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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otte Feb 06. 2022

엄마의 봄

올해도 엄마는 겨울을 제일 싫어하는, 추운 날 태어난 나에게 따뜻한 봄을 가장 먼저 안겨줬다. 주고 싶은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골라 가장 예쁜 것들로만. 그 마음들이 해마다 쌓여 나는 좋아하는 색들로 가득한 꽃다발을 안고 집을 나섰고, 엄마는 내가 보지 못하고 지나친 들꽃들 앞에 앉아 한 땀, 한 땀, 전하지 못한 마음들을 앞치마에 담았다. 너무 익숙해 미쳐 살피지 못한 풀숲 속에서 엄마는 덥고 추운 계절들을 홀로 보내며 그 마음들을 지키고 있었을 거다. 금방 시들어 버릴 꽃다발을 두고 다시 돌아올 나를 위해. 마른 가지에 피어난 작고 예쁜 방울들이 달려 있는 들꽃을.


취향이 꼭 닮은 엄마와 나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도 비슷하다. 그래서일까,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꼭 친구와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즐겁다. 애정을 듬뿍 담은 장난에도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듯 큰 웃음을 피어주고, 별 얘기 아닌데도 길게 늘어놓는 내 말을 귀담아주는, 매일이 생일인 것처럼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해주는 한결같은, 조금 나이 많은 친구.


호떡 하나에 엄마도 나도 중학생이 돼서 한참을 떠들고 웃을 수 있는, 이렇게 세월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오는 것처럼, 앞으로 남은 시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봄에 피는 꽃을 보러 다니고, 더운 여름엔 맛있는 옛날 팥빙수를 찾아 먹고, 가을엔 흩날리는 단풍잎을 보며 따듯한 차 한잔을 내려 마시면서. 그러다 보면 다시 찾아올 다음 겨울에는, 엄마가 제일 먼저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엄마가 좋아하는 색들로 가득 담은 꽃다발을 선물하고 싶다. 긴 겨울바람에 얼어붙은 호수가 녹아 잔잔히 흐르려면 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겠지만, 그전에 엄마가 조금이라도 따듯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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