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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피 Jul 06. 2020

직장에서 막내가 일 하는 티를 내는 방법 (팀을 위해)

쟤네 팀, 쟤는 도대체 무슨 일 한대니?


주인공은 나야 나



직장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아마 내가 활동하는 공간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주기적으로 모이고 가장 오랜 시간을 쏟아붓는 곳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말. 말. 말이 나오는데, 그럴 때 종종 사람들은 다른 팀이나 사람을 보며 이런 말을 한다.



"저 팀은 무슨 일 해?”

"쟤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해?”



지난 5월, 우리 팀은 기존에 있었던 팀이었지만 사장님이 새로 부임하시면서 사장 직속 부서로 속하게 되었고 명칭도 바뀌었다. 그리고 새로운 인원도 충원됐다. 말로만 듣던 사장 직속 부서라니 내게는 처음 겪는 일이어서 신선했다. 나는 팀에서 막내이기에 부담감이나 책임감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사장 직속 팀이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함은 있었다. 우리 팀은 사장 직속 부서가 되면서 당연하게도 많은 주목을 받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나의 사수로 새롭게 오게 된 나보다 3살 많은 대리는 나에게 "우리 팀 무슨 일 하냐고 사람들이 자꾸 나한테 물어봐."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아, 사람들은 사장 직속 부서라는 이유로 우리 팀에 참 관심이 많구나.', '아, 우리 팀은 내부 직원들을 아직 설득하지 못하고 있는 거구나.' 그래서 나는 말했다. "대리님, 저희는 업무와 프로젝트가 정해져 가는 과정인데요. 뭐"



말은 쉽게 했지만 내가 팀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사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팀이라고 칭하기는 했지만, 나에게도 올 수 있는 의문점이기도 했다. 나는 보통 팀장 - 사수를 거쳐 일이 분배되기 때문에 작은 일을 맡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역으로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 우리 팀,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해봤다.



내가 신입사원일 때 남는 가장 큰 아쉬움 중 하나는 나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있다면 논리와 근거를 펼쳐 윗분들을 설득하거나 친밀도를 높인 관계의 힘으로 풀어낼 수도 있었는데, 단지 1-2번의 거절이라는 이유로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한 것이다. 그 당시에도 나는 우리 팀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이나 내가 프로젝트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들을 상당히 고민하곤 했었는데, 티를 낼 줄 몰랐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고 애정이 있는지,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일을 잘하고 싶은지, 잘할 수 있는지 티를 낼 줄 몰랐다.



그런 시간을 거치고 난 후 지금의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때그때 이야기하고, 몇 번의 거절을 당하더라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고 다짐하고는 했다. 그건 사실 다짐이라기보다 마치 원시인이 사냥을 하듯 자연스럽게 체득한 나만의 생존 방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팀이 겪고 있는 문제를 나만의 방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1. 문제: 우리 팀이 무슨 일 하는 팀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 내부 직원 설득 부족, 포지셔닝 미비

 

2. 도출하고 싶은 결과:  우리 팀이 무슨 일 하는 팀인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말하고 싶다.


3. 해결 방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내가, 우리 팀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무슨 팀인지 티 낸다.






그 방법으로 나는 온라인 스타상품 성공 사례 케이스 스터디 자료 만들기를 선택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우리 팀의 일을 티 내기 위한 내가 나에게 만들어준 프로젝트였다. 조직 개편 후 팀장님과의 면담에서 온라인 자료나 트렌드를 공유하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기에 일을 만들 수 있는 힘은 있었다. 나의 원래 목적은 내가 먼저 공부하고 팀에 공유해서 우리 팀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었지만, 내 마음의 기저에는 우리 팀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우리 팀이 회사에서 이 분야의 전문가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아가 팀과 팀장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온라인 분야였고, 그중에서도 제조사에서 일하는 내가 스타 상품 케이스를 분석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차피 캐치하는 것이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누구나 알기 쉽게 도식화하고 정리하여 자료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얘기였다. 뇌를 많이 써서 중간에 당이 떨어져서 과자를 종종 먹기는 했지만 뇌와 심장이 쿵 작으로 즐거운 일이어서 자료를 만드는 내내 재미있었다.



