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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스테이트 살인사건'

'심심할 때 가볍게 읽기 좋은 책'

by 한나Kim

가벼운 책을 읽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흥미 위주로 쓰여있는 소설책 말이다. 머리를 쓸 필요도 없고, 진지하지도 않고, 그냥 글자를 읽는 족족 머릿속에 바로 들어오는 편안한 이야기. 이왕이면 심장이 약간은 쫄깃해지는 책이면 좋겠다 싶어서 '레인보우 스테이트 살인사건'이라는 보라색 표지의 책을 골랐다


일단 살인사건이라고 하니 추리소설이겠지 싶어서 좋았고, 보라색에 노란색 포인트가 있는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작가 소개' 부분이었다.


<윤민채 작가>

대학 졸업 후 기대와 달리

10년 넘게 직장생활 중인 평범한 사람.

제도권 교육을 충실히 해낸 것 외에는

무언가 끝까지 해 본 적이 없었지만,

글 좀 쓴다는 소리를 듣고

책을 내자 결심한 뜬금없는 사람.

이 소설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짧은 시간이나마 재미와 감동을 드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야망 없는 사람

작가라는 호칭에 설레어

며칠 밤을 잠 못 이뤘던 이상한 사람.


그 어느 소설보다 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온 작가 소개였다. 뜬금없고, 야망이 없는 이상한 작가라니. 이보다 더 훌륭할 수 있을까. 이렇게 유니크한 사람이 쓴 책이니 일단 재미는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냉큼 빌려왔다.


.....


이 책에는 주인공이자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장세인', 그의 하와이 추억 속에 남아있는 '사와다 카즈미', 카즈미를 찾고 있는 경찰, 마지막으로 이 책의 처음과 끝을 있게 하는 '제이미 샌즈'가 나온다. 책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술술 읽힌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세인'에게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혹시 '사와다 카즈미'가 어디 있는지 아냐는 경찰의 전화였다. 경찰은 그녀가 실종이 되었다는 말도 전해준다. 카즈미는, 7년 전 세인이 하와이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할 때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여학생이었다. 그녀를 좋아했지만,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기에 그냥 가끔 만나는 사이였다.

자연이 살아 숨 쉬는 하와이의 배경에서 '세인'과 '카즈미'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장면을 읽을 때면 이 책에 과연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는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P79

드디어 하나우마 베이에 들어섰다. 절벽이 감싸고 있어서 그런지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해변과 바다가 아이맥스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평일이라 사람도 적어서 오직 둘만을 위한 개인 해변인 듯했다. 세인은 자연이 주는 감동과 카즈미와 함께 있다는 설렘의 감정이 뒤섞여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식당 사장님이 왜 여기를 꼭 가 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은 해변 중앙에 비치 타월을 깔고 짐을 내려놓은 뒤 그 위에 앉았다. 생각보다 햇빛이 강하지 않아 주변의 풍경이 눈에 더 선명하게 들어왔다. 세인과 카즈미는 이곳에 도착한 뒤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눈빛과 표정으로 충분히 교감하고 있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P98

이제는 어느 정도 친한 친구 사이 정도는 되어 안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세인의 몸은 굳어버렸고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세인은 겨우 손을 들어 조용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카즈미는 웃으며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세인은 홀린 듯 따라 나갔다.

카즈미는 열람실 문 앞에서 뒷짐을 진 채 세인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결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세인, 우리 오늘 노스쇼어에 가자!"

세인은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 카즈미는 분명히 노스쇼어에 가자고 말했다.

"그래. 그래. 언제 출발할까?"

"지금 바로!"



이렇게나 풋풋한 둘의 관계에 키도 크고 매우 잘생긴 한국계 혼혈인 '제이미 샌즈'가 나타난다. 제이미는 카즈미의 남자친구다. 빛나는 외모로 원하는 여자는 누구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카즈미를 사랑하기보다는 그저 재미있는 장난감 정도로 여기며 원하는 바를 성취할 뿐이다.

제이미가 나타나면서 책의 분위기가 기괴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순수했던 세인은, 카즈미를 악마로부터 구하기 위해 그의 집에 침입을 하게 된다.



P129-130

"그럼 형, 제가 우리 금방 친해질 수 있게 재밌는 거 보여 드릴까요?"

제이미는 다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세인은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기는 했다.

"짜잔!! 이거 보세요."

제이미의 핸드폰에서 동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세인은 갑자기 몸을 앞으로 숙여 핸드폰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동영상에는 속옷도 입지 않은 여성이 이런저런 야릇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 핸드폰 속의 여자는 카즈미였다.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누가 봐도 카즈미였다. 믿기지 않았다.


.....


이 책은 집중해서 읽으면 2~3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만큼 몰입감이 좋은 편이다. 심장이 쿵쾅거릴 만큼의 스릴은 아니지만, 그래도 쫄깃하게 읽히는 맛이 있다. 뜬금없이 나타나서 세인을 납치한 이방인의 개연성이 조금 약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개가 잘 어우러지는 편이다.


이런저런 잡념 없이 책에 몰입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한번쯤은 읽어보길 권한다. 읽는 순간만큼은 모든 번뇌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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