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은 밤의 공기는, 광안리에 살았던 이십 대 초반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시절, 함께면 두려울 게 없던 그때. 골목 하나만 건너면 만날 수 있는 곳에 모여 살았던 우리는, 편의점 앞에 모여 맥주 한 캔을 들고 한참을 떠들어댔었다. 하루 종일 같이 작업을 하고, 고생했다며 각자 집으로 가서 푹 쉬라고 헤어지며 인사했던 게 무색하게, 그렇게 또 만나 의미 없는 이야기들로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보냈던 그 밤.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주고받는 친구들도, 연락은 없지만 어떻게 지낼지 그려지는 친구들도,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는 친구들도 있지만, 봄이 곧 쏟아질 것만 같은 공기를 맡을 때면 꼭 한 번씩은 그때처럼 세상 걱정 없이 수다를 떨고 싶어 진다. 예전에는 맥주를 잘 못 마셔서 칵테일 같은 병맥주를 겨우 마시면서 분위기를 맞추곤 했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 먹게 돼버린게 문제랄까.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는 친구들을 보면서 무슨 기분일까 - 궁금했었는데. 반대로 그 맛을 알게 된 지금도 그때의 기분은 알 수가 없다. 같이 편의점 앞에서 핫바를 사서 먹다가 이야기가 길어지면 그제야 과자를 사 와서 같이 먹었던 친구들이 없으니까. 아마 평생 알 수 없겠지, 기억도 나지 않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목이 아플 만큼 떠들어대고, 배가 아파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만큼 웃어대던 그때의 우리는 다시 찾을 수는 없을 테니까.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헤어질 땐 모두 다른 골목으로 흩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한 명도 같이 가는 길 없이 지금은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우리지만, 한 번씩은 서로 뒤돌아 봤으면 좋겠다. 혼자 걷는 길을 달이 밝게 비출 때, 골목의 그림자가 유독 작아 보이는 그런 날. 다른 골목에서 모여 한 길로 걷던 우리가 이따금 생각나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