맨 처음에는 우리 팀 친한 대리님에게 이번에 타사에서 대박 상품 나왔다고, 너무 예쁘고 잘 만들었다고 물꼬를 텄다. 역시 관심 있게 들어주셨고, 괜찮다면 자료로 만들어 팀에 공유하는 건 어떻겠냐는 나의 의견에 당연히 찬성해주셨다. 그다음에는 은근슬쩍 내 사수에게 이런 자료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어차피 별로 관심이 크게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대리는 열심히 만들어보라고 말은 해줬다. "대리님, 저는 이 일이 재미있어요." 이 일을 하는 것은 나에게 부담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돌려했다. 물론 중간에 대리님이 시키는 일도 하면서 틈 나는 시간에 만들었다.



며칠 지나고 나서는 은근슬쩍 또 사수에게 이야기했다. "대리님, 성공 케이스 분석하다 보니까 배울 게 너무 많아요. 저희 팀이 참고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그러자 대리님이 말했다. "그럴까? 그렇게 많아? 그래. 우리만 볼 게 아니라 팀에 공유하면 좋겠다." 그리고 또 며칠 지나서 이야기했다. "대리님, 이거 자꾸 장표가 추가되는데, 좋은 자료가 정말 많아요. 전사적으로 공유하면 저희 팀 방향도 내부에서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 방향이 맞기도 하고요." 대리님이 "그럴까? 그럼 마무리 지으면 말해줘요."



대리님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느낌이 있어야 나와 같이 우리 팀 일 티 내기 프로젝트에 동참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대리님은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캐치해주거나, 여러 가지 자료들을 공통점으로 분류하거나, ppt에 도식화하거나 하는 일들을 잘했다.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대리님, 이거는 제가 해봐도 어려운데, 대리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럼 대리님은 기꺼이 나서서 도와줬다. 원래 착한 분이기도 하고.



그러는 사이에 ppt 자료는 완성됐다. 대리님에게 보고해도 된다고 말했는데, 굳이 대리님이 내가 직접 팀장님께 자료를 뽑아서 보고하라고 말했다. 내가 팀장님께 보고하는 중간에 대리님도 전사적으로 공유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틈틈이 해줬다. 나도 이 자료는 우리 팀의 방향성을 위해 만들었지만, 어차피 트렌드이고 알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련 부서들에게도 공유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팀장님은 관련 부서들, 그리고 사장님까지 참조를 걸어서 공유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온라인 성공 케이스 스터디 자료를 전사적으로 공유했다. 전사 메일도 대리님이나 팀장님이 보내셔도 상관없었는데, 내가 보내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다. 전사적 메일이니 메일 내용은 또 대리님의 글짓기 도움을 청했다. 메일에 내용을 풀어서 이야기하는 건 대리님이 잘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팀의 일로 만들었다.



메일을 전사적으로 공유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님 전화기의 벨이 울렸다. 경영 쪽에 있는 팀장님께서 이렇게 자료 공유하라고, 무슨 일 하는지 티 내는 것이 좋다고, 잘했다고 칭찬해주시는 전화였다.



내 사수는 나를 살짝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나에게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고 했다. 우리 팀의 다른 대리님도 메신저로 나에게 칭찬을 해줬다. 수고했다고. 잘 만들었다고.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바라고 일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살짝 뿌듯하기는 했다. 나의 주목적은 우리 팀이 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우리 팀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우리 팀원들이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내부적으로 기대해 달라는 것이었다. 작은 성공을 만들어 큰 성공의 기반을 만들 테니. 많은 도움 부탁드리고, 같이 으쌰 으쌰 만들어보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팀장님의 어깨에도 힘을 실어드리고 싶었다. 많은 회의에 참석하시지만 내가 대신해서 갈 수는 없으므로. 내가 뿌듯했던 것은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움직였다는 점과 결과적으로 달성했다는 것이며, 기존에 쭈뼛쭈뼛 아이디어나 좋은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던 과거의 나와 비교했을 때 많이 발전했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한 것이, 그런 과정들이 지금의 막내를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팀 막내가 할 수 있는 일, 혹은 신입이, 혹은 사원이 할 수 있는 일은 큰 일은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일 한다면 과정이 쌓여 최종 목적지로 가는데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다.



