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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26. 2020

16. 돼지고기는 돼지 근육

돼지를 부탁해



빵이 아니면 밥을 달라


돼지는 제법 똑똑하다. 사람 오는 소리가 들리면, 밥이 생긴다던지, 워터파크에 신선한 물을 넣어준다던지, 간식을 준다던지, 좋은 일이 생긴다는 걸 알았다. 돼지라고 무엇이든 먹어대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호불호가 있다. 코가 긴만큼 후각이 뛰어난 동물이다. 더 영양가가 있는 음식 냄새를 맡고, 그것을 먹은 조상이 더 많은 자손을 낳은 덕분이겠지. 돼지는 비빔밥처럼 여러 음식이 섞인 밥에서도 좋아하는 음식을 먼저 먹는다.  


맛있는 걸 더 맛있게 먹는 능력자였다. 나름의 기조가 있어 먹기 싫은 것은 끝까지 먹지 않았다. 이른바 ‘개밥의 도토리’. 물론 도토리는 좋아했다. 처음 보는 음식도 우선은 경계한다. 냄새를 맡아보고, 맛을 봤다. 맛있는 음식을 기억한다. 다시 나왔다 싶으면 코를 박고 마구 먹어댔다. 코 밑에 입이 있는 이유가 있었다. 꼬리를 흔들며 ‘돼지 같이’ 먹기가 시작된다. 태풍에 부러진 도토리 가지를 주워다 주었는데, 가지만 앙상히 남았다. 집에서 나오는 쌀뜨물, 야채 부스러기와 바로 옆 텃밭에서 나오는 부산물, 벌레 먹은 토마토, 감자, 옥수숫대를 줬다. 주식은 쌀겨였다. 요구르트를 섞어 먹었다. 마을 부녀회에서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도 얻어왔다. 


축산 동물의 수명은 살찌는 주기에 따라 정해진다. 가장 많이 쪘을 때까지가 아니라, 최고 효율로 자랄 수 있을 때까지 산다. 소는 30개월, 돼지는 6개월, 닭은 1개월. 먹는 것이 살과 피가 된다. 잘게 부서진 음식물이 각종 효소를 통해 포도당, 아미노산, 비타민 등으로 분해, 흡수된다. 살코기는 동물의 근육을 말한다. 근육은 동물의 움직임을 만드는 엔진이다. 당분은 세포의 에너지로 쓰인다. 남는 당분은 인슐린을 통해 지방으로 변환, 보관된다. 


지방은 비유하자면 휴대용 기름 탱크다. 식물은 전분 형태로 에너지를 저장한다. 지방은 같은 무게의 탄수화물보다 칼로리를 두 배 정도 갖고 있다. 동물이 에너지를 지방으로 저장하는 이유다.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고밀도의 에너지원은 좋은 엔진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름이 많은 부위를 좋아한다. 지방에 더 많은 열량이 있다는 것을 몸이 아는 것 같다. 마블링은 축산업이 만들어낸 마케팅의 산물이지만, 기름의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을 선호하는 것은 본능 같다. 지방이 없는 살코기는 맛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이 많은 삼겹(뱃)살, 목살이 인기 부위이고, 지방이 적고 살코기 덩어리인 등심, 안심은 중간 선호, 육중한 몸을 지지하는 근육, 다리는 찬밥 신세다. 100킬로그램 돼지를 도축한다고 했을 때, 피와 내장, 머리, 가죽, 뼈를 제거한 후, 나오는 고기의 양은 보통 65킬로그램. 이를 정육율이라고 한다(소는 40퍼센트). 이중 인기 부위인 삼겹살과 목살, 15킬로그램을 팔아 전체 돼지 값을 뽑아야 하기 때문에 금겹살이 된다. 삼겹살은 국내 생산량으로는 부족해서 수입해오고, 매년 재고가 쌓이는 뒷다리는 업계의 골칫거리이다. 돼지의 일부만 먹는 탓에 더 많은 돼지를 키워야 한다.  


먹고 싶은 부위만 먹는 것은 인류의 진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식문화는 생태계로부터 왔다. 주어지는 것을 먹었고, 나오는 것 이상을 먹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을 생태계에 강요하는 건 최근의 일이다. 주변에 있는 것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정리해 논 지혜를 식문화라고 한다면. 다채로운 지혜가 단조로워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진짜 맛있는 음식은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최고의 부위는 바로, 흔히 말하는 저급 부위다. 그런데 그처럼 천대 받는 부위에는 천대받을 수밖에 없는 불리한 조건이 있다. 바로 씹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쩔 때는 씹고 또 씹어야 한다.

닭 가슴살, 양 등심, 필레미뇽, 돼지 갈비, 즉 우리가 가장 선망하는 부위는 동물이 살아 있을 때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근육에서 나온다. 그것이 바로 먹고 싶게 만드는 부드러움을, 동시에 무미건조함을 만든다. 그런 부위는 활동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근간 지방을 거의발달시키지 못한다. 지방이 없으면 향도 낼 수 없다. 반대로 값싼 근육이 감내하던 모든 힘든 노동, 즉 다리에 필요한 운동, 간과 신장의 세척 작용, 꼭 필요한 심장의 박동 등은 음식을 먹는 우리 또한 일을 하게 만든다. 제대로 준비된 고기는 향이 진하고 풍부하며 질기다. 하지만 그런 고기를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요리와 풍부한 솜씨가 필요하다.

<제 3의 식탁> 댄 바버, 글항아리


일반 사육환경에 비교하면 자연축산 돼지들은 대단히 많은 운동을 한다. 많이 움직일수록 근육 속 섬유질은 강화된다. 더 단단한, 질긴 식감을 의미한다. 부드러운 고기에 대한 소비자 선호는 동물의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사육 근거로 쓰이기도 한다. 돼지는 붉은 근육을 갖고 있다. 어릴 땐 하얗다가 점점 붉어진다. 하얀 근육과 빨간 근육의 차이는 근육 속성의 차이. 하얀 근육은 날개짓 같은 순간 도약에 유리하고, 빨간 근육은 걷기 같은 지속에 유리하다. 시중 돼지고기가 하얀 것은 운동량 차이 때문이다. 또 돼지가 6개월 만에 도축되는 이유도 있다. 자연양돈 돼지는 일 년에 걸쳐 자라기 때문에 살이 소처럼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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