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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30. 2020

18. 오리도 부탁해

돼지를 부탁해

제각기 할 일이 생기고 부산스러워짐에 따라 얼었던 분위기가 풀린다. 대화가 오가고 웃음소리도 들린다. 제빵 D와 이분도체 좌우 각각의 몸뚱이를 하나씩 뉘어놓고 뼈를 분리하고 지방을 제거한다. 기름과 피가 목장갑에 스며들었다. 근육과 뼈는 생각보다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수저에 배부르지 않듯, 한두 번의 칼질로 살이 분리되지 않는다. 생초보인 나는 단칼에 됐으면 좋겠다는 미련을 갖는다. 두세 번 칼질 후 힘으로 뼈와 뼈를 분리해보지만 가당치 않다. 돼지기름과 피와 체액으로 미끄럽다. 미끄러워진 만큼 힘이 더 들어간다. 돼지를 꽉 쥐려 할수록 작용과 반작용 법칙에 따라 손목과 손가락 관절에도 같은 크기의 무리가 온다. 3시간의 작업이 끝나니 주먹이 쥐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 손이 무서운 법이었다. 끝없을 것 같던 모든 작업이 끝났다. 집으로 가 피를 비롯한 여러 체취가 묻은 옷을 벗는다. 물을 데워 몸을 씻는다. 비누 거품을 내어 꼼꼼히 닦는다. 그래도 손에선 돼지 냄새가 난다. 두세 번, 더 씻어도 누린내가 남아 있다. 손에 남은 냄새는 씻고 씻어도 며칠을 간다. 누린내를 맡으며 밤을 보낸다. 비린내는 오리를 처음 잡던 날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2년 전이다. 우리 마을 논에는 오리들이 산다. 오리농법은 오리를 이용해 벼를 키우는 농법이다. 언뜻 생각하면 오리를 논에 풀어놓으면 농사를 다 망칠 것 같지만, 오리의 습성을 이해하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모내기가 끝나고 모가 자리를 잡을 때쯤 오리를 풀어놓으면 벼 사이를 헤엄치며 곤충을 잡아먹는다. 헤엄칠 때 일어나는 흙탕물이 햇빛을 막아 잡초 발생도 억제된다. 오리 똥은 그대로 퇴비가 된다. 살충제, 제초제, 퇴비 의존이 줄어든다. 물론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 손은 더 간다. 아침, 저녁으로 오리들을 집으로 출퇴근시켜줘야 하고, 울타리를 쳐서 너구리나, 족제비를 막아줘야 한다. 벼가 어느 정도 크면, 오리의 역할은 끝난다. 보통은 오리농장으로 돌아가는데, 캡틴 H는 오리들을 남겨두었다. 


오리를 잡자고, 잡자고 했는데, 드디어 날을 잡게 되었다. 날을 정하자 나머지는 번개처럼 진행되었다. 솥과 도구들, 기본 양념을 챙겼다. 오리가 있는 곳은 캡틴 H의 농장. 마당에는 개만큼 큰 오리가 집 주변을 거닐고 있다. '어우, 큰데?' 처음 보는 크기에 당황했다. 그보다 더 큰 거위가 사납게 짖으며, 분위기를 날카롭게 했다. 캡틴 H는 농사에 투입된 직후에는 오리들이 작아서 1년 더 키웠다고 한다. 오늘 잡을 오리는 네마리. 


내가 아는 오리 잡는 방법은 목과 가슴뼈 사이로 칼을 찔러 심장을 찌르는 방식이다. 목과 쇄골 사이, 손가락이 쏙 들어가는 부분. 오리 잡는 법은 마을의 농업학교에서 배웠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오리 잡는 방법을 배우며, 먹는 것으로 농사가 완성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버려짐 없이 모두 쓰임이 있는 농사가 되었다.


"오리 눈 보지 마라." 우리 중 뭐로 보나 경험 풍부한 연륜 1호가 주의점을 당부했다. 오리 잡자는 말에 호기롭게 맞장구는 쳤으나, 나도 몇해 전 오리 잡는 법을 배운 이후 처음 잡는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이 선무당 지수가 높았다. 거위는 무섭게 짖어대고, 큰 오리를 보니 기백도 사그라들었다. 일단 오리 목을 잡긴 잡아보았다. 오리 목을 앞에서 감싸 쥐며 손가락으로 목 뒤에 있는 두 날개를 잡는다. 한 손으로 오리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가한 나머지 손은 뭐를 하냐면, 바로 칼을 쥔다. 