오늘 하루 푹 잘 수 있겠다. 월요일인데도 브런치에 글도 적었다. 훗.. 내일은 또 나를 위해 열심히 해야지.




덧-

사장님께 칭찬 받았다-!



월요일에 전사적으로 자료를 공유한 후 화요일에 사장님께서 팀장분들, 임원분들이 모인 회의에서 나의 자료를 잘 봤다며 칭찬하셨다고 팀장님께 전해 들었다. 자료 분석도 잘했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하는 직원이 있다니 포상해주고 싶다고 얘기하셨다고 한다 :)




그 후 팀장님께, 팀원들에게, 그리고 연관된 주변 직원들에게 내내 칭찬받았다. 특히 일 잘한다고 소문 나신 분들이 ‘이 녀석 제법인데-?’ 하는 눈으로 칭찬하실 때는 좀 간지럽기도 하고 신기했다.



시간이 지나면 미래의 나는 과거를 두고 별 거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조직에서 사장님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건 내 인생에 의미 있는 일로 남을 것 같다.




내가 더 감사했던 건 이런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전 팀이었다.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도록 다른 팀에 옮긴다고 했을 때 아쉬워도 보내주셨던 분들이었다. 그리고 다시 그곳으로 오라던 실장님의 부름에도 오히려 사장님 직속 부서에 남아 나 하고 싶은 것 하라고 응원해주셨던 전 팀원분들께 감사했다.






전 사수였던 과장님이 칭찬해주셨다 :)






그리고 나의 전 팀장님이 칭찬해주셔서 정말 좋았다 :) 남들보다 뒤처진다고, 잘하는 게 없다고 고민할 때 앞에서 뒤에서, 양 옆에서 조언해주시고 이끌어주시던 분이었다.



일을 잘하는 팀장님이, 나를 누구보다 아껴주셨던 팀장님이 인정해주셔서 너무 좋았다. 그간 있었던 직장 생활의 설움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막내로 받으시고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일 하나를 주더라도 명확한 방향성과 목표를 일러주셨던 팀장님께 꼭 팀장님 밑에서 배웠기 때문이란 말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직장 생활의 연속은 희로애락이지만, 이날만큼은 희희희희였다. 결과에 좌절하는 날이 있더라도 과정에 성실했음을 인정받은 최고의 날이었다. 연속된 경험으로 스스로를 더 아끼며 직장 생활을 하고 싶다.







- 번외 1: 저는 아직도 막내입니다. 제 동기들은 벌써 막내를 받았지만요.



- 번외 2: ppt 잘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 탈잉에서 실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ppt 디자인 vod를 살 뻔했어요. 무려 99,000원인데 통장을 지켜 참 다행입니다.  



-번외 3: 사장님 포상해주고 싶으시다면 기꺼이 포상을 받을 의향이 있습니다. *기념사진 촬영도 가능* 제 계좌번호는 신한 110-333-...






월급 더 얹어주고 싶다고 칭찬한 막내의 화장품 이커머스 케이스 스터디 자료는 아래 글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 보고서로 만들어 회사에 전사 메일 돌렸으나 그 맥락과 내용은 브런치 글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글을 보신 모든 막내, 신입, 사원분들 화이팅입니다!



https://brunch.co.kr/@happying/16

https://brunch.co.kr/@happying/17





직장생활 에세이를 더 보고싶으시다면?

다음 직장 메인에 노출된 “막내 탈출 직장생활 극복기” 인기글 링크 첨부합니다. (제 브런치 글 중 나름 인기글들,,) 막내 관점에서 관찰한 팀장의 유형 및 좋은 팀장, 역할에 관한 글과, 눈물 겨운 월급 루팡 대처법에 대하여 썼습니다 :)


https://brunch.co.kr/@happying/14

https://brunch.co.kr/@happying/15

https://brunch.co.kr/@happying/24

https://brunch.co.kr/@happying/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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