 눈만 굴리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숨이 탁 막힌다. 이곳은 내 방이 아니다, 내 집이 아니다. 숨 하나 쉽게 쉬어지지 않는 이 공간을 어찌 내 방이라 부르겠나.     


내가 점점 시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겠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회사는 점점 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싫음의 굴레를 계속해서 굴리며 계속해서 걸어 다녔다. 온전히 쉴 수 있는 내 방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름 아끼고 안 쓰고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부동산 벽에 붙은 종이의 숫자들은 다른 말을 했다. 난 정말 집도 절도 없이 이렇게 돌아다니기만 해야 하는 걸까.     


집도 절도... 절... 절...? 4년 전쯤 뻔질나게 드나들던 절이 생각이 났다. 템플스테이를 하러 갖다가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방학 때면 이삼 주씩 눌러앉아 지내다 오기도 하고, 학기 중에도 3,4일의 여유만 생기면 당장 버스표를 끊어 놀다 오던 그곳. 그곳이라면 내 방 한 칸 얻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비이성적인 판단이 유일한 선택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나 절있다. 집도 절도 없다는 사람 많은데, 나는 절 있으니 절로 갈랜다. 지난주에 우리 함께 잘 살아보자며 사온 3만 원짜리 오렌지 재스민 화분이 나는 어쩌라고 너는 떠냐느냐는 원망의 소리를 내는 듯했지만 어쩌겠나. 지금은 나부터 살아야겠으니. 당장 새벽 두 시 버스를 예매해서 서울을 떠났다.   

   

오랜만에 간 그곳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여전히 아름다웠고, 조용했다. 유일하게 이상한 점이라면 아침 7시에 커다란 캐리어 하나를 끌고 절에 서 있는 나였다. 일단 모든 절 식구들이 나를 반겨주어서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절의 대표인 주지스님의 허락이 떨어져야 방을 얻어 살 수 있었기에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      


주지스님 방에 들어가 앉자, 마주 앉은자리에서 주지스님께서 천천히 차를 내리시기 시작했다. 이런 자리가 처음은 아니건만, 출가와 가출 사이의 마음으로 온 처지가 되니 등 뒤로 축축하게 식은땀이 흐른다. 그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불안하게 좌우로 몸을 흔들며 찻잔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자니 저쪽에서 먼저 말소리가 들린다.      


“한번 살아보겠다고? 그래 한번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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