칼이 좀 무디다 싶었다. 아니, 단호함이 무뎠겠지. 쿡, 쿡. 칼이 들어가지 않는다. 칼로 오리 맥박을 짚는 꼴이었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이 느껴진다. 죄책감은 당황을 부르고, 당황이라는 감정은 가속페달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에잇' 더 열심히 가슴을 찔렀다. 꾹, 꾹, 꾹. 칼이 문제인가, 의심은 될 일도 안 되게 했다. 꾸욱. 칼은 손에 익지 않았고, 큰 오리는 힘이 셌다. "꾸엑!" 참다못한 오리가 신음소리를 냈다. 틈이 생기자 오리가 버둥거렸다. 아차... 오리 눈을 보고 말았습니다. 작금의 상황 파악을 끝낸 오리가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똘망똘망. 


세 남자가 삼각형으로 쪼그리고 앉아 각자의 오리에 열중했다. 연륜 1호는 오리는 처음이지만,  언젠가 닭 목을 비틀어 보았다고 했다. 오리도 똑같지 않을까는 사고의 유연함을 발휘했다. 애석하게도 오리 목은 닭보다 훨씬 길었다. 1호가 한손으로 머리를 잡고 한 바퀴를 돌렸다. 질식사를 시킬 요량이었다. 오리가 눈을 감았.... 아니, 다시 떴다. 오기가 생긴 1호가 한 바퀴를 더 돌려 그 위에 올라탔다. '이제 숨이 좀 막히지? 이놈! 이놈!' 똬리 튼 구렁이와의 싸움이었다. 정적이 흘렀다. 오리가 눈을 끔뻑이며 우리를 쳐다봤습니다… 똘망똘망.


캡틴 H는 어려서부터 오리 잡는 모습을 익히 '보았다’고 했다. 직접 잡는 건 처음이라는 말을 이날 처음 했다. 보아하니 나는 그를 믿고 왔는데, 그도 우리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를 믿고 싶었다. 어깨너머 기술이 진짜배기이길 바랐다.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캡틴 H는 오리 목을 땅에 댔다. 안정된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정신을 모으는가 싶더니, 칼등으로 오리 뒤통수를 쳤다. "탁." 오리 눈이 반쯤 감겼다. 기절을 시키는 거란다. 그럴듯한 자세에 우린 모두 놀랐다. 다시 한번 쳤다. 

“탁."  

"이렇게 하는 거 같았는데..." 


옛 기억을 떠올리는 캡틴의 눈이 반쯤 감겼다. 추억에 잠긴 칼등치기 속도도 빨라졌다. “탁탁탁.” 본인 의도를 빨리 증명하겠다는 듯 말이다. 오리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성공이다! 기쁨에 취한 세 사람. 하지만 적당히 멈출 줄도 알아야 했다. 빗방울이 바위를 뚫는 법이었다. “탁탁탁.” 어디선가 피가 튀기 시작했다. 끄아...

"아, 기절만 시켰어야 하는데..." 


우리가 오리를 잡는 건지, 오리가 우리를 잡는 건지 오리무중이다. 오늘의 주제는 누가 누가 더 잔인한가. 이번 생에 천국 가긴 틀렸다. 오늘 밤 서로의 꿈에 오리가 나올 것이라고, 우린 서로에게 책임을 넘겼다. 

닭은 뜨거운 물에 담그면 깃털이 쉽게 빠지는데, 오리는 깃털에 있는 기름 탓에 털 손질이 어렵다. 껍질을 전부 벗겨버리기로 했다. 껍질을 벗기면 기름기 없는 담백한 탕이 된다. 살이 적고, 씹기에는 질겼다. 자연스럽게 자라는 오리는 구이나 볶음보다는 국과 탕에 어울렸다. 


시골에서도 이제는 닭이든 오리든 직접 잡아먹는 이는 줄어들고 있다. 전화 한통에 맛있는 치킨 한마리가 뚝딱 배달되는 세상에 손에 피를 묻히고 싶어하는 이는 없다. 생명을 거두는 일이,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식탁 위에서는 고기지만, 그전 과정인 사체를 손질하는 과정이 유쾌하지는 않다.  


제사상에 고기를 놓는 이유를, 고기가 귀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생명을 죽이는 꺼림직함도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내 입을 위한 게 아니라 신성한 존재를 위해 죽인다는 위안. 양심의 가책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서 말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은 책 『음식을 욕망하다』에서, 현대인은 '고기를 식탁 앞으로 가져다 놓는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면서, 우리가 미개하다고 했던 옛사람들보다 ‘훨씬 더 동물처럼 먹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더이상 가축을 직접 잡지 않는다. 먹기 좋게 포장된 상품으로 만난다. 손질할 필요도 없다. 굽거나 볶으면 되는 간단한 재료이다.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들을 일 없으니 돼지에게 미안할 일도 없다. 하지만 상품으로의 고기만 취하는 현대인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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