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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Oct 16. 2020

서울 특별시




스물한 살 때부터인가, 자취를 시작했다.


햇수로만 따지면 9년의 시간을 나만의 공간에서 보낸 셈이다. 그러나 어떤 공간도 법적으로 나의 소유 아래에 있던 적은 없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나는 항구 없는 배와 같은 삶을 살아왔다.


필요를 느끼기 전에 행동해야 할 이유를 깨닫는 것은 무척 어렵다. 어른들이 어른이 되어서야 공부공부 하는 것도 공부가 가져다 줄 사회적 이익이 인생의 저만치 먼 쪽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부동산이 그랬고, 또 주식이 그랬던 것 같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재학중이었던 나는 취할 수 있던 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무려 4시간, 그리고 두 번의 환승이 필요했던 통학보다는 기존에 하던 과외 알바에 하나를 더 구해 월세로 지불하며 살기로, 그렇게 결정했다. 다달이 몇 십만원을 부으며 살면서도 나는 하루 빨리 ‘내 집’을 구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사고를 확장하지 못했다. 인생을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스물 한 살부터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






당시 대부분의 동기들도 작게는 4평에서 크게는 10평 남짓한 공간에 각자의 생활을 밀어넣고 살았다. 내게 당시 거주의 공간이 갖던 의미는 삶의 다른 요소를 위한 부가적인 수단 정도에 불과했다. 학교에 출석하고 사회 생활을 하고 또 돈을 벌기 위해서 잠에 들 공간과 씻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복지나 대출 요건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부모님으로부터 전세금을 얻을 형편도 못되었던 나는 그렇게 매 달 월세를 내며 살았다. 집이 도구에 불과했던 당시의 삶은 그래도 그럭저럭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것도 책임질 필요가 없었던 20대 초반의 자유로웠던 대학 생활은 내게 인생에서 돈과 시간을 행복하게 소비할 수 있는 방법 정도만 넌지시 일러주었다.


거기서 거기인 듯한 건물들 사이로 유독 개성있어 보이는 한 인물이 지나가 황급히 찍었다. 장소는 프라하.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게 된 직장에서, 집이 갖는 의미는 사뭇 달랐다. 사뭇이라는 말은 조금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집은 모든 이의 월급과 연봉을 이끄는 모멘텀이자 동시에 블랙홀이었으며, 자서전으로 따지자면 마지막 챕터였고, 야구로 따지자면 구원 투수였다.


주변 사람이 황급히 뛰기 시작하면, 누구나 같이 뛰는 척이라도 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대체 어디까지 달려야하는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옆에서 뛰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 마라톤은 무려 20년 내지는 30년 짜리라고 했다. 나는 아연실색하며 제 자리에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왜 꼭 다른 곳이 아닌 서울이어야 하는가?


겨우 둘 정도 누울 수 있는 크기의 매트리스에 누워 나는 내 자취방에서 친구와 의미도 없는 토론을 밤새 나눴다. 치킨을 시키고 밤새 축구 중계를 즐기는 것 정도가 주말의 일상이었던 청춘의 우리는, 어른들의 서울에 대한 집착에 대해 이렇다 할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답을 내릴 수 없으면서도 스스로에게 답답했던 것은, 우리도 대학 생활 이후에 계속해서 서울에 살기를 내심 희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고민 끝에 가장 먼저 한강이 떠올랐으나, 이 곳은 비단 서울에 살지 않더라도 맘만 먹으면 운전을 해서라도 언제든 올 수 있는 곳이었다. 두 번째로 세상 둘도 없는 서울의 맛집들도 떠올랐으나, 어느 지역을 가도 소문난 식당은 있기 마련이었다. 마지막으로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는 고향 친구들과 대학 동기들이 떠올랐지만, 바쁜 직장 생활은 끽해야 일 년에 세네 번 정도 밖에 만나지 않는 사이를 절친한 사이의 표준으로 만들었다. 친구들이 어디에 사는지에 상관 없이, 서로 간의 잦은 왕래는 어차피 어려운 일이었다.


