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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가드너 May 04. 2024

링컨 센터에서 색다른 풍경을 만났다


얼마 전,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인 힐러리 한(Hilary Hahn)과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다녀왔습니다. 매일 정원에서 풀 뽑고, 컴퓨터 앞에서 자판만 두드리는 엄마가 답답해 보였는지, 딸이 기분 전환하자며 음악회 티켓을 선물했거든요. 우린 오후 8시 음악회에 맞춰 1시간 전에 링컨센터의 David Geffen Hall에 도착했습니다. 로비는 '이렇게 음악 애호가가 많았나?' 할 정도로 설레고 밝은 표정의 사람들로 북적거리더군요. 기프트샵과 링컨센터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연주회 시작 전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접해보는, 낯선 경험을 했습니다. 


 분수대를 중심으로 오페라, 발레, 콘서트홀이 있는 링컨센터 



풍경 1 

1층 로비에 위치한 화장실 표지판에 남. 여가 아닌 ‘모두의 화장실 (All Gender Restroom)’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공용 화장실이 있단 말은 들었지만, 실제 눈앞에서 보니 당황스러웠어요. 별수 없이 남.여가 함께 긴 줄을 서서 들어가니, 구조는 기존의 여자 화장실과 똑같았습니다. 손을 씻고 말리려는데, 기계가 작동하지 않아 두리번거리자, 멋진 옷을 입은 중년의 신사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더라고요. 감사한데, 상황이 민망했어요.          


종교계와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가 핫한 이슈로 떠오르고, 의견은 분분하지만, 대부분의 이용객은 거북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공연장의 경우, 화장실을 사용하는 시간이 연주회 전후로 집중되어, 여성들의 화장실줄이 길어져서 배려한 점도 있다고는 해요. 그럼에도 처음 겪는 익숙지 않은 상황에, 불편한 경험을 하고, 음악회장으로 들어갔습니다.        


화장실 표지판



풍경 2 

우리가 앉은자리는 무대가 잘 보이는 앞쪽 중앙에 위치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요. 100명 정도 되는 단원 중 한국 사람과 동양계로 보이는 분들이 1/3 정도는 된 거 같아요. 연주복도 소박하고, 예술가 특유의 예민한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언제 어디서나 마주치는 친근한 이웃 같고, 연령도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듯한 젊은이부터, 나이 지긋한 분들까지 다양했습니다. 


연주가 시작되자, 음악에 빠져든 그들의 표정에서 바로 '몰입의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 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바이올린, 첼로, 오보에등.... 각자 파트로 연주하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며 곡을 완성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울컥하더라고요. 예전에 오랫동안 합창단과 바이올린 반주를 하며 서로 교감했던 감정이 떠오르며, 현재의 제 모습이 오버랩되었나 봐요. 2시간의 연주가 10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음악과 하나가 된 경험을 하고 연주회장을 빠져나왔습니다.


힐러리 한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풍경 3

음악회가 밤 10시 넘어 끝나 사위가 데리러 온다고 해서 브로드웨이 길가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근에 주차장이 적당치 않았거든요. 저희 옆에 서있던 멋쟁이 미국인 노부부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아내분은 휠체어에 앉아 있고, 코에는 가느다란 호스가, 무릎 위에는 맞고 있는 링거가 놓여 있더라고요. 머리매무새며, 옷차림, 옆얼굴도 여느 영화배우 못지않게 아름다운 분이어서 자꾸 시선이 갔어요. 여성분은 줄곧 꼿꼿하고, 기죽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었어요. 입장을 바꿔 저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는 음악회에 갈 생각을 안 했을 거 같은데 말이에요.  


더욱 놀라웠던 점은 멋쟁이 노신사인 남편분의 태도였는데요. 기다리는 차가 오는 동안, 쉴 새 없이 아내분에게 만면에 웃음을 띠고 대화하는 모습이었어요. 근데 과장이 아니고, 몸에 밴 듯 자연스럽게 보여 두 분의 신뢰와 사랑이 전해지더라고요. 몸은 불편하지만, 서로를 배려하면서 음악과, 노후의 문화생활을 즐기는 용기와 모습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음악회가 끝난후, 분수대 조명




오랜만에 찾은 음악회에서, 힐러리 한의 신들린 연주를 듣는 것도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종달새가 노래하듯 그녀의 바이올린 소리는 영롱하고 선명했습니다. '얼음공주'란 별명답게 완벽한 테크닉과 소탈하고 겸손한 무대매너에 바로 펜이 되어 버렸고요. 뉴욕 필하모닉 단원들의 열정적인 연주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동시에 불과 3시간 남짓한 문화생활 하는 동안, 만난 색다른 풍경도 특별했습니다. 젠더 이슈도 생각해 보고, 음악이 주는 행복, 그리고 닮고 싶은 노부부의 따뜻한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마치 깜짝선물 받은 거와 같다고나 할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에게 느낀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 앞으로 꽃만 볼 게 아니라, 문화생활을 좀 더 해야겠네!" 하더라고요. 부족한 글이라도 쓰는 훈련을 하니, 일상의 일도 좀 더 살필 수 있나 봅니다.   




음악회를 다녀와서 직접 말린 꽃으로 어버이날 축하 꽃 박스를 만들었는데요. 모든 부모님과 공유합니다. 

['서툰 인생, 응원합니다.' 연재 브런치 북은 만든 소품을 함께 올리고 있습니다.]  


어버이날 꽃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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