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살던 시절 친구손에 이끌려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속에 들어갔었다.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파도만 보일뿐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파도가 지나가면 내 발아래 가득했던 모래들은 금세 사라져 물은 어느새 턱 밑까지 차올라 있었다. 친구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다가오는 파도와 함께 쓸려갔다가도 금세 헤엄쳐 돌아왔다. 정신없는 물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저리도 해맑을 수 있단 말인가. 뭍으로 나와 저 멀리 헤엄치는 친구의 모습을 한참 구경했다. 일렁이는 파도 속에서 친구는 잘도 헤엄치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물의 감각은 참으로 생소하다. 아주 어릴 적 유치원에 다닐 때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야외로 물놀이를 갔었는데 선생님의 옆에 서있었던 (혹은 선생님의 도움으로 물에 들어갔을 그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물에서 허우적거리다 선생님에게 건져져 일어설 수 있었다. 이젠 나이가 들어 더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10대 시절 그 기억이 제법 선명했었던 것도 같다. 그 이후로 물에 들어갈 일이 없었다. 나의 10대 시절을 돌이켜 봐도 가족 여행의 기억도 친구들과의 바다 여행도 그 어떤 물의 기억은 없다. 중학교 시절 수학여행에서 잠시 들렀던 바다에 발을 슬쩍 담가본 기억이 전부다. 그 이후에 오키나와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의 감각 정확히 말하자면 씻는 것을 제외한 어떠한 활동에서 몸이 기억하는 물은 발에만 남아있었다. 발로 밀려오는 차가운 물이 쓱 사라지는 그 감각만이 내 몸이 기억하는 물의 감각이었다.
친구와 바다에 다녀온 이후 수영을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 몸은 물을 친숙해하지도 어렴풋이 남아있던 물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물의 공포가 남아있는 어른이 되었다. 작년에 무심코 수영을 배우겠다는 생각에 수영 수업을 알아봤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사설 스포츠 센터에 수영장 시설이 있었고 다른 시설도 이용할 수 있어서 바로 찾아가 등록을 했었다. 수영 수업은 시즌이 따로 정해져 있어서 한 달 정도 기다린 후에 수업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수업의 레벨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아마도 내 기억엔 가장 낮은 반을 선택했던 것 같은데 나중에 수영장 벽면의 각 레벨을 보니 그 레벨보다 하나 더 낮은 레벨이 있었다. 거기서부터 문제였던 걸까. 첫 수업이 끝나고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시작할 땐 다들 처음인 듯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수업이 끝날 때 나를 제외한 모두가 바닥에서 발을 떼었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을 영법을 모를 뿐 어떻게든 물에는 뜨고 있었다. 트레이너도 열명 남짓한 사람들을 한 명씩 봐주지 않았고 나는 순식간에 그날 수업 진도에서 가장 뒤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보다 불친절한 수업과 따라가지 못하는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수업을 변경해 달라고 이메일을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두어 번의 수업을 나가고 시간이 날 때 혼자 수영장에 가서 연습을 했었다. 당시 수업을 하던 트레이너는 그곳에서 라이프 가드였고 마침 내가 연습을 갈 때 늘 있었다. 불친절한 말투로 몇 번 코치를 해주어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난 거기서 수영을 더 배울 수 없었다.
두어 번 연습을 하고 난 후 건물을 나서는 길에 트레이너를 만나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는 다른 동네 수영장에서도 수업을 하고 있으니 와보라며 제안을 해줬다. 사실 거리가 멀기도 해서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 이후에 디엠으로 몇 번 다른 수영 수업에 대해 연락이 왔고 마침 난 친구와의 여행으로 수업을 갈 수 없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여행 후 몇 번의 수업이 남았지만 여행동안 트레이너의 지극히 개인적인 다소 불쾌한 연락을 받은 이후로 나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물론 센터에 항의 이메일과 주고받은 메시지와 상황을 상세하게 써서 리포트하였다. 생각보다 수영 수업들은 상시 모집이 아니라 찾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또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고 개인 수업을 알아봤지만 그건 또 너무 비쌌다. 어떻게든 다시 시작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여기서 알게 된 친구가 자신이 알려줄 수 있다며 제안을 했다. 나에게 뜨개질을 알려줬던 친구였다. 친구의 도움으로 나는 다시 수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성실한 학생은 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두어 달 동안 수업 몇 번이었던걸 보면 알 수 있었다. 나는 늘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그랬다. 주중에 일을 많이 하고 이런저런 일들로 빠지고 미루고 하니 수업을 했다고 하기에도 참으로 애매한 지점이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일을 관두고 3주가량의 시간을 얻은 나는 또다시 생각했다. 할 수 있다고. 그래서 바로 우리는 가열하게 수업을 시작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던 수영장이 내부 수리로 문을 닫아 버스를 타고 다른 수영장을 가야 했지만 말이다. 호흡을 배우고 물에 뜨는 걸 배웠다. 발차기를 해보고 어설프게 팔도 좀 저어 보고 그렇게 쉬는 동안 수업과 연습을 하면서 물에 뜨고 킥판을 잡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중간중간 물도 많이 먹었는데 손에 뭔가 잡히지 않으면 금세 당황했다. 물속에서 일어서는 일이 왜 이리도 쉽지 않은가. 그럴 때마다 친구는 말했다.