심지어 나의 직장은 경기도 쪽에 위치해 있었으니, 당최 이 논의의 방향은 처음부터 납득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는 답을 미리 정해놓고 어떻게든 문제를 억지로 끼워 맞춰보고자 하는 차라리 눈물겨운 일방향의 노력이었다.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는 본래 소금 광산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만화에나 나올 법한 마을 분위기가 일품이다.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집을 사는 행위가 갖는 의미는 해당 지역의 문화적 위계를 구입하는 것에 가까운 것처럼 보였다. 집의 구조보다는 그 집이 제공할 수 있는 삶의 질에 더욱 큰 의미가 있었다. 역세권의 삶, 명문 학원과 학군, 인근의 강과 호수에 대한 접근성 등은 집과 함께 자연스럽게 딸려오는 것들이었다.


이는 천 내지는 개울 하나를 두고 엄청난 시세 차이를 보이는 아파트 끼리의 경쟁과, 심지어 같은 아파트 내에서도 동에 따라 이루어지는 가격적 차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저 아파트에 사는 친구랑은 놀지 마라.’라는 천박한 말을 무척이나 잘 설명해줬다. 너무 알맞게 설명해주었기에 어린 마음에는 이것이 더욱 역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일명 ‘중산층’에 속하는 어른들이 집을 구하던 방식도 나에겐 조금 충격적이었다. 청약에 당첨되면 자신의 돈 조금과 은행 대출을 통해 집 가격의 50-60% 정도의 돈을 마련한다. 영혼을 갈아 넣은 대출을 낀다고해도 거진 절반에 가까운 돈이 부족한데, 청약을 넣고 계속 계약을 진행시킨다는 점이 당시 내겐 무척이나 생소한 개념이었다.


이후 부족한 금액을 메꾸기 위해 자신이 청약받은 집에 발도 들여놓지 않은 상태로 세입자를 받아 전세를 준다. 이후 전세를 주고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위의 과정을 다시 반복한다. 이사 시기만 잘 맞추면 이론적으로 3-4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것도 가능하다고, 오랜만에 만난 대학교 선배는 허름한 양꼬치 집에서 한껏 격양된 소리로 역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사의 시기를 잘 맞춘다는 다소 모호한 말은, 전세를 살던 세입자가 방을 빼는 시기에 다른 전세 세입자가 반드시 들어와야만 하는 우연적이고 폭력적인 가정을 필요로 했다.


만에 하나 주인이 전세금을 당장에 돌려주지 못한다고 해도, 그 오랜 시간을 법정에서 공방하며 강제적인 방법을 취할 수 있는 세입자는 많지 않다. 그럴 여유가 있는 이들은 애당초 ‘세입’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방을 빼지도 못하고 누군가를 고소하지도 못한 채 오히려 본인들이 나서서 부동산에 전세집을 홍보하고 있다고, 뉴스에서는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선배의 집에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을 확률을 20% 정도로 양보한다고 해도, 아마 그 선배는 20%센트의 확률로 죽는 수술이 있었다면 결코 받지 않았을 것이었다. 선배는 그런 수술을 세입자들에게 강제로 시킬 생각이었다. 대학교 시사 토론 시간에 대기업의 순환 출자 방식에 대해 이를 바득바득 갈며 규탄하던 선배의 모습이 떠올라 나는 다시 역해졌다.



선배는 결국 3억 짜리 집을 분양 받아 총 6억 정도를 대출하고, 1억짜리 보증금의 월세집에 살았다.




모든 것이 거래될 수 있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특정한 거래 물품에 대해서만 이렇게 눈을 흘기는 것이 분명 비겁하고 치졸한 행동은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체 나의 위화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었을까.


‘집’이 이제는 ‘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물을 통에 담아 팔기 시작했을 때부터, 물은 자연의 것으로서, 혹은 으레 약수터에서 흐르는 당연한 것으로서의 의미를 갖기는 어려워졌다.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살을 부대끼는 품목일수록  그 모양새를 더욱 일그러진 형태로 그려나갔다.


과거라고 부동산 거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던 집이라는 것의 의미는 근래 들어 정말 많이 바뀐 것 같았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고, 그렇다고 내가 정의인 것도 아니니, 나도 늦기 전에 으레 어떻게든 이를 이해해보려 아등바등 애를 써야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왜 꼭 서울이어야 하는가?


어쩌면 심연에선 나도 이들과 동일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의식은 어떻게든 그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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