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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18. 2020

8. 정답은 이 안에 있어

돼지를 부탁해


“돼지가 닭도 잡아먹어.” 동네 이모가 말했다. 이모가 어렸을 때 돼지를 키웠더랬다. 제주도 흑돼지처럼 뒷간 밑에서 키웠다고. 똥간에 빠지는 것도 무섭지만 돼지가 뒷간 위로 입을 내미는 건 더 무서웠다는데... "에이, 거짓말~" 나는 믿지 않았다. 이모가 잘못 기억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닭을 데리고 캡틴 H의 집에서 돌아오며 이모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어느 날, 돼지 밥을 주러 갔는데, 그날따라 닭이 따라왔던 거야. 흘리는 밥을 주워 먹고 싶었던 게지. 닭은 똑똑한 것 같으면서도 멍청하거든. 떨어지는 밥을 주워 먹다가 내가 던지는 밥을 따라 뒷간 속으로 따라 들어가 버린거야 글쎄. ‘푸다닥’하고. 돼지는 처음엔 닭에 관심이 없는 듯했어. 그런데 닭을 천천히 구석으로 몰았던 거야. 그리곤... 어흑.  


옛날 대항해시대에 선원들은 돼지를 배에 태워 다녔다. 잔반을 먹일 수 있으면서 번식이 빠르고 성장도 빨랐기 때문. 그리곤 정착지마다 돼지를 조금씩 놓아주었단다. 나중에 돌아가는 길에 식량으로 삼을 생각으로 말이다. 경계심 없기로 유명한, 도도새의 멸종에도 이 돼지들이 한몫을 했다고 한다. <아기돼지 삼형제> 같은 동화로나 돼지를 알아왔던 내게 돼지는 약자였지 사냥꾼이 아니었다. 돼지들이 닭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또 하나의 근심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아주 생각 없이 닭을 데려온 것은 아니었다. ‘치킨 트랙터’라는 닭장을 만들 생각이었다. 밑이 뚫려있고, 이동할 수 있는 닭장이다. 땅을 파고 풀을 먹는 닭의 습성을 활용한다. 그 습성이 땅을 갈아엎는 트랙터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해서 '치킨 트랙터'라고 불린다. 다만, 계속 이동해야 하는 이유는 닭이 한 곳에 정주하면 땅이 황폐해지기 때문이다. 한곳에 누적된 똥이 과도한 영양상태를 만든다. 풀은 땅의 습기를 지켜주는 역할도 한다. 풀 없이 계속 밟는 땅은 무엇도 살 수 없는 땅이 된다. 집을 꾸준히 이동해주면 풀을 적당히 제거하고 적당한 똥이 퇴비가 되어 땅이 비옥해진다. 


미국의 '폴리페이스(Poly-faces)'라는 농장에서는 소와 닭, 그리고 돼지를 같이 키운다. 농장장인 조엘 샐러틴은 단작 농사만큼 동물 한 종만을 키우는 것도 나쁜 일이라고 주장한다. 여러 가축이 생물다양성을 통해 상호 보완되기 때문이다. 단작이란, 지역 전체에서 옥수수만 키운다면 옥수수를 좋아하는 곤충의 대량 출몰 가능성이 커지고, 살충제 사용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살충제는 오히려 육식 곤충 같이 익충에게 더 큰 피해를 준다. 초식 곤충은 더 작고, 더 많기 때문에 살충제 내성이 생길 가능성이 더 크다. 살충제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살충제는 생태계에 누적된다. 


 소는 풀을 소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물이다. 하지만 짧은 구강 구조상 풀은 먹을 수 없다. 또 같은 풀밭에 계속 살면, 똥을 통해 기생충이 전염된다. 그래서 야생의 소는 계속 이동한다. 닭은 짧은 풀을 먹을 수 있고 벌레를 먹는다. 똥 속 벌레를 닭들이 파헤쳐 먹기 때문에 방충 효과가 있다. 분변을 뿌리기 위해 기계를 쓰지 않아도 된다. 기계 의존성을 줄였다. 기계 의존성을 줄인 만큼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같은 넓이의 초지를 더 넓게 쓰고 있다. 폴리-페이스 농장은 야생 동물 생태의 축소판이다. 조엘은 관리 강화 방목이라고 한다. 폴리페이스 농장은 전체 목장을 여러 구획으로 나눴다. 한 초지에 일정 기간 소를 방목한다. 정해진 기간이 되면 다음 초지로 이동시키고 돼지와 치킨 트랙터가 이곳에 산다. 더 적은 에너지와 비용으로 다른 농장보다 더 많은 동물을 기른다. 


나무 파렛트를 반으로 잘라 밑이 뚫린 삼각형으로 이었다. 철망을 둘러쳤다. 뚝딱! 이동식 닭장을 만들었다. 너무 빠른 제작이라 벌써부터 불안하다. 돼지 울타리 안으로 치킨 트랙터 입장. 치킨 트랙터 안으로 닭 입장. 닭도 돼지도 첫 만남. 호기심 가득한 돼지와 멀리 떨어지고 싶은 닭. 쫓고 도망가는 모습이 이어진다. 무슨 문제야 있겠어 싶었는데, 다음날 닭이 사라졌다. 피 한 방울, 깃털 하나 남기지 않고 감쪽 같이 사라졌다. 철망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겼다. 산이 근처라 야생동물이 찾아온 게야. 돼지들은 태평히 낮잠을 자고 있었다. 닭을 지켜야 할 의무는 없지만, 돼지들이 밉다. 그리고 죄책감이 들었다. 부끄러웠다.

 

돼지가 밥그릇을 엎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어느 날, 돼지 밥을 주고 있는데 닭이 산에서 내려왔다. 홀연히 돼지 울타리로 들어와 돼지 옆에서 밥을 쪼아 먹었다. 산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돼지와 닭은 서로 관심을 갖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저녁이 되자 나무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간간히 밭에서 발견되는 계란 껍데기로 꼬꼬댁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받았다. 왜 껍데기만 오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와 별개로 어느 순간 파리떼는 사라졌다. 집 밖에 퇴비장을 만들어 돼지똥을 매일 치운 덕일까. 사실 돼지똥 치우기는 쉬웠다. 돼지는 정해진 자리에만 똥, 오줌을 누기 때문이다. 한 터에 머무는 짐승의 본능인 것 같았다. 위생적일수록 건강하니까. 이동하는 동물, 소와 염소는 아무데서나 대소변을 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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