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8)
그날은 올해의 첫눈이 내린 날이었고
첫눈은 무작위로 내렸기에 무작위로 그 애를 만나고 싶었고
양달이 소멸한 만큼 막차는 금방 끊길 것이고
택시의 후미등이 발광할 것이고, 유리엔 서리가 잔뜩 낄 것이고
창유리 어떤 단어를 지을지 짓궂은 고민을 하다가
힘주어 사랑이라는 단어를 끼적여 보았고
어느 이에게는 낙서에 불과할 것이고
버려지는 마음이 너무 많을 것이고
반쪽 짜리 달이 걸리적거릴 것이고
환상을 그 애에게 엎지를 것이고
블랙아이스를 밟아 휘청일 것이고
이제는 캐럴이 지겨워질 것이고
편지지에 어수선한 일기를 적을 것이고
너무 아픈 문장은 품지 않기로 하였던
그 애의 주의를 오늘도 어길 것이고
아픈 만큼 느릿하게 뱉은 단어의 진의를 내심 알아주기를 바랄 것이고
만분다행히 그 애는 사소한 언어마저도 품는 법을 알고
무념마저 아낄 것이고, 한 걸음마다 뒤를 돌아볼 것이고
약손가락으로 커튼을 쥐어 창유리를 벅벅 닦으며
하늘의 색이 하늘색이 될 때까지 밤을 지새울 것이다.
간간이 울리는 차 소리 어느새 사라진 어제.
껍질만 남은 오렌지와 눅눅해진 복숭아
톰팃 소비뇽 블랑과 뽈뽀 그리고 바스키아
나는 느릿느릿 희열 하여 얼마간 취기가 올랐고
언뜻 외로울 겨를이 마음껏 지워진다
이른 저녁 슈톨렌이 담긴 빵봉투를 뒤적이다가
그 애를 배웅한 후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금방 하고는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을 두서없이 적어보기로 하였는데,
혼자 있는 시간과 타인의 존재를 하는 수 없이 인지하므로
빈틈없이 얽힌 마음의 이야기를 쓰고플 것이고
사랑을 실적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거창한 마음을 무심하게 뱉는 재주가 늘어갈 것이고
그간 지구는 꾸준히 자전할 것이고
봄을 금방 가져다줄 것이고
지난겨울을 한없이 그리워할 것이고
다가올 계절에도 그 애를 곁에 두고 싶을 것이고
이게 다 무슨 말이냐는 그 애의 물음에
좋아한다는 말을 지긋이 내뱉었고
그 애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나를 안아주었으니
나의 마음은 꾸준히 자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