물속에서는 자신을 믿으세요.
맞는 말이다. 물속에선 나를 믿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나를 믿기 위해서는 확신이 필요한데 그 확신이 아직 적었다. 물에 들어가 떠있다가 두 발로 일어서는 일은 왜인지 한 번씩 꼭 흐트러지곤 했으니 말이다. 중간중간 물에 대한 공포가 서려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매 순간 나는 그걸 비집고 나갔는데 마치 물풍선처럼 손으로 꾹 쥐면 손아귀에 들어갔다가도 손을 펴면 금세 튀어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걸 터트려야 하는데 그 물풍선은 아직도 내 손에 남아있다. 오늘은 이사를 앞두고 친구와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어제오늘 평영 발차기를 배웠고 내 발차기는 나를 저 앞으로 보내지 못하고 제자리에 맴돌았다. 또다시 새로운 걸 몸에 익혀야 하는데 이건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유롭게 물속에서 유영하는 사람들이 나는 제일 부러웠다. 오늘은 처음으로 반대편 가장 깊은 ( 얕은 다이빙이 가능한) 곳까지 킥판을 잡고 가보기로 했다. 아직 발차기가 안정적이지 않아 체력 소모만 크고 추진력은 좋지 않았지만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내 몸은 발이 닿는 가장 깊은 높이에서 자꾸 멈췄다. 추진력이 좋지 않은 발차기로 갈 수 있는 최선의 거리였는데 그걸 넘어가야만 했다. 아무래도 손아귀에 물풍선이 터질 듯하더니 터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친구의 응원으로 저 깊은 곳으로 다시 한번 가보기로 했다. 친구가 앞에서 잡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심호흡을 하고 얼굴을 담그고 발을 움직였다. 수영장의 바닥이 훅 꺼지는 그 경계선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눈을 감았어야 했을까 난 수면의 깊이를 인식하는 순간 당황했다. 손에 있던 물풍선은 거대하게 부풀어 나보다 더 커져 버렸다. 호수 위 고장 난 보트의 모터처럼 내 다리는 갑자기 감정 실린 무언가처럼 어쩔 줄 몰라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당황한 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급하게 되돌아올 수 있었다. 물풍선은 다시 손 안으로 되돌아왔다. 결국 킥판을 짧게 잡고 친구의 도움으로 반대편까지 갈 수 있었다. 발이 닿지 않는 물속은 또 다르게 흥미로웠지만 난간을 잡은 손은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킥판을 감싸 쥐면 물에 동동 떠있을 수 있는 걸 알면서도 좀 전의 깊어진 물속에서의 당황함과 어쩔 줄 몰라 레일을 잡고 뒤집어지던 몸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수업은 끝이 났다.
우울과 불안은 맞닿아 있다고 하던데 무서움 또한 닿아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불안이 무서움을 만드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나의 불안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기질인 건지 사실 난 잘 모르겠다. 둘 중 어느 한 가지의 이유는 아닌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이런 기질이 없다면 난 극복할 수 있는 걸까? 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우선인 건지 나의 불안이 원인인건지에 대해서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만큼 의미 없는 추측일 것이다. 다만 나의 불안은 내가 우울함을 크게 느끼던 시기에 크게 확장되었다. 물속에서 나타나는 물풍선처럼 내 불안은 조용히 손안에 있다가 한 번씩 크게 부풀었다. 작아진 물풍선은 손 안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형태이다. 이 모습을 한 불안은 그렇게 자리를 잡고 내가 모르던 사이 슬며시 커지다 터져버렸다. 그런데 터져버리니 안에 있던 무언가가 여기저기 다 흩뿌려져 모든 곳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나의 불안은 가장 강력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아주 조금씩 그 불안을 모으고 모아 어떤 것은 버려지기도 어떤 것은 버려지지 않아 정리해 두었다. 싹 다 버려지면 좋았겠지만 불안은 다른 영역들을 만들었다. 아니 만들었다기보다 눈에 띄게 바뀌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불안의 영역들을 마주하는 일은 괜찮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물속에서 난 무얼 그렇게 불안해하는 것일까. 발차기가 익숙해지고 숨이 덜 차게 된다면 레일의 반대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면 내 불안은 또 어딘가로 가버릴까. 다행히도 난 그게 궁금하다. 불안의 영역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그 영역의 밖에서 바라봐야 한다. 분명 난 그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물속에서는 말이다.
얼마 전 꼬마들의 수영 수업을 본 적이 있다.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들이 그 깊은 물속에 첨벙첨벙 뛰어들었다. 유일하게 한 아이만 머뭇거리다 난간에 걸터앉아 쓱 물속으로 들어갔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도 겁이 나서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아이를 나는 바라봤다. 친구의 말처럼 학습된 공포가 아니더라도 기질의 차이일 거라는 말에 동의한다. 난 그 기질에 불안이 깔린 건 아닐까 생각했다. 작은 불안은 수많은 의문을 가져올 뿐이다. 그 의문은 답 없이 의문만 낳는다. 물이 무서워 얼굴을 물속에 담그는데 5개월이 걸렸지만 결국 수영을 하게 된 사람의 이야기에서 나는 확신을 얻었다. 몸이 기억하고 익숙해진다면 그렇게 나에게 새로운 감각이 생긴다면 나도 물속에서 유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