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간 여행을 마무리하며
To. 아빠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고 뭄바이에 도착했어요.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처음엔 "내가 왜 엄마 아빠 친구분들까지 모시고 인도여행을 했을까" 후회도 하다가 지금은 오히려 "누가 이런 경험을 해봤을까" 싶어서 웃음이 나요.
아빠랑 헤어지고 여기 버스 회사에서 슬리핑 버스를 탔어요. 엄마와 친구분들은 코치에서의 악몽이 생각나서 타기 직전부터 걱정이 많으셨는데 다행히도 지금까지 타본 슬리핑 버스 중에 최고로 좋은 버스였어요. 아무리 좋은 버스여도 자세가 계속 불편하니깐 어른들은 다들 힘들어하셨어요.
"배고픈데 언제 밥 먹는데?"
"화장실은 언제 가는지 아니?"
이런 말이 계속 나오는데 제가 당장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으니깐 마음이 계속 조급해졌어요. 엄마는 이상하리만큼 괜찮아 보였어요. 겉으로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요. 묵묵히 창 밖을 보다가 친구분들 상태를 먼저 챙기고 저한테 신경 쓰지 말고 쉬라고 말하더라고요.
아빠는 다른 지역으로 가신 뒤로는 제가 엄마와 친구분들을 모셔야 하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마지막 마무리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뭄바이에서는 못했던 쇼핑이랑 퀄리티 좋은 음식을 찾아드리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정말 마지막까지 잘해보고 싶어서, 뭄바이에서 일하는 누나한테까지 물어보면서 "여기 가면 만족하실 거야" 싶은 곳을 골랐어요. 트리슈나 같은 곳에서 밥 먹고, 이제는 좀 괜찮은 하루가 될 줄 알았거든요. 근데 막상 가서 먹어보니까, 기대했던 반응이 안 나오더라고요.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도 별로라고 하면 그럼 난 뭘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웃으면서 다음 코스 얘기했어요. 편집샵도 데려가고 싶었는데 애초에 엄마 취향이 아니니까 분위기만 어색해지고 결국 실패했죠. 그때부터는 제가 '뭘 해드리냐'에 자꾸 집착하게 됐던 것 같아요. 좋은 음식, 좋은 쇼핑, 좋은 일정 뭔가 하나라도 성공시켜야 오늘이 의미 있어진다고 믿었어요.
그러다 마지막 날이니까 조금 더 돌아보자는 말에 저는 또 힘을 내서 뭄바이 게이트로 향했어요. 오랜만에 가서 간과했는데 여전히 사람이 너무 많고, 서 있는 시간은 길고, 소리는 시끄럽고..... 속이 꽉 막힌 기분이었어요. 빠져나오고 싶은데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말은 짧아지고, 얼굴은 굳어가고 계속 엄마한테 힘든 티를 팍팍 냈어요. 그 상태에서 히말라야 크림 샵을 찾아가고 꼭 마트에서 커리 파우더를 꼭 사야 한다며 마트를 세 곳이나 돌았어요. 제가 이러는 게 엄마와 친구분들을 위한 여행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제가 조급한 거였어요. "이거라도 성공하면 괜찮겠지" 같은 마음이었어요.
결국 그 과정에서 엄마가 저를 한 번 딱 잡으셨어요. 제가 너무 예민해져서 말이 날카로웠고 어른스럽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엄마도 당황하셨겠죠. 저는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아무도 만족을 안 하지?"라는 말이 튀어나왔고요 엄마는 그때 "아들이랑 다시 뭄바이에서 함께 있으니깐 옛날 생각도 나고 너무 기뻐"라고 말하셨어요. 그때 내가 뭔가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엄마와 친구분들은 뭘 부탁한 적이 없는데 제가 그냥 "뭐라고 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급했더라고요.
제가 "엄마 마지막 뭄바이에서의 기억은 뭐야?" 하고 물었을 때 엄마가 "너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엄마 가지 말라고 엉엉 울더라"라고 하시는데 순간 마음이 너무 이상했어요. 저는 엄마는 인도를 여러 번 오셨으니까 익숙하시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왜 이리 신기해하실까 궁금했는데 엄마는 인도에 있는 모든 순간 저와 누나들 생각을 하셨구나. 그래서 엄마한테 뭄바이는 익숙한 도시가 아니라 아들이랑 다시 걷는 새로운 뭄바이였구나. 그걸 저는 너무 늦게 알았던 거죠.
아빠, 그래서 마지막 날의 갈등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이 여행이 뭘 의미하는지 알게 됐어요. 완벽한 일정이 아니라, 엄마가 저를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제가 얼마나 어렸는지, 그리고 우리가 같은 장소를 보면서도 서로 다른 마음으로 걷고 있었다는 걸요. 엄마 아빠와 무사히 남인도 일주를 마치게 된 것도 정말 기쁘고 무엇보다 엄마가 "기뻤다"라고 말해준 게 정말 다행이에요. 이 여행의 시작은 아빠 덕분이었는데, 그 말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옛날 기억을 회상할 수 있게 인도 여행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1/11
아들 올림
카프카의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의 영향을 받아 여행기를 써봤습니다. 1년 전 여행기를 이제서야 마무리 합니다. 작년 새해에 했던 다짐이 떠오르면서 올해 새해를 더 힘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제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