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가드너 Jan 27. 2024

더 많이 사랑 해주지 못해 미안해

건강이는 우리와 함께 10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강아지 이름이다. 


하필이면 그날은 '줌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건강이 몸 상태가 안 좋아 결석하고 싶었지만, 맡은 역할이 있어 쉴 수가 없었다. 집중이 안 돼 겨우 진행하고 있는데, 건강이를 보기 위해 집에 들른 사위와 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직감했다. 그렇게 사랑둥이였던 건강이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난 2달 동안 우리 가족 누구도 건강이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다. 아픈 마음이 조금 무덤덤해질 때까지 견뎌보는 중이다. 건강이가 쓰던 여러 용품도 그대로 놔뒀다. 아직도 외출했다 들어오면 꼬리 흔들며 반길 것만 같고, 화장실에 소변 패드가 없는 게 낯설다. 추운 겨울이라 뒷마당에 묻은 건강이가 추울까 봐 낙엽으로 덮어줬다.

  



 건강이는 10년 전에 우리 가정에 입양됐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는 둘째 딸에게 생일선물로 주려고 알아보던 중, 벼룩시장에 올라 온 사진을 보자마자 운명처럼 이끌렸다. 차로 1시간이 걸리는 곳에 데리러 갔는데 전주인이 기숙사에 들어가서 더 이상 봐줄 수가 없다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있었다. 


태어난 지 2달 된 말티스... 

너무 작고 어려서 잘 키울 자신은 없었지만, 둘째가 엄마 역할을 하기로 하고, 건강히 지내라고 이름도 '건강'이라고 지었다. 처음이라 모든 게 서툴렀다. 울타리도 사고, 용품들도 하나씩 구입하며 정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 품속이 한참 그리울 때라 아낌없는 사랑을 주면서 우리 가족이 되어 갔다.  


그동안 가족여행도 당연히 건강이와  갈 수 있는 곳으로만 갔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아서 맡길 수도 없고, 장거리 여행은 꿈도 못 꿨지만, 늘 함께였다. 뒷마당에 꽃이 피는 봄과 여름이면, 화단 사이를 뛰어다니는 것을 그렇게나 좋아했다. 한참을 놀고 나면, 햇살을 등에 대고 앉아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늘어지게 자던 표정이란! 그렇게 오랜 시간 딸의 품속에서, 남편의 책상 위에서, 산책하러 가는 다정한 친구로 지냈다.


                

그러다가 몇 달 전부터,

하염없이 창가에 앉아 뒷마당을 쳐다보고 있는 건강이의 뒷모습이 이상하리만큼 슬퍼 보였다. 무슨 일일까? 몸은 작아도 건강해서 예방접종 외에는 병원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최근에 조금 달라진 게 떠올랐다. 절대 실수 하지 않던 배변을 집안 곳곳에 흘리기도 하고, 소변도 패드를 몇 개 해야 할 정도로 많아지긴 했었다. 우린 단순히 '나이 들어 이런가 보다!'라고만 생각했다. 평소에 아픈 곳이 없어 방심했다. 


기운 없는 증상이 며칠째 계속되자, 딸과 힘없어 늘어져 있는 건강이를 안고 그동안 다니던 동물병원을 찾았다. 여러 검사를 해보더니 급성 신장염이라고 했다. 신장 수치가 너무 높아서 치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본다는 의사 말에 듣는 귀를 의심했다. 그토록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왜?


당분간 24시간 내내 가족들이 시간을 나눠서 돌보기로 했다. 음식을 못 먹어 링거와 주사를 정해진 시간에 맞추는데, 약을 먹으면 자주 토했다. 조그마한 몸이 점점 더 말라가는 것을 본다는 게 모두에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동물병원에, 이틀에 한 번씩 가서 영양제를 보충하고 염증 주사를 맞았지만, 별로 효력이 없어 보였다.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  



그렇게 2주 동안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중, 전혀 미동을 하지 않던 건강이가 남편이 있는 책상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시늉을 했다. 표정은 슬펐지만, '건강이가 드디어 걷는구나! 이제 좀 살 만한가 보다!'라며 가족 모두 손뼉을 치고 반겼다. 강아지는 마지막으로 주인에게 감사 표시를 하고 죽는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동안 고마웠던 마음을 온 힘을 다해 말해 주었구나!



건강이가 갑작스럽게 떠나자, 남편은 손수 만든 작은 관에 넣어 우리 집 제일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겨울인데도 날이 화창하고 따뜻해서 더 슬펐다. 그동안 덮었던 이불과, 딸들이 선물한 옷가지, 그리고 내가 만든 꽃을 관속에 같이 넣었다. 온 가족이 빙 둘러서 기도를 한 후 건강이는 흙으로 돌아갔다. 



건강이를 보내고 나서야,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충성스러웠는지를 새삼 느꼈다.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을 때도 우리를 보면 꼬리를 흔들어줬음을.... 매일 산책이 고통스러웠음에도 군말 않고 따라다녔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오랜 시간 함께 할 줄만 알고 아무 데나 오줌을 흘린다고 혼내고, 낯가림한다고 잔소리했던 많은 시간이 미안하고, 아쉬움만 남는다. 당연히 맡아져야 할 건강이의 냄새, 그 장난기 가득했던 얼굴 모두 그립고 보고 싶다.  


건강아!

날씨 따뜻해지면, 무덤 앞에 건강이 닮은 꽃밭 만들어, 너를 영원히 기억할게. 더 많이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해. 아픔 없는 곳에서 이름처럼 씩씩하고 건강해! 





더 사랑하지 못하고, 더 안아 주지 못했던 서툰 인생! 

다시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건강이에게, 그리고 이별의 아픔을 가진 분들께 바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