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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수줍은 고백

우리 계속 만날 수 있어요?

by 우스갯소리

그와 두 번째로 만나기로 한 날은 첫만남으로부터 4일 후였다. 그 4일이 40일처럼 길게 느껴졌다. 약속 당일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평소에 잘 들여다 보지도 않던 거울을 시간 단위로 들여다 봤다. 약속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내 마음도 풍선처럼 부푸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없이 부풀어서 빵 터져버리는건 아닌가 걱정스러울 무렵 들려온 비보 중의 비보.

동학년 선생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와의 만남을 미뤄야 하는건 아쉬웠지만, 가족을 잃은 크나큰 슬픔을 맞게된 동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조문을 하는 것 뿐이었다. 그에게는 문자로 간략하게 못 만나게 된 사정을 알렸고, 그는 먼 길 조심히 잘 다녀오라며 시간을 다시 맞춰보자고 했다.


그로부터 3일 후, 보건소에서 그를 만났다. 수많은 장소 중 보건소에서 만나게 된 까닭은 내가 직장 제출용으로 흉부X선 촬영을 해야 했고, 그가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를 데리러 왔기에 그곳이 접선 장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가운 하나 걸친 채 흉부X선 촬영을 하면서, 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를 떠올리니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치 나의 보호자인듯 앉아있는 그의 존재를 더 의식하게 되었달까. 뭔들 의식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흉부X선 촬영을 마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연인들이 자주 출몰하는 데이트 장소로 이동했다. 저녁 먹고 성곽길 걷기는 설렘을 느끼는 두 사람에게 더없이 좋은 코스였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 성곽길에서 꽃을 전해 주면서 나에게 계속 만나보자고 하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다만 약간의 변수가 작용해 우리가 걸은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우산을 써야할 지경에 이르자 그는 다소 당황한 모습으로 '왜 비가 오지?'를 되뇌이게 되었을 뿐이다. 결국 그는 꽃을 전달할 타이밍을 놓친 채 차로 향했고, 그대로 나를 집에 데려다 주려고 했다.


그의 마음을 알 길이 없는 나는 비가 오니 실내에서 노는게 좋겠다며 방탈출 카페에 가자고 제안했다. 역시나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계획이 틀어지면 다른 생각을 못하는 그로서는 내 제안이 동앗줄처럼 반가웠다고 한다. 우리는 방탈출 카페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한층 더 가까워졌다. 마침 테마가 미스테리라서 으스스한 분위기도 두 남녀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 한몫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다음 만남을 기약해야 할텐데 그는 방탈출 정말 재미있었다는 짧은 감상을 덧붙이고는 내내 조용하기만 했다. 그 정적을 깨느라 내가 '나는 감자 요리를 좋아한다'는 둥 별의별 TMI만 쏟아내는 동안 자동차 바퀴는 성실하게 굴러 나의 집 앞에 당도했다. 내가 먼저 다음에 또 만나자고 해도 됐지만 오는 동안 내내 조용하기만 했던 그의 의중을 모르니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들리지 않는 한숨을 내쉬며 내리려는 채비를 하는데, 그가 재빨리 말을 꺼낸다. 누가 봐도 떨고 있는게 분명한 모습으로.

"우리 계속 만날 수 있어요?"


그 말 뜻이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식으로 만나보자는 고백임을 알아차린 순간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세상 수줍게 대답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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