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다. 지난 주말 친정엄마가 김치를 담그신 덕분에 생김치를 맛있게 먹는 중이다. 사실 신김치를 좋아하는 나는 적당히 익은 것보다는 새콤히 푹 익은 김치를 좋아한다. 물론 생김치가 맛있는 날도 있다. 바로 김장한 날과 그다음 날. 생김치는 나에게는 딱 이틀 간만 맛이 좋게 느껴진다.
김치가 위대한 음식인 이유는 숙성을 거쳐 나오는 김치 유산균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며칠간 실온에서 발효하면 유산균이 그득한 새곰새곰 익은 김치로 변신한다. 더 오랜 시간 숙성되면 묵은지가 되어 뚝배기 안에서 고기를 제치고 단연 주인공으로 열연을 펼치기도 한다. 숙성기간이 적당한 묵은지는 일품이지만 반면 너무 오래된 묵은지는 군내가 나기 때문에 오히려 먹기 번거롭고 맛도 떨어진다.
김장한 생김치를 사흘간 먹다 보니 이내 김치는 맛이 미쳐가고 있다(어설프게 덜 익은 김치를 울 엄마는 미쳤다고 표현하신다.) 미친 김치는 입맛에 영 맞지 않는다. 이럴 땐 재빨리 김치를 꺼내 실온에 두고 새콤하게 익힌다. 숙성시키는 것이다. 하루 이틀 싱크대 상판 위에 놓인 김치를 보고 있자니 어째 내가 쓰는 글과 김치가 좀 닮아 보였다.
몰입하여 갓 써낸 글은 바로 읽어보면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 심지어 잘 써보이기까지 한 날도 있다.(물론 매우 드물다 이건) 김장날 갓 버무린 생김치처럼 싱싱함이 있고 입맛에도 맞다. 글 쓸 때 유념해야 하는 점과 잘 쓰기 위한 스킬은 많겠지만 내가 유일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숙성'이다. 브런치에 글을 끄적여 한 편의 글을 쓴 당일에는 글을 절대 발행하지 말자는 게 나만의 규칙이다.
뭔가에 꽂혀 혹은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지새는 달이 보일 때까지 글을 써서 올린 적이 있는가? 내 감정에 취해 글을 썼기에 자기 만족도는 100% 아니 200% 가득이지만 다음 날 열어보면 '읭?'을 외치게 하는 문장들과 유치 뽕짝인 내용에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녹아내릴 지경의 순간들을 마주해 보았는가? 난 자주 많이 해보았다. 굳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싸이월드 일기에서부터랄까.
어떤 날은 오전에 글을 쓰고 나름 만족스럽다. 그래서 맘 편히 점심 식사를 하고 배를 채운뒤 글 마무리를 하려고 다시 열어 보면 악 소릴 지르며 얼굴이 일그러진다. 글의 개연성은 차치하더라도 '도대체 뭘 말하려는 건데?'하며 나의 내면과 깊게 소통해야하는 벌칙이 주어지기도 한다.
나름 글쓰기 시행착오를 거치며(아마도 평생해야겠죠)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우선 다 쓴 글은 퇴고를 해야 한다. 오탈자 점검과 단어 혹은 문장의 중첩을 스스로 검수한다. 문맥이 매끄럽게 이어지는지 확인하고, 문단 위치를 옮겨보기도 한다. 누가 보면 글을 되게 잘 쓰는 사람인 줄 오해할 것 같으니 퇴고에 관해서는 적당히 나불거려야 할 것 같다. 그다음이 나에겐 중요한 작업이다. 글을 저장하고 '숙성' 과정을 거친다.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2~3일 정도이다. 퇴고보다 쉽다. 그저 며칠 후 열어보기만 하면 그만이다. 김치를 실온에 내놓고 적당히 익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3일 후의 나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득음하듯 깊은 깨달음이 마음에 와닿는 것도 아니다. 글을 보는 눈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물론 아니다. 한데 글을 다시 열어보면 여기저기 구멍들이 숭숭 뚫려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한 마법에 걸린 듯 때론 내가 글을 검수하고 수정하는 능력치가 올라간 줄 착각에 빠지기까지 한다.
그래서인가 언젠가부터 손 편지 쓸 때에도 초안을 작성하는 버릇이 생겼다. 초안을 핸드폰에 작성하고 약간의 시간을 두어 숙성을 시킨다. 최종 수정을 거친 뒤 손으로 옮긴다. 이 정도면 파워 J여야 하는데 나는 매번 즉흥적인 P라고 나오는 건 왜인지. MBTI를 점점 안 믿게 되는 요즘이다. 글쓰기에서는 자꾸만 J가 되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다고 묵은지처럼 너무 오래 숙성하면 안 된다. 내용의 시의 적절함을 따져야 할 때도 있고,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흐르면 글 쓴 주체가 희미해질 때가 있다. 내가 쓴 기억은 나지만 왠지 타인의 글 같은 낯섦이 느껴진다. 이렇게 되면 글 공개를 아예 하지 않는 순간도 찾아온다. 알맞게 익은 김치가 나에게 만족스럽듯 글도 적당한 숙성을 거쳐야만 내 입맛에 맞는 듯하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대문호 헤밍웨이도 이런 말을 했단다. <노인과 바다>를 200번이나 퇴고를 했다는 그는 짧은 숙성의 글을 얼마나 오랜 기간 반복해서 꺼내어봤을지. 물론 명작을 초라한 내 글과 비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초고는 말 그대로 초고일 뿐 완성작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모든 처음 쓴 글은 쓰레기라고 말했다는 사실에 왠지 납득이 가 고개를 끄덕여본다. '그래,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은 퇴고를 해야 하고 숙성을 시켜야 제맛이지.' 하지만 이건 김치와는 다른 점인게 분명하다. 김치는 금방 무쳐낸 생김치도 맛있으니까! 결코 쓰레기가 아니다.
미치기 직전의 엄마 김치가 실온에서 어느덧 맛있게 익었는지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왔다. 오늘 저녁은 내 입맛에 맞는 잘 익은 숙성김치를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김에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서 잘 익은 글 하나 꺼내 마지막 수정을 한 뒤 발행을 눌러본다. 부디 맛있는 글이 되어 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