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 와사비
반복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10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동생과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게 되었다. 사업을 하시던 부모님은 1~2주에 한 번씩 주말에나 만날 수 있었다. 너무 그리웠고 만나는 날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2살 어린 남동생도 내가 챙겨야 했다. "엄마가 없을 때는 누나가 엄마야~ 누나 말 잘 들어야 돼!" 동생한테 당부하셨던 엄마의 말이 아직도 선명하다. 엄마의 부재 시 그 역할은 10살인 내 몫이 되었다.
나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였는데......
나이 마흔이 넘어서 이제야 처음 살이 찌게 된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불편하고 싫었다. 싫었다기보다는 아렸다. 그동안 잊고 살았구나! 마주하기 싫었던 내 모습이었다.
그 당시 넉넉하게 주신 용돈으로 방과 후 친구들과 분식점이나 편의점으로 출근 도장을 찍으며 점점 더 몸은 커져만 갔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가는 겨울 방학 무렵 키가 10cm 넘게 크고, 급격하게 체중이 늘면서 살도 트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억처럼 튼 살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면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자주 해주지라고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조금만 살이 쪄있거나 부어있으면 실망하던 엄마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나를 쳐다보던 그 표정은 아직도 무섭다.
누가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세요”하면 그 많고 많은 기억 중에 유독 왜 이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지 참.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괜찮다고! 건강하게만 자라렴. 너는 사랑스럽고 예쁘단다라고 말이다. 이제는 엄마가 안 계시니 들을 수도 말해달라고 할 수도 없기에 내가 나를 위로해 본다. 그리움으로 가득 찼던 허기를 먹는 행위로 채우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손에 움켜 쥔 모래알처럼 아직도 그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 듯하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뻥 뚫린 내 허한 마음을 이제는 음식이 아니라 글로 충만하게 채우고 싶다.
혹시 내 아들, 딸도 지금의 나를 창피하거나
부끄러워하면 어쩌지 덜컥 겁이 났다.
그 시절엔 엄마도 뚱뚱했었던 (지금의 나만큼은 아니지만)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딸이고 여자인 나에게 더 그러셨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지 아마도 당신처럼 되지 말라는 우려와 걱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엄마한테는 내색을 안 했지만 같이 다니면 뚱뚱한 엄마가 창피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 살아계신다면 "엄마, 우리 퉁치자."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을 텐데...... 글썽이며 글을 쓰는 내 마음이 쪼금은 말랑말랑 해지는 것 같았다.
코에서 와사비 맛이 났다.
어느 날 내 아이들에게 "엄마는 키도 크고 몸도 큰데 너희는 이렇게 등치 큰 엄마 안창피해?"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망설임도 없이 아들과 딸이 동시에 나를 꼭 안아주며 "엄마, 너무 예뻐" 라며 내 손등에, 볼에 마구마구 뽀뽀를 해주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내 아이들에게서 듣다니 '코에서 와사비 맛이 났다.'
돌아가신 엄마도 외할머니와 그랬을까? 바쁜 일상 속 삶의 무게로 많이 지치고 힘들었을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해보려고 한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 떨어져 살아온 시간을 후회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행여나 죄책감을 갖지 않으셨으면 한다. 이미 지난 일 다 털어버리시면 좋겠다.
나는 아이들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해하는 엄마가 되려고 매일 사랑한다고 자주 표현하며, 뽀뽀도 하고, 꼭 안아주고 있다. 내가 나를 안아주는 마음도 담아서 더 많이 안아줘야지!
차곡차곡 이런 감정들을 쌓아서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내 아이들을 품어주는 다정한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엄마도 그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