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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29. 2020

17. 도축 하루 전, 포박

돼지를 부탁해

암퇘지는 눈 주변으로 동그라미 눈썹이 났다.



*아래 글은 동네에서 어르신들의 기억과, 유튜브를 통해 배운 내용을 토대로 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도축 하루 전, 돼지를 미리 묶어 두기로 했다. 죽기 전 고통을 최대한 줄인다. 당연한 명제지만 문제가 있다. 이곳 돼지들의 덩치가 컸다. 크기만 한게 아니라, 야생의 전투력이 있어 보였다. 큰 돼지를 한번에 기절시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잡는 날 묶으려 한다면 흥분할 것이 분명했다. 흥분한 돼지 정수리를 정확히 때리는 것은 어려운 기술이었다. 아니, 흥분시키지 않는게 기술이겠지. 기절이 늦어질수록 돼지의 고통은 커진다. 하룻밤 미리 묶어두면 진정되지 않을까 하는 심산이었다. 묶는 순간은 흥분하겠지만, 하룻밤 지나면 돼지도 익숙해지지 않을까. 이때 기절시킨다. 그렇다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포박이 아니라 이동 범위만 제한하는 정도로 묶어두기로 한다.


좋아. 하지만 돼지 몸에 밧줄은 어떻게 묶을 것인가. 여러 방법을 생각해뒀다. 작전1은 덫을 놓는 방법이다. 매듭을 바닥에 놓고, 돼지가 그 매듭 속으로 들어오길 기다린다. 나도 안다. 말도 안 되는 방법이라는 걸. 했기 때문에 솔직하게 쓰는 것이다. 돼지도 제발로 들어오지 않았다. 작전 1은 못들은 것으로 해두자. 돼지 발을 잡고 직접 줄을 묶고 싶은 마음이 끓었다. 하지만 무서웠다. 우리 만난지 몇 주가 흘렀지만 ‘발’을 잡을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다. 발을 잡았을 때 돼지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



도축 안내서에는 ‘귀를 잡아당기면’ 돼지를 제압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쌈배추 한 장 크기의 귀를 보았다.  오늘따라 돼지 귀는 평화롭게 흐느적거리며 파리를 쫓고 있다. 저 퍼덕이는 귀를 잡아 땅으로 끌어내리면 고꾸라진단 말이렸다. 책을 덮고 잠들기 전 여러 번 상상했다. 상상 훈련을 하며 잠이 들곤 했다. 귀를 잡고 땅으로 당긴다. 제압 성공. 귀를 잡고 땅으로… 땅으로… 초등학교 시절 내 귀를 잡아당긴 선생님 꿈을 꾸었다. 


완벽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막상 실전에 임하려니, 오른손이가 선뜻 나서지 않는다. 산돼지 후예라고 하지 않았나. 건들면 고개를 돌려 손을 물 것만 같잖아. 점잖게 오른손이를 타이른다. 이놈, 왼손이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으냐. 마지못한 오른손이 돼지 귀에 살짝 손을 대 본다. 슬쩍. 반응이 없다. ‘그래, 우리 사이에 귀 정도는 잡을 수 있잖아.’ 용기를 내어 살짝 쥐아본다. 마른 오징어 같을 줄 알았더니, 삶은 양배추 같이 부드러웠다. 우리의 첫 스킨십이다. 거친 것만 같은 너에게도 이런 보드라움이 있구나. 므훗함을 느끼려는 찰나 돼지가 눈을 치켜든다. 아이고 깜짝아. 놀란 오른손이가 힘을 바짝 준다. 얼결에 귀를 잡아당겼다.  


“뀌웩” 적반하장이 어이없는 돼지가 소리를 지른다. 귀가 따갑다. 돼지가 반발은 하지 않는다. 조금만 더 당겨볼까. 

“꾸웨엑-"

소리는 더 커졌으나, 돼지는 더 꼿꼿이 선다. 저기 책에는 ‘넘어간다’고 쓰여있걸랑요… 혹시, 지금 놀라 자빠지는 것을 넘어간 거라고 하는 건가. 돼지가 가만히 있긴 하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자빠진걸로 쳐준대도 돼지를 묶을 손이 없다. 오른손이는 귀를 잡느라 바빴다. 왼손이 혼자는 줄을 묶을 수 없다. 그러니까 평소에 연습 좀 해두라니까. 언제까지 줄이나 잡아주면서 살려고 그러냐. 양손이 서로 싸우는 것이었다.



후, 어쩔 수 없군. 귀는 잠시 내버려 두기로 한다. 총을 꺼내오듯, 벽에 걸어두었던 ‘코걸이'를 가져온다. 람보Y의 기운에 동기화 된다. 성큼성큼 돼지에게 간다. 단번에 귀를 잡는다. 



“뀌엑" 돼지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 돼지 입에 코걸이를 넣는다. 코걸이 상태로 벽에 건다. 이제 두 손이 자유롭다. 다른 돼지들의 동태를 살폈지만, 무관심하다. 진즉 이렇게 할걸. 돼지 발을 들어 줄을 묶었다. 돼지를 묶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목은 티셔츠를 벗듯, 손쉽게 벗었다. 너무 세게 묶으면 숨구멍을 막을 것 같았다. 다리를 묶었는데 돼지 다리는 은근히 매끈한 것이다. 허벅지에서 발가락까지 일직선. 매듭이 쑥 빠졌다. 사람으로 치면 손목 같은 곳이 있었다. 발가락 위가 살짝 오목했다. 이곳을 묶었다. 뒷발은 빠지지만, 앞발은 빠지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신체 구조는 비슷했다. 앞으로는 세게 당길 수 있어서 뒷발은 빠졌고 뒷걸음치는 힘은 약해서 앞발의 매듭은 빠지는 것 같았다. 발 하나만 묶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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