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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31. 2020

19. 도축과정, 탕박과 발골

돼지를 부탁해

거꾸로 매달아 피를 뺀다.



다른 이들도 속속 도착했다. 돼지를 거꾸로 매달았다. 다리를 묶어 트랙터에 걸었다.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한다. 피를 빼는 방혈防血을 우선 한다. 목 가운데를 두고 왼쪽이나 오른쪽을 칼로 찌른다. 찌른 그대로 바깥쪽으로 칼을 조금 그으면 경동맥이 잘렸다. 주룩. 피가 나왔다. 신선한 상태의 피를 이용해 순대를 해 먹을 수 있다. 우린 피는 받지 않았다. 피가 빠지는 동안 한숨을 돌렸다. 혈관에 피가 남아있으면 부패가 더 빠르게 진행된다. 수돗가로 와서 미리 정해둔 해체와 저장, 요리의 과정을 다시 확인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돼지에게 돌아가는 길. 


“끄악!”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철인 W가 키우는 강아지 ‘우구'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우리에게 뛰어왔다. 우구는 떠돌이 개였는데, 사람 좋은 철인 W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우구가 돼지 피를 ‘할쭉할쭉' 먹은 것이다. 한쪽 눈은 실명하고, 다른 쪽 눈은 검은자위가 허연 개였다. 하얀 털은 새빨간 피를 더 돋보이게 했다. 사람을 잘 따르는 우구가 피를 먹는 와중에도 반가운 우리에게 뛰어온 것이다. 우구는 뒷다리를 절뚝이며 뛰었다. 피범벅인 개가 절룩이며 뛰어오자 좀비가 따로 없었다. 아오 깜짝아. 엄마가 얼굴에 묻히지 말고 먹으라고 하는 이유가 다 있었다.


소 축사 옆에 살아서 우구. 조커 느낌도 살짝...



피를 뺀 후, 탕박湯剝을 한다. 뜨거운 물을 부어 돼지 털을 제거한다. 100도의 끓는 물은 돼지의 진피를 익히기 때문에 낮은 온도의 물을 쓴다. 70도 정도. 뜨거운 물이 닿으면 살이 살짝 뜨는 게 보인다. 허옇게 뜬 표피를 호미로 살살 긁는다. 얇은 표피가 털과 함께 벗겨지면 분홍빛 살이 나온다. 흑돼지도 속살은 똑같이 분홍빛이다. 칼은 돼지 살에 상처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무딘 날을 쓴다. 우리는 껍질은 먹지 않을 예정이라 털을 깔끔하게 제거 할 필요는 없었다. 살코기만 소금에 절여 숙성하려 했다. 껍질과 비계는 보관이 어렵고 보존을 방해한다. 털을 거칠게 정리하고 가스 토치의 불로 살짝 꼬슬려 남아있는 털을 제거한다.  


이제 목을 잘라 머리를 떼어낸다. 목에 한 바퀴 둘러 칼집을 낸다. 목뼈만 남은 상태가 된다. 돼지 귀를 잡고 한 바퀴, 두 바퀴를 돌려(돌아갈 때마다 얼굴이 마주친다…) 잡아당기면 툭 떨어진다. 대야에 얌전히 담아 놓는다. 이번엔 우구가 닿지 않는 곳에 둔다. 


다음은 내장을 뺄 차례. 목에서부터 항문까지, 배를 가른다. 명치 아래부터 복부는 내장이 맞닿는 곳이기 때문에 칼을 조심히 쓴다. 살짝살짝 배를 그어가면 손가락 한마디 깊이까지는 비계가 나온다. 그리고 내장을 감싼 얇고 하얀 막이 나온다. 내장이 터지지 않게 신중하게 막을 자른다. 내장이 보인다. 책에서 보았던 사람 속과 똑같았다. 이제 준비가 끝난다. 세탁기 배수관 같이 생긴 식도食道를 잡고 끌어 당긴다. 후두둑. 내장이 쏟아진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내부 열을 따라 돼지의 살과 피 냄새가 훅 퍼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왔다. 동물 내장 특유의 누린내. 손에 배고, 코에 배는, 뇌 신경에 배어버린 냄새. 지금껏 돼지 누린내를 맡아본 적이 없었는데, 마치 저주를 받은 것처럼 이제 이 냄새를 기억하게 되었다. 


