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타고난 기질을 존중하며 키운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기질이라는 단어 자체를 몰랐을 때는 그냥 ‘왜 이러나’ 싶었지만,
공부를 하면서부터 각자 타고난 기질이 다름을 알고,
나의 아이도 어떤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 관찰하고 알아가기까지
많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부모교육을 들으면서 나름 깨닫고 알아가는 것들이 많았지만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실천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감정 표현, 다정한 말투, 따뜻한 언어들…
내가 자라며 자연스럽게 익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걸 배우는 건 힘들어도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늘 아이와 산책하거나 친정 가족들을 만날 때면
그것만큼 힘든 일은 없었다.
솔이는 자유롭고 싶어 한다.
활동적이고, 호기심이 많다.
무서움도 많은 반면 호기심도 상당한 아이라
나름 조심성이 생기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솔이가 처음 산책을 시작할 때면
나는 늘 “안돼!”, “위험해!”를 입에 달고 살았다.
물론 아이 아빠나 다른 가족들도 여전히 외치고 있다.
지금은 아이의 주변 사람들이 보인다.
아이에게 어떻게 말하는지, 어떻게 대하는지.
나도 그중 한 사람이지만,
솔직히 나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가족들을 거울처럼 보고 있다.
내가 자란 환경의 언어와 말투를 그대로 쓰고 있는 사람들.
요즘 솔이는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엄마가 잔소리할 때면 정확하게 말한다.
“짜증나.”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잔소리하니까 짜증나는 건 알겠어.
하지만 엄마도 솔이가 요즘 너무 말을 안 들어서 속상해.”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짜증나가 뭐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기 전, 꾹 참았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고,
솔이의 눈을 똑바로 보며 정확하게 말해준다.
요즘 솔이는 하지 않던 때를 쓰기 시작했다.
한 돌이 되자마자 어린이집을 보냈을 때도 울지 않던 아이였는데,
요즘은 어린이집을 안 간다고,
엄마랑 있겠다고 아침부터 대성통곡이다.
잠시 아침의 평화가 깨진 기분이 들지만,
왜 그럴까를 많이 고민했다.
그래서 되도록 아침에 일찍 일어나
등원 전 집 주변을 산책하고 등원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요즘 내가 많이 회복되고 있어서 그런지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도 많아지고,
얼굴의 무표정이나 화난 표정이 줄어든 걸 느꼈다.
아마 솔이도 엄마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더 있고 싶은 게 아닐까.
어제 하원하는 솔이의 손을 내게 넘겨주며
원장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어머님, 요즘 솔이 반 여자아이들이 난리도 아니에요.
요즘 벌써 사춘기랍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아, 그래서 그랬구나.’
반항기 많은 중학생처럼
“아니, 싫어, 안돼”를 무한 반복하던 솔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나는 항상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 한다.
‘내가 문제인가’로 시작하는 나의 문제가
사실 나의 문제가 아닐 때도 있다.
그걸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안도하게 된다.
나는 부족한 엄마다 보니,
항상 ‘내가 뭘 놓쳤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로 시작한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이 말을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다.
“너는 잘하고 있고,
너는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 모든 원인을 너에게서 찾지 말자.”
표현도, 감정도 서툰 엄마라
항상 미안함이 많았던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잘하고 있다.
너처럼 노력하는 엄마도 드물 거야.
오늘은 그렇게
나에게 나 자신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하루를 시작해 본다.
나의 아이, 솔이는
그 나이에 맞게 잘 자라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