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들 그리고 나
“언니의 지나친 긍정이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 모르지?”
오랜만에 만난 사촌동생이 화두처럼 던지는 질문, 나의 긍정이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니?
되든 안되든 뭐가 됐든 일단 시도해 보자. 최선을 다해 들이대 봐도 안될 때 그때 가서 포기를 해도 된다는 생각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까지 나의 긍정과 적극적인 태도는 삶을 대하는 아주 좋은 자세라고 여겼다.
매일 아침 매니저 회의를 통해 전달되는 본부와 지점의 방침에 대해 그저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팀원들에게 전달하고 으쌰으쌰 독려하겠습니다'라는 나의 태도는 다른 매니저들에겐 비호감을 넘어서 지점장의 딸랑이로 치부되었고 조용하게 은따가 되어 가고 있었다.
선배 매니저들은 예전에도 해봤지만 성과가 없었고 무리한 기획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지점장과 티격태격 하지만 나는 언제나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였으니 그녀들의 눈엔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는 하룻강아지 꼴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구설에도 불구하고 내게 급선무는 팀을 만드는 일이었고 나의 모든 에너지는 한쪽으로만 향하고 있었다. 실패의 경험은 팀 구성에 더 조바심을 내게 했고 그 일에 몰두하게 했다. 팀을 구성하는 것도 유지하는 일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 때문에 그 외의 다른 일들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한 팀이 되어 주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했기에 팀원 개개인의 상황과 성향을 파악해야 했고 각자에게 맞는 도움을 연구했다.
그렇게 1년 사이 변함없는 의리의 그녀를 필두로 우리 식구는 7명이 되었다.
손해보험 경력 7년 생명보험 설계사, 매니저 경력 3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의 경험으로 나는 언제나 긍정적 마인드와 진솔함으로 팀원들 대하며 각자의 달란트에 맞게 열정적으로 매니지먼트를 했다.
미혼인 40대 K.
아침잠이 많은 그녀는 매일 모닝콜로 잠을 깨워 줬고 아침을 못 먹고 허겁지겁 달려오는 그녀를 위해 김밥, 빵, 우유등 아침을 준비했다. (그녀의 불규칙한 생활로 건강이 좋지 않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의욕 충만 H.
20대 가장, 그는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최고의 악필이다. 상담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필체도 중요하다. 한글 배움 노트를 사주며 매일 글씨를 연습하게 했고 비효율적인 활동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그에게는 칭찬과 다소 거친 다그침으로 몰아붙일 때도 있다.(훗날 그는 다른 회사로 이직하고 팀장이 되었고 나를 찾아와 나에게서 배운 것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고 감사했다면 술 한 잔 사주며 엄지 척을 해줬다)
성실하지만 마음이 여린 P.
크고 짙은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성실하지만 여렸고 꾸준하지만 여렸고 부지런 하지만 여렸다. 고객에게 주변 지인들에게 듣는 말들로 사흘이 멀다 하고 눈물 바람이다. 그녀를 위해 가끔 바닷가로 산책도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여린 마음을 다독이며 힘을 보태 주었다.(눈물이 마를 날이 없던 그녀는 그래도 2년 가까이 버티다가 결국 원래의 직업인 간호사로 돌아갔다)
O는 한 가정의 아버지다.
가장인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항상 바쁘다. 그는 보험 영업에서 가장 지양하는 활동 방법인 hunter다. 보험 영업은 확률 게임이고 꾸준하게 가망 고객들과의 상담을 통해 매달 업적을 내는 일임에도 그는 오로지 한 고객(자칭 고액의 계약을 하겠다는 가망고객)에게만 집중했다. 때로는 1,2개월씩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지만 처음의 얘기와 달리 가망 고객은 말 그대로 가망 고객으로 남았고 그런 날은 한 동안 출근도 하지 않으며 속을 많이 태웠다.
그에게는 꾸준한 farmer의 활동에 대한 교육을 계속했다. 잔소리처럼...(한 탕만 꿈꾸던 그는 지쳐서 아내가 하는 식당으로 돌아가서 바깥 사장님이 되었다)
입사 10년 베테랑 P선배.
팀장 한 사람이 떠나고 남은 팀원들이 각자 원하는 팀으로 이동하면서 우리 팀으로 온 사람이다. 그녀는 지점 내 모든 설계사들의 귀감이었다. 신앙심이 깊은 그녀는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무리하며 한결같은 활동과 성실한 출, 퇴근을 했다. 업적 또한 꾸준했고 매사 일희 일비 하지 않는 태도로 나에게 든든한 벽이 되어 주는 고마운 사람이다.(지금까지 꾸준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열과 성을 다해 그들을 도우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했지만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었고 일이 우선순위도 아니었다. 나의 매니지먼트는 열정과다의 잔소리가 되었고 아주 솔직하게(?) 각자의 부족함을 채워 가자고 합의 본 줄 알았던 일들은 본인의 부족함을 직면하면서 좌절과 자존심을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는 나 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고마움과 거부의 양가감정으로 지쳐갔다.
진솔함과 솔직함의 온도는 조금 다르다. 내가 솔직하면 상대도 나처럼 솔직해질 줄 알았고 그것이 서로의 관계를 더 깔끔하게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철저한 오판이었다. 때로는 하얀 거짓말도 필요하고 아픔을 공감해 주며 진심 어린 위로와 칭찬이 관계의 기술인 것을 몰랐다. (나는 공감 능력이 아주 떨어지는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다)
설계사 시절에도 팀장인 지금도 나 역시 한결같은 솔직함과 긍정적인 수용 자세가 옳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한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진솔한 말과 행동은 긍정적인 사고에서 비롯되고 긍정적인 생각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속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빠졌고 내 생각이 옳다는 자만만 있었던 것이다.
특히 조직 내에서 예스라고 말하는 나의 긍정적인 태도는 다른 누군가를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들의 말과 행동 모두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미울 수밖에, 내가 옳다고 믿고 힘들어도 밀고 나가는 것이 타인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옳고 그름, 맞음과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부족한 나의 처세술이었다.
개그맨 김제동은 '항상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지구는 벌써 사막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모두가 긍정적으로 예스만 한다면 세상은 참 재미가 없을 것이다. 또 모두가 솔직하고 진솔하다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거짓을 말하고 타인이 듣기 좋은 말만 하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적어도 나처럼 따돌림을 당하거나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진 않을 것이다.
'언니의 지나친 긍정이 다른 사람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 모르지' 했던 동생의 말 덕분에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수동적인 사람이고 조직의 규정이나 정책에 대해 무조건 적으로 따르는 안전주의의 해당하는 부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동료들 눈에는 지점장 눈에 들고 싶어 하는 딸랑이로 보일 수밖에...
나의 긍정이 자율적이고 능동적이며 조금 더 비판적일 때 발휘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조직 생활을 하지 않는 지금, 나의 긍정적이고 진솔한 말과 행동은 나를 지탱하는 아주 좋은 원동력이 된다.
요즘은 브런치로 글을 쓰기도 하고 한 살씩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유연해지는 나 자신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