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친정에 들렀던 어느 날, 엄마가 집 근처에 자주 가던 초밥집에 가야 한다며 채비를 하셨다. 초밥이 드시고 싶으신가 했지만 목적은 전혀 달랐다. 얼마 전 손님 대접차 갔다가 단체로 탈이 나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혼자 가는 것보다 둘이 가는 게 낫다 싶으셨는지 나에게도 같이 가자 하셨다.
사실 나는 소위 말하는 ‘쫄보’이다. 어디 가서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데다 불편한 일을 당해도 똑 부러지게 따지는 걸 못했다. 더군다나 눈물도 많았다. 쫄보와 울보의 집합체인 나를 기르며 엄마는 꽤나 곤란했던 모양이다.
“얘는 학교 끝나면 허구한 날 울면서 들어오기 일쑤였어!”
짓궂고 철없는 남자애들의 장난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울고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니,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본인은 강단 있고 야무진데 그 속에서 나온 딸은 정반대라 많이 답답했겠지. 엄마는 이따금 핀잔을 주긴 했지만 다그치진 않았다. 대신 내가 보고 따라 할 수 있게 시범을 보여주시곤 했다.
초밥집으로 가는 동안 엄마는 탈이 났던 당시를 복기해 들려주었다. 몇 월 며칟날, 몇 명이서 무엇을 먹었는지 이야기하며 할 말을 정리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투병 중인데 음식까지 잘못 먹어 더욱 고된 시간을 보낸 엄마의 뒷모습은 비장해 보였다. 계단을 오르고 상가 복도를 걷는 발걸음에 긴장이 묻어났다. 어쩐지 괜한 걱정이 들었다.
‘자기네 음식은 잘못된 게 없다고 발뺌하면 어쩌지? 우리를 진상 손님이라고 하면 어떡하지?’
엄마 성격상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해프닝은 일어날 일이 없겠지만, 할 말 잘 못하는 나에게 ‘따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섭고 겁나는 상황이었다.
어느새 가게 앞. 조마조마한 마음을 달래며 들어갔다. 종업원이 손님을 맞이하러 나왔다.
“저, 매니저나 사장님 계시면 불러주시겠어요?”
예사 손님이 아님을 단박에 알아차린 종업원이 허둥대며 주방 쪽으로 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는 한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일본식 다다미방을 어설프게 따라한 공간에 자리 잡은 뒤 엄마는 나에게 차분히 말했다.
“잘 봐둬.”
엄마의 한 마디가 가슴에 콕 박혔다. 잘 봐두라는 말, 어미새가 아기새에게 날갯짓을 가르쳐 줄 때 할 법한 말이었다. 결혼하고 애도 있는 다 큰 딸인데 엄마는 여전히 알려줄 것이 남았나 보다.
곧 사장이 부쩍 긴장한 기색으로 들어왔고 엄마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저희가 ○월 ○일 날 매장에서 저녁식사를 했는데요, 그날 새벽부터 극심한 복통으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병원에도 다녀왔고요. 경중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저희 일행 모두가 비슷한 증상이었습니다. 게다가 멀리 캐나다에서 여행 오신 분도 계셔서 무척 곤란한 상황이네요.”
“불편을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직원에게 확인해 보니 그날 나간 광어가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멀리서 오신 손님께도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치료비를 청구하시면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더불어 저희 가게 식사권을 드리고자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불필요하게 올라가는 톤 하나 없이 침착하고도 단단한 목소리로 내용을 전달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카리스마가 넘쳐흘렀다. 가만히 듣던 사장의 빠르게 수긍하고 사과하는 태도 역시 인상적이었다. 흔히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암환자’ 임을 어필해서 더 보상을 받으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절대로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건 지병을 굳이 드러내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을 엄마의 자존심이었다.
클레임은 깔끔하게 마무리가 됐다. 아기새로서 배울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잘 봐두라는 세 단어가 머릿속에 자꾸 맴돌았다. 내 딸도 나 못지않게 싫은 소리 못하는 겁 많은 아이이다. 엄마인 내 역할이 참 중요할 텐데 과연 나는 내 엄마처럼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틈틈이 내가 능숙하게 잘하는 것들을 보여주려고 한다. 젓가락으로 휙휙 계란물 풀어내는 거라던가, 꾸준히 밖에 나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던가 하는 자잘한 것들이긴 하지만. 저 멀리서 할미새가 되어 우리 모습을 보면서 ‘잘하고 있군!’하며 웃고 계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