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꾸준히 빛을 내고 있다.
2009년 여름, 나고 자라기를 옥탑방을 벗어나 본 적 없던 우리 가족이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나에게도 드디어 방이라는 공간이 생겼다.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된다는 건 생각보다 짜릿한 일이어서 입주를 기다리는 동안 설렘이 온종일 기승을 부렸다. 나는 여전히 처음 마주했던 모래 놀이터, 살림이 빠져나가 황량해진 빈집과 하늘 높게 솟은 아파트,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을 담아낸 타오르다 만 초여름을 빠짐없이 기억한다. 이사는 나에게 있어 일종의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이삿짐을 꾸리는 과정에서 평생을 함께 지냈던 분홍색 곰인형은 솜뭉치 조각과 버려졌고, 콜라 모양의 태엽 로봇은 두 동강 난 채 쓰레기봉투로 향했다. 그 외에도 나와 함께했던 많은 물건을 버렸지만 나는 생각 외로 초연했다. 기존의 것들을 버려야 하는 것이 이사의 대가라면 한 뼘 짜리 추억과 방이라는 공간을 맞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입주를 하게 된 첫날, 어른들이 짐을 나르는 동안 정감 있는 미소로 이곳저곳에 떡을 돌리는 것이 내 임무였다. 나는 잔뜩 긴장하였다. 혹여나 내가 잘못하여 이웃과의 사이가 틀어진다면 아파트에서 쫓겨나고 말 거라는 지극히 아홉 살스러운 생각 탓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임무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아빠는 대견하다는 말과 함께 만 원 지폐 한 장을 쥐어주었다. 나는 그 돈으로 방을 꾸미기에 마땅한 소품을 찾고자 미리 점찍어둔 동네의 문구점으로 향했다. 문방구엔 없는 게 없어. 뭐든 있을 거야. 이런 생각으로 진열대를 빙빙 돌았지만 그곳엔 방을 꾸미기에는 마땅한 것이 없었다. 갖가지 장식품들은 만원 가격대를 호가했고, 알록달록한 파스텔로는 벽지를 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나는 뭐라도 하나 건져보자는 심정으로 가게의 맨 구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야광별 스티커 하나를 발견했다.
“할머니, 이게 뭐예요?”
“뭣이, 어 고거? 별이여.”
익히 들은 적이 있다. 수명을 다한 별은 또 다른 별을 낳는다고. 할머니 이거 진짜 별이에요? 그러면 이거 살아있는 거예요? 파리채 탁탁 털던 할머니는 궁금증 잔뜩 서린 아이의 추궁이 귀찮았는지 황급히 질문을 끊었다. "난 모르재. 암튼 삼천 원이여, 살껴?" 나는 불량식품과 떡볶이가 들어있는 봉투에 별을 담았다. 별을 삼천 원에 살 수 있다는데 그걸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곧장 방으로 향했다. 나갔다 왔으니 손을 씻으라는 엄마의 만류도 듣지 않고, 야광 스티커를 꺼내 하나씩 벽에 붙이기 시작했다. 천장에 손을 뻫다가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였지만 부모님께 청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손끝으로 이뤄지는 우주는 나만 보고 싶은, 내가 가장 먼저 관측하고 싶은 그런 천체였다. 그러나 제 기대치가 큰 탓이었을까. 다닥다닥 붙은 야광 스티커는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빛을 내지 않았다. 나는 상실감에 빠졌다. 이런 사기꾼 같은 할망구. 당시 내가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깟 삼천 원이 아니라 내가 그려본 우주였다. 웃기는 일이었다. 나는 가져본 적도 없는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마침 저녁때가 되어 거실로 나왔다. 우선 허기를 달랜 후에 그 야광별들을 모조리 처분할 생각이었다. 나는 이사를 왔으니 중국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졸랐다. 마치 그것을, 새로운 집을 받아들이는 당연한 의식처럼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이다. 그리고 식사를 다 마쳤을 때, 해가 언덕 너머로 사라져 밤이 찾아왔다. 아 맞다.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임무를 완수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럴 수가, 그곳엔 정말 별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밝게 빛나는 초신성이었다. 나는 곧장 창에 기대어 '이거 봐, 내 방에는 별이 있어. 부럽지?' 거리 위에 사람들을 곯렸다. 길을 잃은 누군가는 별을 보고 집을 찾을 테고, 낭만주의자들은 사랑을 찾을 테고, 점성술사들은 동향을 점치고, 시인들은 시를 끄적이고, 천문학자들은 연주 시차를 계산할 테지. 하지만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우주에 발 붙여 서있다는 거고, 내 방이 곧 은하라는 거야.
나는 그날 평생 잊지 못할 밤을 보냈다. 빛을 머금은 야광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내게 꼭 고문과도 같게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7년이 되었다.
영원한 안식처일 줄만 알았던 집은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던 나에게 빛을 잃은 야광별 같은 곳이 되었다. 그 무렵의 나는 또래 친구들과 월세를 모아 지하에 작업실을 하나 구해 온종일 그곳에만 머물렀다. 볕도 들지 않을뿐더러 2평도 채 되지 않는 그곳에 서너 명이 다닥다닥 붙어 제 꿈을 좇겠다는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고도 대견한 일이었다. 공간이 주는 설렘은 처음으로 내방을 얻었을 때와 엇비슷했으나 그 암실에는 야광별이 아닌 주황빛 백열등만이 우리를 비춰주었다. 맨 처음에는 형광등을 달은 적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바로 처분했다.
“실격이야. 안돼.”
“왜? 이 정도면 나름 밝잖아.”
“그래서 실격이야. 기준 미달이 아니라 기준 초과야.”
나는 형광등보다는 백열등이 주는 분위기가 더 좋았다. 스스로 열을 내면서 빛을 내는 꼴이 꼭 아등바등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를 은유하는 것만 같았기에. 전구 하나로도 빈틈없이 밝아지는 그 비좁은 공간이 내 세상의 전부라고 으스댈 때면 적어도 내 꿈이 온 세상을 밝힐 수 있으리라 믿을 수 있었기에. 온종일 그 방에 나를 가둔 것도 아마 그 까닭이었을 것이다. 가로등이 행열을 짓는 드넓은 거리에서는 내가 아무런 빛을 낼 수 없다는 걸… 마치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사라진 애착인형과 태엽 로봇, 빛을 모조리 잃은 야광별 스티커처럼 되는 것만 같아 가슴이 참 저며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할 줄만 알았던 그 필라멘트도 점점 빛을 잃어갔다. 동시에, 우리도 그러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과 같은 빛을 내려면 우리는 서로를 더 혹독히 태워야 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우리는 이내 지쳤다.
뚝. 결국 전구와 함께 우리는 꺼지고 말았다. 그 후 각자 다른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졌다. 마치 불이 꺼지면 다시 또 다른 빛을 찾는 나방 떼처럼.
시간은 또 흘러 어느덧 2022년이 되었다. 글을 쓰면서 되돌아보니 내 삶은 빛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주 가끔 고독함과 슬픔이 병렬로 연결되어 나의 빛을 앗아가려고도 했지만, 그때마다 내 기억이 견고하게 나를 지켜주었다. 야광빛이 머금은 은은한 광명만으로도 설렐 수 있었던 시절과 필라멘트의 열기가 방안을 덥혀도 웃을 수 있는 나. 어쩌면, 계속 꾸준하게 빛을 냈던 건 내가 아니였을까. 열심히 빛을 머금던 야광 별도, 타들어갔던 필라멘트도 지금은 모두 빛을 잃었지만 온 힘을 다해 깜빡였던 그들이 어찌나 눈부셨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