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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썬 Oct 08. 2024

인도, 도시 이동의 날(슬리핑기차)

아그라->바라나시

아그라에서 바라나시는 슬리핑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우리는 이미 아그라에서 에어컨 없는 인도를 겪고 학을 뗐기 때문에 무조건 에어컨이 있는 객실을 예약하기로 했다. (인도, 아그라 1편)


그런데 큰 변수가 있었다.

아그라에 도착하자마자 바라나시행 기차표를 예매하려 했더니 이미 일반 표는 매진이니 다음날 '따깔표'를 구매하러 오라고 하였다.

따깔표가 뭔가 하니, 누군가 구매했다가 전날 취소된 표를 구매하는 건데 일반 표보다 금액이 비싸지는데도 불구하고 티켓을 못 구한 사람들이 몰려서 경쟁이 세다.

특히, 아그라 역은 뉴델리 역처럼 외국인 전용 창구가 없어서 현지인들과 경쟁을 해야 했는데 도저히 현지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아 티켓을 구할 수가 없었다.


아그라에 더 오래 있을 생각이 없고 버틴다고 해서 현지인들과의 경쟁을 이겨서 기차 티켓을 예약할 수 있는 것도 아닐 듯해서 결국, 현지 여행사를 찾아 티켓 구매대행 수수료를 내고 기차표를 예약했다.


에어컨이 있는 객실 말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슬리핑 기차에서 우리는 3AC 객실의 통로 쪽 2개 자리를 배정받았다.

3AC는 한 면에 3개의 침대가 마주 보고 있고, 통로에 2개의 침대까지 해서 한 구역당 8개의 침대가 있는 객실인데 에어컨이 있는 객실 중 제일 저렴하다.

작년에 방영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2편-인도 편"에서 기안84와 덱스가 탔던 기차와 같은 구조인데 에어컨이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겨우겨우 구한 기차를 타기 위해서 도착한 아그라 역,

인도의 기차 연착은 이미 악명이 높기 때문에 우리 기차도 늦어질 걸 각오하고, 기차역의 그나마 좀 깨끗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뉴델리 역에선 거의 기다리지 않고 기차를 타서 보지 못한 인도 기차역의 진짜 모습을 아그라 역에서 볼 수 있었다.

기차 플랫폼에 돗자리를 깔고 가족 단위로 앉거나 누워서 기차를 기다리는 정도나, 도착한 기차를 타기 위해서 거의 매달리듯이 타는 모습은 애교였다.

아이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할 때마다 플랫폼 끝에 서서 기차가 들어오는 기찻길 방향으로 아이에게 소변을 누게 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고, 들어오는 기차의 플랫폼이 바뀐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마자 분명 플랫폼을 건너가는 계단이 한쪽에 있었음에도 대부분의 현지인들이 기찻길을 직접 가로질러서 플랫폼을 이동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신기한 모습을 구경하면서 기다린 우리 기차는 다행히 2시간 밖에 연착되지 않았다.


기차에 탑승해서 우리 좌석을 찾아가니니 웬 아저씨가 당당하게 우리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남편이 티켓을 보여주며 우리 자리라고 하는데도, 티켓을 자기한테 달라고, 본인이 자리를 확인해 주겠다며 자리에서 버티고 일어나지 않았다.


"네가 직원도 아닌데 왜 우리 티켓을 너한테 줘야 하냐, 여기 좌석번호랑 우리 티켓 번호랑 똑같은 거 보이지 않냐? 여기 우리 자리 맞고, 우리 지금 짐도 많고 힘드니까 넌 다른 자리를 찾아라" 

남편이 단호하게 말하자 그제야 자리를 옮겼다.



드디어 찾은 우리 자리에 짐을 내려놓고, 남편은 1층, 난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번 방콕 슬리핑 기차(국, 도시 이동의 날(슬리핑기차) 편)처럼 커튼으로 개인 공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 데다 우리가 통로 쪽에 있는 침대다 보니 내가 여자인 게 보이면 자는 동안 또 성추행을 당할까 걱정이 돼서 가지고 있던 스카프와 옷 등으로 얼굴까지 꽁꽁 가리고 누웠다.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되어가면서 신경 쓰이는 게 많아서인지 평소 머리만 대면 바로 자는 내가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피곤한 상태로 겨우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인도에 와서 계속 유쾌한 기억보단 불쾌한 기억이 쌓이면서 우리한테는 점점 불호가 되어 가고 있던 인도 여행에 "아그라 맥도널드 인도 거지 사건(인도, 아그라 2편)"을 겪으면서 우리는 인도 여행의 지속 여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바라나시로 이동하는 기차에서 바라나시가 좋아지면 인도 여행을 더 길게 이어가고, 여전히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다른 나라로 떠나는 걸 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바라나시에 도착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우리는 큰 고민 없이 인도 여행의 지속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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