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덩이에 스스로 나를 던지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타들어가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땔감이 되어야 하는. 더 이상 타지 않기 위해 짠 물을 좀 적셔야 하는 날. 하필, 뜬 게 초승달이었다. 빈 마음을 꽉 채워줄 보름달이었음 했는데. 그래, 내가 이렇게 날카로운 달과 함께 태어났구나. 그래서 유독 시린 날이 많았던가- 싶었다. 추운 걸 미치도록 싫어하는 난데, 그날은 날카로운 바닷바람이 반가울 만큼 내 속은 뜨거웠고 마음은 얼어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노을과 바다 위에서 초승달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평소와는 다르게 아득하게 느껴져서 이질감이 들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달까. 손은 얼어가는데도 정신은 차려지지 않아 온 몸으로 차가운 공기를 머금었다. 안주도 없이 마시는 맥주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시원하게 내 속을 달래줬고, 추울 법도 한데 오히려 개운해지는 것만 같았다.
한 캔을 다 비울 때 즈음이었을까, 조금은 정신이 들었는지 정수리가 찡-하고 울렸다. 이제야 제대로 된 추위를 느낀 게다. 참, 사람 마음이 이래서 간사하다. 탁, 마음의 안정을 위해 향초에 피우던 불이 내 마음을 태우기 시작했다. 깊숙이 얼어붙은 마음에 불이 일렁여 녹는가 싶더니, 금세 재가 되어 버렸다. 제대로 붙지 않았던 탓일까, 아픈 것에 약한 내 마음 탓일까. 더 이상 타들어가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걸까. 이렇게 모든 걸 견딜 수 없을 때, 참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한 날, 이성보다는 본능이 앞서나 보다. 어디론가 떠나서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곳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걸 상상하니 모든 게 다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퉁퉁 부은 몸뚱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세포들의 외침들도, 얼어붙은 마음 때문에 갈 곳을 잃은 근육들도, 다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 그래, 계획했던 이번 달의 목표와는 동떨어지지만, 내가 바라던 내 모습도 이건 아니었다. 꼭 계획대로 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니까. 답지 않게 충동적으로 뭔가 저지르면 행복해질 것 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일단, 이번 주말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위해 보내야 한다는. 불구덩이 속에서 나는 건지고 봐야지. 평소에도 주말만 보고 버티는 나지만, 남은 하루는 더 간절해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