누린내라고 하지만, 요리 관점에서 보자면 다를 수 있다. 재료마다 갖고 있는 특유의 풍미라고 할 수 있다. 도축이 흔하지 않았던 때에는 돼지 전체를 먹었다. 내장도 부위별 요리법이 따로 전해졌다. 엉덩이 부위에서 특히 누린내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베리코 햄이 뒷다리만 쓰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내장을 빼낸 후, 목에서 엉덩이 방향으로 자른다. 척추를 따라 좌우로 나뉜다. 척추는 감자탕에 쓰인다. 도축장에서는 대형 톱으로 순식간에 자르지만 우리가 가진 도구는 칼 한 자루 뿐이었다. 관절이 가장 많고 촘촘한 등뼈를 분리하는 작업은 난이도가 높았다.




돼지 해골도

뼈 틈을 찾지 못하는 칼이 뼈마디마다 걸리고 부딪쳤다. ‘득, 득'. 모두가 등 뒤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땀이 뻘뻘 맺혔다. 해는 점점 떠오르고 날이 더워졌다. 시원할 때 끝내야 한다는 부담에 힘이 들어갔다. 힘을 빼야 일이 쉬운데, 이게 다짐은 쉬워도 뼈에 걸릴 땐 또 힘이 들어갔다. 뼈를 긁어 칼이 무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제빵D가 계속 칼을 갈아 교체해주었다. 


한수저에 배부르지 않듯, 한두 번의 칼질로 살이 분리되지 않는데, 미련한 나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한다. 두세 번 칼질 후 힘으로 뼈와 뼈를 분리해 보지만 가당치 않았다. 돼지기름과 피와 체액이 손에 묻었다. 미끄러워진 만큼 힘이 더 들어갔다. 돼지를 꽉 쥐려 할수록 손목과 손가락 관절에도 같은 힘을 받았다. 3시간의 작업이 끝나니 주먹이 쥐어지지 않았다.  


돼지를 반으로 갈라 좌우로 만든 상태를 이분 도체라고 한다. 좌, 우 각각을 다시 삼등분한 것을 육분 도체라고 한다. 삼등분의 기준점은 이렇다. 목에서부터 앞다리 겨드랑이까지 하나, 여기서부터 뒷다리 전까지 배 전체를 또 하나, 나머지 뒷다리와 엉덩이를 하나. 뼈를 발라내는 것을 발골, 먹기 좋게 나누는 것을 정육이라고 한다. 목살, 가슴살(갈비), 등살(등심), 갈비 안쪽(안심), 뱃살(삼겹살), 앞다리(전지), 뒷다리(후지) 등으로 나눈다.

돼지와 인간은 오랜 시간 같이 살아왔다. 과학은 돼지가 많은 면에서 인간과 비슷하다는 것을 밝혔다. 혈관계와 이빨, 심장, 피부, 소화계, 장기의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우리는 염색체의 92퍼센트를 공유한다. 인간에게 장기를 이식하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돼지는 이종 장기 이식에 가장 적합한 종으로 꼽힌다. 그러한 맥락에서 돼지와 인간은 일부 질병도 공유한다. 


이분 도체로 만들면 한 시름 놓였다. 제빵D와 좌, 우 한쪽씩 발골을 나눠서 하기 때문이다. 제빵D는 서울에 살 때 음식점에서 일했던 경력을 살려 제빵을 하고 있다. 그는 고기를 사랑한다. 돼지 정육 기술을 배우기 위해 같이 연수도 다녀왔다. 고기 중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양고기. 그만큼 좋아하는 것은 술. 술마시기를 좋아해서 술취한 다음날은 약속에 항상 늦는 편이었다. 오늘도 그는 두 시간 늦게 도착했다. 사람들의 집중된 시선도 나뉘고, 다른 사람들의 역할도 시작됐다. 고기 삶을 물을 끓이는 사람, 고기를 소금에 절일 준비를 하는 사람, 그냥 침 흘리는 사람 등. 몇 고비가 더 남은 건지 모르겠으나, 한 고비가 또 넘어갔다. 


*본 글은 동네에서 어르신들이 돼지 잡는 것과 유튜브를 통해 본 내용을 토대로 구성해 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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